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에 관하여

노력에 관하여 (2014년 9월 5일 동문 커뮤니티에 쓴 글)

도전에 관하여 글을 썼던 경제학부 01학부 천영록입니다. 도전, 꿈, 이런 개념의 동전의 양면인, 노력과 근성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사실 이 점이 더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도전정신은 내 안의 자세에 관한 것인데, 그에 합당한 노력이야 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룰이자, 남의 룰을 깰 수 있는 룰브레이커라는 현재의 질서체계를 체감하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노력에 집착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꿈만 가지고 살 순 없습니다. 희망은 밥을 먹여주지 않아요. 오로지 노력이 동반 되었을 때만이 꿈은 꿈 이상의 가치를 발휘합니다.

고백컨대, 꿈이 없어도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많이 봤습니다. 반면 노력 없이 꿈만으로 성공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어떤 멘토는, 허황된 꿈을 꾸지 말고 아예 먼미래의 목표는 다 잊어버리라고, 지금 당장, 눈 앞에만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라고 얘기해줬습니다. 사실이에요. 꿈은 꿈대로 내 안에 곱게 품어놓되 , 지금 당장은 모든 걸 잊고 가장 치열한 방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게 꿈이 없어도 자연스레 되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릴적 개고생을 많이 해서 절박한 사람, 원래 성실함이 온 몸에 밴 사람, 왠지 지고는 못 사는 경쟁심이 강한 사람. 그런 환경이 노력이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치환된다면, 꿈이고 자시고 간에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꿈을 꾸는 사람보다, 현재에 헝그리한 사람이 현실적인 근성이 훨씬 강합니다. 꿈을 좋아하는 사람 중 다수는 낭만적인 걸 좋아하기에 도중에 쉬이 지치고는 합니다만, 헝그리한 사람은 지치지 않죠. 이룬 것도 뭐도 없기 때문에 지칠 여유 자체가 없습니다. 끝까지 가는 사람은 대개 헝그리한 사람들입니다, 어려서 꿈만 키운 사람 보다는요. 현실에 투정댈 여유도 없고, 내 몸값에 안맞는 일이라고 혹은 학벌이 아깝다고 징징댈 여유도 없습니다.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고 할 수도 없고, ‘저건 좀 귀찮은데’, 라고 할 여유도 없어요. 시키면 해내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싶으면 해내는 사람들은, 절박함이 강한 사람들이에요.

저번에 꿈에 대해 그렇게 곱게 포장했죠. 꿈을 꾸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됐었을 수 있고, 또 꿈이니 도전이니 하는 소리에 지친 분들께는 식상한 소리로 들렸을 수도 있어요. 허나 처음부터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동전의 양면이에요. 꿈은 나를 먹여살려주진 않는다는 것. 그래도, 꿈은 꾸어야 한다는 것. 꿈이 노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만들어주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꿈꾸지 않는 자가 헝그리하지도 않을때는 아예 노력을 잘 안해요. ‘평이한 노력을 하며 남의 꿈을 무시하고 살아가느니 꿈부터 찾아라, (더 중요한 건) 그래야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노력은 뒷전으로 하고 이쁘장한 꿈만 꾸다보면, 램프의 요정이 내 꿈을 다 이뤄줄 거라는 핑크빛 동화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었음은 아마 공감해주신 분들 모두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자신이 가야할 길이 있을 것만 같은데 꿈 없는 자들의 진정성 없는 비아냥에 흔들리지는 마시라고 용기를 복돋아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떤 길이든, 결국 노력하는 자가 이기기에, 꿈을 꾸고 말고는 남이 상관할 바도 간섭할 바도 더더욱이 비웃을 바도 아니라는 점, 그러므로 어떤 꿈이든 멋지게 간직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남보다 노력하여 멋지게 비관론자들의 콧대를 밟아주자는 얘기였습니다. 꿈을 꿔야만 성공한다기 보다, 자신을 쏟아부을 수 있다면, 미칠 수 있다면, 그 어떤 정해진 길보다도 멀리 갈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자 그럼 다시 낭만적인 얘기로 돌아가지 말고, 현실적으로 우리는 얼마나 노력해야 하냐 생각해보죠. (아 이건 정말 잔인하게 현실적인 얘깁니다.) 정말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야근 주말 근무 밥먹듯이 해야하죠.

어떤 성공한 애널리스트 선배가 학교에 와서 했던 강연이 생각납니다. ‘남보다 10분을 더 한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엔 경영수업을 거의 안들어봐서 금융권에 환장하는 학생들을 보며 좀 이질감을 느꼈었는데요 (재밌게도 증권업에는 제가 와 있네요). 그래서 당시에는 별로 공감을 못했는데, 훗날 그분의 말씀을 많이 곱씹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남들보다 10분 더 해가지고는 안됩니다. 엄청나게 더 해야되요. 모든걸 쥐어짜내야 되요. 하지만 그런게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올 때, ’10분만 더 하자’라고 자신을 달래보는 방법, 꽤 훌륭하더라고요.

모든 이가 퇴근하고, ‘딱 10분만 더 있다 가자’라는 생각, 모든 이가 출근하기 전, ‘딱 10분만 일찍 오자’라는 생각, 그런 습관에 재미를 느껴야 됩니다. 아무도 없는 텅빈 사무실을 보며 쾌감을 느껴야 되요. 변태죠. 근데 그게 삶에서 나의 근성과 의지와 꿈의 형상화가 되어 가거든요.

그리고 그게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되어 돌아와요. 올림픽때 한 레슬링 선수가 금메달을 호언장담하더군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 라고 자신 있게 근거를 얘기했어요. 누군지 기억하실 겁니다. 재미 없고 지루한 싸움 끝에 눈탱이가 밤탱이가 돼서 금메달을 들고 웃던 선수요. 전율이 왔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경쟁자가 무엇을 했건 어차피 내가 더 준비 되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결정적인 순간에 초인적 자신감을 주곤 해요. 그것으로 인해 때론 삶의 승부가 바뀌는 순간이 옵니다.

남보다 노력을 덜 한 사람은 불안감이 있어요. 아마 한번쯤은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아, 저 친구는 나보다 훨씬 준비를 많이 한 친군데 왜 저렇게 행동하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라는 생각에 불안해 주변 눈치를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실력자의 권위에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거죠. 근데 주위에서 가장 땀을 많이 흘린 사람은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위를 얻습니다. ‘너희들은 몰라. 나도 속으로는 불안하지만, 너희는 어쨌든 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지, 안해봤으니까. 밤새지 않았으니까. 모든걸 운이라고 생각하는 약해빠진 사고관을 가질테니까’ 라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취업이든 대회든 시험이든 이 안에서 자기가 가장 열심히 했노라고 확신할 수 없으면, 남 눈치를 보고 스트레스에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과의 경쟁이 첫번째 경쟁입니다. 약한 사람들과의 경쟁입니다. 해보지도 않은 사람, 도전도 안해본 사람, 쓸데 없는 도전 한답시고 손가락질 당하기는 두려워 뭔가를 붙잡고 밤새, 일주일내내, 한달내내 매달려보기를 회피한 사람. 노력이라곤 학교 시험에서 상위 20%안에 들려고 도서관 의자에서 적당히 엉덩이 비비고 빈둥댄 것 밖에 안해본 사람. 의외로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절대 다수예요. 그리고 운 좋은 일부, 재능이 탁월한 일부는 어떤 사회에든 섞여서 들어와 앉아 있죠. 이런 운을 바라고 있는 후배님들이라면, 저는 선배로서 행운을 빌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운은 정말이지 타고나는 것이니깐요. 하지만 그런 분들은 하기사 이 글을 읽고 있지도 않겠죠.

잔인한 얘기같았겠지만, 이제부터 진짜 잔인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그 이후의 경쟁은 독한 놈, 노력하는 놈, 타고난 놈, 그리고 가장 무서운, 꿈꾸는 놈과의 경쟁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이 노력까지 장착했을 때 어마어마하게 무섭고, 꿈 없이 헝그리한 놈이 일이 좀 풀리자 자신의 꿈까지 찾았을 때도 무서워요. 타고난 놈이 꿈을 찾아 노력할 때는 우리 같은 범인들은 쫓아갈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매우 소수긴 하죠. 만나면, 무조건 보스로 삼아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현세님의 ‘천재를 이기는 법’을 읽어보셨나요? 여하간에 천재는 뒷전으로 놔두고 결국 자신의 꿈을 믿고 자신의 페이스로 독하게 지독하게 장기적인 노력을 해야 해요. 지름길은 없습니다. (사실 전략이라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다음 글의 주제로 삼아 볼까 합니다)

사실 저 역시 입사 초기에, ‘열심히 잘 했다’라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세상에 얼마나 괴물들이 많은지는 잘 몰랐습니다. 꿈을 꿨기에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고도 할 수 있고 노력을 했기에 만났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둘다 부족해서 그제서야 만났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입사 초초기에는 나는 나름의 천재 같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노력하라 감사하라 절박하라며 강요하니 나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폄하하는 것 같아 화가 날 때도 있었습니다. 세상을 모르던 우물 안 개구리 시절이었죠. 어느날 주위를 보니, 내 10배 노력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내 100배 노력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군요.

책 속에서 만난 한 펀드매니저는 그 책에 실린 숱한 전설적인 인터뷰 중에 유일하게 손절매를 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동문서답 같이 ‘나는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하기 때문에 틀릴 일이 없다’ 라는 소리를 하더군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어도, 그 발언은 저를 휘어잡게 됩니다. 100시간 일한 자의 특수한 자신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나도 젊어서 그 정도는 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주간 6일간 15시간씩 90시간, 일요일은 좀 편하게 10시간만 해서 100시간을 채워보자고 생각했어요. 매주 도전을 했으나 결국 한주도 100시간을 다 채우기 힘들었습니다. 단 한번만 저녁 약속이 생기거나, 회식 자리가 있으면 100시간이 잘 안채워지더군요. 그래도 그 시간을 채우려던 노력과 근성은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헌데, 잘 보니 일주일에 120시간씩 일하는 사람도 많더군요. 여러분들도 결국 언젠가 매일 17시간씩 7일을 일하는 사람들과 경쟁하게 될 겁니다. 혹은, 경쟁을 포기하게 되겠죠. 그러다가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부정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가 또 언젠가는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혹은, 그런 삶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고함치며 대안을 찾아갈런지도 몰라요. 그래도, 결국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노력을 해볼걸’ 하는 생각을 할 겁니다. 흉측하게 어느 후배를 붙잡고 ‘너라도 노력 많이 하라’고 훈계를 늘어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론 그런 120시간의 노력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엔 무리이고, 건전하지도 건강하지도 않거니와 효율도 떨어질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주간 70시간 일 해가지고는 늘 같은 자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70시간은 일하거든요. B급 플레이어라도 말입니다. 70시간 일하면 기본급을 받겠지만, 기대치 이상의 노동만이 큰 부가가치를 인정받는 이 세상에서는 추가적인 연봉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요. 어쩌면 자기 노력값도 못 받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뭔가 업무적인 성취를 얻기도 사실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권한 조차 없을테니깐요. 수능 볼 때 듣던 얘기들 기억나시죠? 잠을 한시간을 줄일 수록 부가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그게 빌어먹을 경쟁의 룰인걸 어쩌겠습니까.

사회 초기에 만난 선배가 한 분 계셨어요. 한 8살 차이 나셨습니다. 이 분은 연대 문과를 나오셨는데, 해외에서 일하고 계셨어요. 저에게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런던 금융가의 모습을 보여주셨었죠. 이 분이 저에게 대뜸 하신 말씀은, ‘너무 부럽다. 나는 경제학과를 나오지 못해서 입사 초기에 남들이 아는 걸 몰랐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동생은 이미 나와 같은 나이때 훨씬 앞서있는 것 같다. 화이팅이다’ 라는 얘기였어요. 대화를 나누고 멋지단 생각은 했지만 깊은 대화는 아니었습니다. 그 증권사 우산을 하나 선물로 받고, 한 팀을 꾸리고 있는 전무라는 정도를 듣게 되고, 어릴적 해외에 좀 사셔서 외국어에 능통하구나 했죠. 매우 겸손하고 친절하셨었습니다. 젊으신데 외국계라 그런지 참 승진이 빠르시고 해외에 잘 진출하셨구나 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헝그리 하시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어릴적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가난하셨단 얘기도 기억이 납니다.

훗날 다른 친구랑 얘기하다가 아는 분이라 해서 들어보니 연봉이 당시 저의 100배였습니다. 한국에서 연봉 높다는 선수들도 많이 봤지만 이 정도는 거의 비현실적인 수치였죠. 토종대학을 나와, 국내에서 취업을 하시고 하나 하나 이직해가신 분으로는 이례적입니다. 찾아보니 기사도 있더군요. 기사가 과장됐다고 부끄러워하신다지만, 신입사원 때는 회사 책상 아래서 밤에 새우잠을 자곤 해서 경비 아저씨가 시체인줄 알고 깜짝 놀라곤 했다는 사연도 있었습니다. 저도 그 생각에 몇번 책상 아래서 자봤습니다만, 비좁고 허리가 아파서 쉽진 않더군요.

이 분의 얘기는 제게 울림이 커서 오래도록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샐러리맨 신화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30대에 삼성전자 사장급 연봉을 받는 다는 건요. 그 돈보다도, 그 과정이 가히 초인적인 근성과 겸손함과 노력을 통해 이뤄졌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제게 이렇게 메일을 보내셨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정해서 계속 노력하고 꿈꾼다면, 기회는 자꾸 오게 된다. 자신은 해외로 나가고 싶어했기에 언젠가는 기회의 문이 열리더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고, 기회를 찾기를 멈추지 마라.’ 간단하죠? 그런데 이 분을 통해 본 그 패턴이 이 사회에는 지겹도록 단순하고 흔하게 반복된다는 걸 확인해갔습니다. 제 자신의 썩은 근성과 낮은 기준치를 미친놈처럼 끌어올려야 한다는 걸 막연히 느꼈습니다.

돈 얘기를 하고 성공 얘기를 하니, 저번 글보다 확실히 격이 떨어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군요. 핸드폰으로 쓰고 있는 것도 한몫 하는 것 같네요.

후배님들. 오늘도 저는 짧은 시간을 내준 학교 친구 하나를 만나 그 친구가 쓰고 있는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아 그래, 이 친구도 괴물이었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인 그 친구는 저보다 몇배로 후배 챙기랴 과중한 업무를 하랴 그 속에서도 주간 칼럼을 쓰랴, 더 분초 단위를 쪼개 삶을 살아가는 친구입니다 (그래도 딸은 안키우잖아… 라는 흔한 변명을 해봅니다만). 듣자니 주간지 칼럼을 쓴다고 참고할 책을 400권 사 읽었다는 군요. 부끄럽지만 난 지난 10년을 합쳐도 소설 빼면 400권은 못 읽었다고 웃으며 얘기했는데, 이런 친구들 보면 기분 좋은 긴장감이 팍 느껴지고 한편으론 아차 싶어져요. 세상 곳곳에서 멋진 경쟁자들이 콩나물처럼 자라나고 성장하고 있는데, 한시라도 긴장을 늦췄구나 생각합니다. 제가 사는 세상이 아마 그 친구 사는 세상보다 느슨해서일텐데, 주위 환경에 젖어 저도 모르게 느슨해졌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슬픈 현실 중 하나는, 내가 열심히 살지 않는다면 이런 선배 이런 친구는 어느날부터 쉽게 만날 수도 없는 사이가 된다는 거죠. (만나줘서 고맙다 친구)

피곤한 삶이지 않냐고요? 피곤합니다. 지금 좀 피곤해서 더 피곤하게 썼을 수도 있어요 ㅎ. 그래도 이게 여러분이 겪어야 할 A급 인재들이 넘쳐나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일은 일대로 다 하고 대우는 못 받는 B급의 삶도 만만치 않게 피곤합니다. 피드백이 없으니깐요. 둘다 피곤한 삶이라면 무엇을 택해야 할까요.

꿈을 꾸지 않으면 그런 세상의 톱니가 당장 흘러가는 줄도 모릅니다. 괴물이 있는지 천재가 있는지, 주위에 없으니 그게 세상의 전분줄 알고 살아가야 해요. 분명히 핑계를 나열하는 것만 같은 나약한 선배들의 말을 들으며, 좀 의심스럽긴 하지만 한편으론 정감 있는 분들이니까, 답 없고 갑갑한게 인생이란 말에 설득력을 느끼며 그렇게 정 붙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대로 부닥쳐 보고 뛰어들어 본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의 100년 어치의 보상도 인정도 일년만에 받을 수 있다고 그러네요. 앞서 백배의 연봉을 받는 그분의 이야기가 다소 과장이라고 그 분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굳이 가정한다해도, 5년, 10년치의 연봉은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숫자 아닐까요? 업종이 다르고 국가가 다르다 해서 생긴 특수성이라 치부해도 2년, 3년치 연봉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안되면 언젠가는 한번 세상이 변할지도 모르니 준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진 않나요?

저는 업계에 나와서 연 1억 이상을 버는 사람을 50명은 사귄 것 같습니다. 그 중에는 매우 형편 없는 사람도 많아요. 인성도 엉망인 사람도 있습니다.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수두룩 해요. 이 업계가 대충 일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연봉을 쉬이 허락하는 곳이 절대로 아닙니다.

한편으론 후배들에게 돈만 보고 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돈만 바라본 사람들의 파멸에 대해서도 밤을 지새며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노력과 꿈에 대한 보상이 불가능한게 아닌 세상이라고 더 강하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전 이 업계에 들어와서 수없이 눈으로 보고 확인하였지만, 세상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게 절대로 이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전과 노력. 안해도 좋습니다. 더 좋은 계획은 무엇인지를 스스로 잘 선택하면 되요. 본인이 어느 쪽을 선택해 어느 쪽을 멋지게 살아갈지 정해야지, 남에게 결정권을 넘긴다면 어찌 이 험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제가 말씀드린 노력 중의 절반은 좋든 싫든 죽이되든 밥이되든 강제로라도 하고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챗바퀴 위에서 뛰고 있을 때의 고통은 제가 차마 위로드리기도 가슴이 먹먹한, 대다수가 겪고 사는 현실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빡새고, 행복과 불행은 코싸인 차트처럼 오고 갑니다. 덜한다고 더 행복하지도 않고, 더 한다고 일반적으로 더 행복하지도 않아요. 다만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고 더 큰 사고를 할 수 있을 뿐이죠. 더 행복할 무기도, 더 불행할 무기도 많아진다는 것이죠.

자 이제 여러분 중 다수는 자신의 업을 정해야 합니다.

정하거든 미치도록 뛸 수 있는 곳을 가세요. 좋아하지 않아도 되요. 미친놈이 될 수 있는 곳을 가세요. 그리고 3년 목숨 바쳐 하세요. 그에 기하급수적으로 비례한 미래가 된다는 슬픈 스포일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어디를 가든 괴물들이 득실댈 겁니다. 거칠고 가슴 뛰는 경쟁을 하게 될 겁니다. 나의 한계에 도전하는 삶을 운명처럼 부여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기왕이면 본인이 선택한 무대 위에서 모든 땀을 흘려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밤이 늦어 그런지 그리 격앙되는 내용은 아니어서 좀 쳐지는 감도 있군요.

글쓴이

julius chun

안녕하세요 천영록입니다. 저는 두 아이의 아빠이자, 핀테크 스타트업 (주)두물머리를 창업한 기업가입니다. 또한 선물옵션 트레이더 출신이라 투자나 금융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읽어주셔서 늘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력에 관하여”의 2개의 생각

  1. 매우 공감되고 뼈있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트레이더 지망생 9년차 증권업 종사자 4년차인데 저 자신이 반박할수없게 뜨끔한 말도 희망을 주는 말도 있네요. 이런 좋은 글을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글들을 전부 잘 쓰시네요. 그나저나 혹시 진입 100번에 손절이 없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마크 와인슈타인이 생각나네요^^ fx시장에서 220전 220승이라는 괴물같은 승률을 내는 분을 우연히 알게된적이 있는데 그때 저도 세상에 미친사람이 이리 많다는걸 실감했었습니다

    Liked by 1명

    1. 안녕하세요 ^^ 댓글보고 저도 다시 읽어봤는데 비문이 많아 읽기 힘들군요.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입 100번은 아니고… 그냥 손절을 안한다는 분은 바로 Ahmet Okumus 라는 분입니다. 일주일에 백시간, 1만 종목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도 이런 분들이 없잖아 있습니다, 1만 종목 까진 아니지만… (없으니까)
      마켓 위자드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http://comerzan.info/2013/06/ahmet-okumus-from-istanbul-to-wall-street-b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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