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us Chun – 담벼락 2014년 1월 3일
배가본드는 참 위대한 작품 같다.
미야모토 무사시 소설도 어릴적에 참 감명 깊게 읽고 일본 문화도 제법 알고 하지만 그것관 다르다.
명작과 대작의 차이랄까. 위대한 개츠비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명작이라 얘기되지만 진정한 대작은 각자 생각나는게 따로 있을 것이다.
이미 슬램덩크로 인생지사 희노애락을 몇천만부 한세대의 명작으로 남겼던 그가 그린 무사시의 생애는 도전과 자기 극복으로 점철된 도학서적인 것 같다. 이노우에 자신의 삶보다 더 위대한 작품을 남긴 다는 것. 그 중에 이미 만화라는 장르를 넘어선 그런 느낌 – 랩의 에미넴이 그렇 듯 드라마엔 덱스터가 그렇 듯 외계인에게 이 장르에 한 작품만 추천하라면 할만한 그 인간걸작.
자꾸만 떠오르는 수백 장면 중에 압권은 오기와 살의로 충전된 무사시의 목각 악귀가 수년째 연재분에 하나의 구체화된 화두처럼 등장하는 그 모습이다. 검객으로 ‘죽고 죽이는 나선’ 속에 자신의 존재감만을 원한 채 치기로 밀어온 살의가 어느 덧 객관화 된 덩거리로 늘 때 되면 몸에서 삐져 나올 때. 그것을 객관화 하려 애쓰며 삶의 명예도 승부도 잊고자 한없이 자신이 쓰러뜨릴뻔 한 두 절정의 노고수의 자취를 스승 삼아 삶의 구석 구석을 헤매는 모습이 아마 작가가 그토록 그리고 싶던 모습 아닐까.
무예란 팔뚝의 힘도 허리의 힘도 다리까지 곁들인 완벽한 균형의 승부도 오기와 패기로 극복하는 정신의 문제도 아닌 자기 자신과의 끝 없는 대화로 이끌어가는 선문답의 연장선이 아닌가 하는, 개개인 안에 있는 질과 답 사이의 숙제 아닌가 하는 그야말로 도의 문제 같았다. 그것이 이노우에의 숙제임을 알 듯 나도 그게 찾고 싶다. 찾고 싶은 척 하는 것인지 무엇인지 모르지만 정말 손 끝에 느낄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그게 없으면 뭬가 의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