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Julius Chun – 담벼락 2014년 6월 28일

내가 제일 즐겁게 하는 일이 뭔가 생각을 많이 해본다. 제일 즐거운 일상적 액션 행위 말이다.
나는 아슬아슬한 차이지만 1순위로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이 제일 좋다. 구체적으론 교감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제일 즐겁다.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차이가 그 사람의 개성이 그 사람의 생각구조와 삶을 대하는 태도 살고 있는 상황 속, 인간으로서의 번민과 눈부신 노력 등을 접할 때 거의 매번 경외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쉽게 와닿지 않을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차이를 상대방의 입장으로 상상을 펼쳐보며 몰입하는 것. 후배들은 가끔 내가 더 아래 후배들한테 지나치게 띄워준다거나 인정해줘서 애들이 괜히 흥분 (?) 하거나 심한 동기화를 느끼는 것에 대해 실로 묘한 지적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나의 교감은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는 아무에게나, 거의 대다수의 사람에게 경청을 하고 경외도 하니까. 원래 교감이란 객관적일 수 없고 경청의 자세란 일방적이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니 큰 탓은 아니다. 비판적인 경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교하는 사랑 역시도 내가 인사관리자도 아닌데 할 필요 없지. 어릴적 남의 입장에 문을 닫고 혼자 잘난 맛에 살아와서 나이 들어 더 열렸는지도 모른다. 어릴적의 나는 독선 그 자체였으니까. 그걸 깨부숴준 신선한 만남들이 반복되며 늦게 배운 도둑질이 됐고 잘나지 않은 내 자신을 사랑한 만큼 남들에게 경외감을 배운게 된 듯 하다.
여튼 종국에 인생에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 하면, 난 남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또 교감하며 나의 교감을 전달해주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게 뭐 지금으로선 대단한 경제학적 가치가 없을지 몰라도 나중엔 밥벌이 할만한 일들도 생길지 모르겠다. 요새의 리더들은 그런 일로도 먹고 살기도 한다니깐.
근데 굳이 리드하는 일과는 다르다. 굳이 영묘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일은 나보다 잘할 사람이 매우 많으므로, 난 차라리 듣는 쪽만 전문으로 하고 싶다. 흔히 묻는 말로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나 실패를 면접질문시에 하던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성공은 분대장을 달고 아프간 파병 준비를 하며 하루에 30분에서 한시간씩 분대원들을 꾸준히 면담한 때였다.
질문들은 비슷했다. 가족, 여자친구, 첫사랑, 전공, 취미, 어디서엔가는 후임들의 말문이 열리고 신나서 내게 인생 모든 얘기를 쏟아내곤 했다. 단지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그들은 즐거워했고 고마워했고 그 시간을 기다렸고 평소엔 진심을 다해 날 따르고 나를 지켜줬다. 자신의 삶을 털어놓은 매체로서 아마 나를 자신의 스토리를 아는 유일한 선임으로서 가치있게 느꼈을 것이다. 일기장처럼. 그 짧은 시간에 받은 감격을 잊을 수 없다.
한국 남자도 결국 자신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 굶주려 있었다. 사람은 그런 것 같다. 나에 대해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보다도 남을 알아주는 사람으로 산다는게 훨씬 큰 행복과 만족감을 줬다.
그 후로는 학교 후배들의 얘기에도 귀 기울였다. 나이가 들수록 내 얘기가 나도 모르게 많아지곤 하지만, 아직도 노력을 하려 한다. 직업으로서 미국 학교에는 카운슬러들이 있었다. 법규에 의해 고용됐겠지만 선생이나 학교 스태프들과는 독립적으로 아이들의 고민들을 들어주는 자리다. 처음엔 나도 형식적으로만 대했지만 훗날 생각해보니 너무나 좋은 제도다. 왕따도 문제아도 똑같이 카운슬러가 필요하다. 그저 들어만 줄 어른 말이다. 교감해줄 어른. 우리 모두가 쟁취하기 그토록 어려운 그 이름, 내 편이 돼줄 어른. 이런일을 했으면 좋겠다.
혹은 회사에서도 이런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뜻 있는 임원들은 이런 역할을 하려고 술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는 쏟아지는 질문들에 자기 얘기를 하다 형식적으로 끝나기 일쑤다. 회의도 마찬가지 아닌가. 후배의 말문의 물꼬를 트이게 하는 건 꽤나 쉬운 일임에도 한국에선 그 요령이 전혀 전해지고 있지 않다. 한명 한명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와 살아있는 개성과 인품을 모두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행위가 실은 아주 어릴때부터 몸에 베여있으니까. 그리고 어느날, 어떤 진급을 했을 때 모든 리더쉽을 하루아침에 쏟아내야 한다. 관리자라는 이름으로. 잘못 된 일이고 한편으론 관리의 블루오션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근데 나는 사람과의 대화나 교감 없이 모니터 속 군중의 생각과 행위를 읽어내는데만 몰두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 안에서도 많은 만족을 느꼈고 주위와 교감하며 나름의 생활 인맥을 쌓았는데 일의 본질이 경청과 교감이 아님은 확실한만큼 살다보니 점점 나의 꿈과 멀어져가고 있는 느낌은 든다. 다른 꿈과 희망들을 채워주고는 있으나 1순위의 행복을 키울 여건은 아닌 셈이다. 그리고 그런게 부질 없는 업종이기도 하다. 34세, 인생의 반절을 채워가는 중에 이제 후반부를 본격 준비해야 할 때인데, 게스트 하우스 사장으로서 아무나 스치듯 만나는 것보단 더 찐하게, 하루종일 공장을 운영하는 것보단 좀 더 넓게 사람을 만나고 내 자리를 찾고 싶다. Chief communication officer 랄까 최고경청책임자 같은 자리로 가고 싶다. 내가 잘하는 일 하며 인정받고 사랑 받는 자리? 60세가 돼도 선수가 아닌 선배로 원로로서 살 수 있는 일. 누구보다 땀을 많이 흘리면 자신감이 생기는 운동선수들처럼, 누구보다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듣는게 경쟁력인 판에서 한번 뛰어보고 싶다. 고충상담사 같은 아르바이트 부터 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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