가진게 0이 되었을 때 용기가 시작된다

(동문 커뮤니티에 올린 글)

다소 철학적일 수 있습니다만,

저는 가진게 0이 되는 순간에 비로소 자신을 가지고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장난일 수 있는데요, 그래도 지나가는 글이라 생각하고 읽어주세요.
 
제 나이가 되어도, 부유한 집안의 사람은 아둥바둥 사는 사람들의 상황을 이해못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 친구는 아둥바둥 살았기 때문에, 괜찮은 월급을 주는 회사를 그만두고 뭔가를 도전하기 참 힘들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아마, 저는 그런 환경 때문에 자신의 용기부족을 이해못할 것이고 자신은 자신만의 구조가 있고 저는 저만의 길이 있을 것이라는 복잡한 자기방어와 현실인식의 조합이겠죠. 그래놓고 자신의 동생은 회사를 그만두고 모아둔 돈 2억을 식당 차리겠다고 하는데 참 이해가 안간다고 합니다. 자신은 5억짜리 전세에서 아둥바둥 하는 중이라 한푼도 없어서 도와주지는 못하겠다고, 그런 위험한 베팅을 하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간다고도 했습니다.
글쎄요 일단 여기까지 왔으면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말이지요. 자신이 아둥바둥 사는 환경에서 컸다면 동생도 환경은 동일했을 거니까 환경 얘기는 의미 없는 소리구요, 돈이 없다느니 하는 말은 일견 아이러닉하지만 상당한 진실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5억짜리 전세에 사니깐 변명같이 들리겠지만~ 이라고 시작하지만 결국 5억에 상당하는 부채나 그 부채를 갚아야할 여러가지 정신적 짐들이 있어서 여유가 없는 것은 fact 이긴 합니다. 즉 그는 아직 0이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헌데 0 얘기를 하기 전에 일단 그 친구는 제가 무척 사랑하고 존경하는 후배이고 동생이고 친구나 다름 없는 지인임을 밝혀둡니다. 그 친구의 현실인식 능력과 현실 돌파 능력은 한결 같이 놀라운데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주변에, 언제 어디서든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묵직하고 책임감 있는 회사 에이스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친구나 다름 없지만 저는 매우 드물게 그를 꾸짖었습니다. 
방금 너의 말은 앞뒤가 하나도 맞지를 않다. 아둥바둥 산다고 해서 도전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배가 부르다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부유한 사람은 망하면 살아날 구석이 있고 가난한 사람은 망하면 끝까지 망할까봐 리스크가 더 크다고 말할 참이라면 그 역시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든 내공을 채우지 못하고 시작하는 사업이나 투자라면, 정말 엉망진창, 지옥의 불구덩이 한복판까지 망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2천만원을 가지고 시작한 사람도 자신이 더이상 빌릴 수 없는 한계까지 떨어지듯, 200억을 가지고 시작한 사람도 자신이 도무지 갚아나갈 수 없는 선까지 망가지기는 꼭 같다. 사업은 자신을 걸게 만들고, 걸고 나면 200억 가진 사람은 빚이 100억이 될 때까지 위험한 줄타기를 하다가 패가망신할 뿐이지 누가 10억은 남겨두고 사업을 접느냐. 고로 모든 사업은 자기가 가진 자산에 buffer 를 남기느냐 남기지 않느냐 하는 현명함의 차이가 그나마 조금 있을 뿐 성격이 똑같다. 떡볶이 집을 3천만원 주고 차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첫 사업에 떡볶이 집 100개를 차리고 시작하는 격인 사람도 있다. 이유는 자기 집안 재산에 그 보다 적게 투자하면 얼굴이 안 산다는 논리일 뿐, 위태롭긴 매한가지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둥바둥 살았어도 자신이 믿는 바를 더 높이고 더 큰 그릇을 갖고자 하여 성공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부유하게 컸어도 인생에 단 한두번이나 꿈을 꾸다가 접어놓고 하찮은 핑계로 연명하는 사람들 역시 통계를 논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부지기수이다. 이것과 저것은 매우 별개라서, 학원 새벽반을 가는 것과 같은 일이라 갈 새끼가 가는 것이지 환경이니 여유니를 논하고 있는 것은 비겁하다. 되려 너 같이 좋은 기회를 구축해놓고도 스스로 나아갈 길을 막는데 합리화의 에너지를 쓰고 있으면 안된다.
하니, 그 말도 맞네, 형이 나의 선입견을 깨주시오 이번에 형의 길을 보고 정말 모든걸 다시 생각해보겠수, 라고 합디다. 쓰다 보니 뭔가 고전풍의 문체가 되었군요. 그래서 저는 성공하면 주위에 용기를 줄 터이고, 실패하면 주위에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 용기를 줄 것이라는 무겁지만 가벼운 짐을 더 무겁고 가볍게 만든 대화였습니다.
 
그런데 대화라는게 참 묘한 데가 있어서, 어떠한 논리라도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고 귀를 기울이는 지인들에게서 들으면 한번씩 두번씩 더 곱씹게 되고 깨닫게 되는 바가 있습니다. 
 
가진게 없어야, 최소한 가진게 없다고 생각하는 상태가 되어야 성공의 발걸음을 걸을 수 있다고들 합니다. 가진게 있는 사람이 그걸 굴려서 무한대로 벌어가는 경우가 또 많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 것 같애요. 가진걸 많이 키워둔 사람은 대개는, 가진게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훈련이 매우 잘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가진게 없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헌데 자산이 불어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지요.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기도 합니다. 큰 자산, 적은 생활유지비, 그리고 그 차이인 투자자산이 자산의 증식이라는 함수에 매우 중요한 변수들일 수도 있어요. 우리는 익히 그렇게 알고 있죠.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은 중산층을 못 벗어난다고도 생각하죠. 그런데 그런 통계를 논하기엔 역시, 최저소득에서 엄청난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만큼, 매번 논하기도 귀찮을 만큼 새고 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깐 그 유휴자금이라는 것이 분명히 중력처럼 우리 자산의 증식을 가로막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fact 입니다. 그게 자본주의이구요. 특히 남들과 상대성을 가미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헌데, 부자가 되는 끝없이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생활유지비를 줄이는 정도의 인색성으로만 이 함수를 바꿔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함수의 혁신을 이뤄냅니다. 그 함수의 구조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마치 아무런 자산이 없는 것처럼 스스로 인식을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자산의 유무, 크고 작음에서 스스로 자유롭다는 점이 아닐까 해요. 그리고는, 망해서 빈털털이가 되거나 심지어 빚이 생겨도 아무렇지 않게 순식간에 예전의 부를 되찾기도 해요. 그러니깐 부자아빠를 통해서만 자산의 증식을 이룰 수 있다는 방정식을 완전히 부정하는 사례들입니다. 이들에게 묻는다면, 평생 쌓은 재산을 전부 잃는다면 슬프겠지만 자신이라면 금방 다시 쌓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결 같이 그 근거가 비슷합니다. 도전, 노력 등등.
 
그러나 한가지 더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부분은 역시, 무에서 생각하라는 부분 아닌가 해요. 무는 좀 불교색이 있군요. 여튼 가진 것이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어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빈털털이나 다름 없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럼 여러분이 가진 재산을 다 털어내고 0으로 돌아가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쨌든 비유이고 작은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위함이니 곱씹어만 보기로 하죠.
일단 우리들은 가진게 없다고들 많이 얘기하는데, 더 냉정하게 얘기하면, 가진게 마이너스입니다. 여러가지 부채를 온 몸에 매달고 살죠. 재무적 부채가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만 법적으로는 대개 부모님의 재무적 부채라 치고, 우리는 정신적 부채에 시달립니다. 갚아야할 게 많고, 채워줘야 할 기대감이 많죠. 그럼 0으로 가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 부채를 빨리, 최대한 많이, 이자가 붙기 전에 갚는 겁니다. 
그것을 갚다가, 왜 0으로 가는지를 잊으면 안됩니다. 부채를 갚는 인생을 살기 위해 부채를 갚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도 안되는 얘기가 어딨나요. 도전하기 위해 일단 0으로 가기 위해 부채를 까고 있는 겁니다. 가장 효율적으로 이 부채를 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요.
솔직히 말해, 대부분 도전을 포기하는 이유는, 이 부채를 까기 귀찮아서 입니다. 머릿속으로 이 부채를 대충 대충 껴안고 평생 살아갈 요령을 고민합니다. 부모님의 기대와 압박에, 사회의 압박에, 어쩌고 저쩌고 이게 삶인갑다 하면서 맞춰갈 고민을 하다 보면, 변수가 많아지고 시나리오가 엄청 많아져요. 부채를 까지 않고 돈이나 모으는 시나리오, 부채를 많이 까다가 그 돈으로 또 다른 부채를 만드는 시나리오, 그마저도 못하는 시나리오, 부채에 눌려 죽는 시나리오, 부채를 털기 위해 중도에 도망치는 시나리오, 부채를 좀 더 유보해놓고 자신의 자산을 조금 변화시키는 시나리오, 부채를 부정하는 시나리오, 인생이 원래 아빠덕이지 하고 합리화 시키는 시나리오, 남이랑 부채를 비교해가면서 불행해지는 시나리오, 이렇게 많은 시나리오를 여러분의 머리로 매일 견주며 비교하고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부채를 어떻게 까야할지 고민할 시간이 적어지겠죠.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여러 전략을 동시에 저울질 하다 보면 깊이 있는 분석을 해나가기 힘들잖아요. 여자한테 고백을 하기로 했으면, 내 팔다리를 한발짝씩 어거지로 끌고 나가서 그 사람 앞에 서서 입술을 열어서 고백을 하게 만드는 기계적이고 강제적 과정을 고민해야 하죠. (처음이라면). 그 여자가 무슨 생각하고 있을지, 어떻게 반응할지,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됐을 때 못 됐을 때 아무리 상상하고 앉아 있어봤자 머리만 아파집니다 (물론 저도 잘 못했습니다만..). Fact 라는 단어를 계속 쓰고 있는데, 여기서도 fact 는 간단합니다. 용기를 내서 해치워버릴 것이냐 어영부영할 것이냐 하는 결정만 남은게 hard fact 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채보다 자산이 많을 때도 있습니다. 그게 아까워서 또 쩔쩔 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잘 생각해보죠, 그 자산이 나의 행동을 제약한다면 그게 과연 자산일까요. 그 안에는 복잡한 부채의 성격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겨우 모은 것이라서 투자하기 아깝다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모은 돈은 투자하는 맛이니깐요. 다만 안전하게 해야죠. 절대로 투자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로 하여금 절대로 투자를 못하게 만드는 자산이라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산이 아닙니다. 
회계사를 3년 했는데, 너무나 그만두고 싶은데, 이걸 버리기가 아깝고 더 나아가 너무 위험하고 위태하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뭘까요. 앞으로 들어올 소득이 아까운 걸까요? 아닙니다, 회계사라면 지금껏 3년의 경험이 나의 자산이고, 회계사가 되기 위해 지불한 비용들이 모종의 부채로 남아 있는 인생 대차대조표를 생각해봤을 겁니다. 아마도 집을 사거나 차를 사거나 결혼을 준비하는 등, 자신이 향후에 써야 한다고 믿는 일종의 채무가 있다는 느낌 아닐까요? 그러니깐 자산이 있어도 아직 마이너스인 느낌이죠. 0이 되려면 멀었지만.. 미리 스포일러를 드린다면 대부분의 서민들은 심리적으로 이 0 이 될 수 없도록 사회는 매우 교묘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집을 사야만 할 것 같은 느낌, 차를 바꿔야할 것만 같은 느낌, 부인이나 여자친구에게 비싼 백을 사줘야만 할 것 같은 느낌, 비싼 해외여행을 가거나 비싼 술을 마셔야만 할 것 같은 느낌들을 끝없이 강요 받아서 영원히 자유로움에 다다르기가 힘듭니다. 연봉이 억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구조를 고민한 사람들이 여러분 보다 훨씬 고민을 많이 했으니깐요.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여전히 노예입니다. 남이 가라는 길을 가면, 여러분의 심리적 채무는 영원히 이따시만합니다. 매꿔야할 심리적 채무가 현실적 자산의 증식보다 항상 더 빠릅니다. 내 머릿속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그래서 재무적으로 부자인 사람들은 스스로 그런 존재하지 않는 채무를 끊어낸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마음이 부자인 싯다르타는 세상에 대한 채무를 끊어냈겠죠. 존재하는 채무를 빠르게 갚아나가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하고 마음과 정신을 집중해낸 사람들이 그 0의 자리에 우선 섭니다. 대부분은 평생 그 자리에 오지 못합니다. 올 생각조차 없습니다. 그런 0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인생관인 사람들도 역시 엄청나게 많습니다. 인생이라는게 채무에 쫓기듯 질질 끌려가는 거지 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보지 못하셨나요. 돈이 많든 적든 말이에요. (물론 돈이 많아서 채무가 없는 듯 펑펑 쓰고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래 가는 건 많이 보지 못했지만요. 이건 누구라도 한정된 자산을 물 쓰듯 쓰면 한번쯤은 해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가다듬고 나의 자산이 무엇인지 나의 채무가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보고, 그 채무가 어느 시점에 사라지거나, 혹은 나의 자산과 퉁쳐서 0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의 자산에 대한 예리한 통찰도 필요하고, 부채에 대해서도 정확한 통찰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언제쯤 심리적으로 자유로워져도 되는지를 가르쳐줄 거에요. 그걸로 끝이 아니죠. 그 시기를 당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모든 행동이 당장은 그 시기를 앞당기는데에만 집중을 하세요. 부채가 자산보다 늘 행동은 좀 자제하시고, 자산이 부채보다 늘 행동이라면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게 친구랑 밤새 노니는 시간이어도 본인 스스로가 자산이 더 늘어났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아름다운 백을 하나 샀다 해도 부채만 늘어난 꼴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선물을 받아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빚진 놈은 인간 대우 못 받는다고 많이 그럽니다. 사회생활이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다란 얘기도 대개는 많은 부채를 안고 시작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생이 아닐까요. 아직 0에 다다르지도 못해, 인간 대우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도 말해주진 않지만 무의식 중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힘든게 운명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네 뭐네 하지만, 딱현실 (hard fact)은 청춘이라 빚져서 아픈게 맞는 거 같습니다. 
이놈의 빚! 집중해서 털어내는데 모든걸 걸어보자구요. 우회할 방법이 도무지 없습니다. 그러나, 그 0에 다다랐을 때의 자유와 행복은 비로소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느낌이라는 점은 (저도 잘은 모를 수 있지만)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그 길이 꼭 취업 잘해서 라거나 뭐 남이 정해둔 공식 속에만 있지는 않다는 점 (없지도 않구요), 그리고 쉽지도 않을 것이란 점!
 
매번 딱딱하고 고루한 얘기긴 하네요. 필력도 딸리지만 무엇보다 주제 넘은 얘기라서 좀 그렇습니다. 늘 그렇듯 동네 형 오빠의 개똥철학으로 곱씹어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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