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너무 슬프기만 한가..

Julius Chun – 담벼락 2014년 4월 26일

공감능력 부족에 대한 기사도 나오더군. 과연 세월호를 보며 큰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게 잘못이나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 잔인한 경쟁의 시대에, 친척이 죽어도 큰 슬픔이 없는 집안도 수두룩할 것인데, 과잉비례한 슬픔을 조장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할말들이 있을 것 같다.
근데 결국은 교감이란 순수한 감정의 문제다. 슬픈 장면을 보면서도 전혀 공감하지 못하다가 화면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모습만으로도 왈칵 눈물이 나기도 하는게 사람 같다. 슬퍼서 슬퍼야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세상의 모든 슬픔에 일일이 다 교감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기사 한줄에 누가 어디서 몇명 죽었단 소리는 교감을 불러 일으키기 힘든 시대인게 사실이다. 그들의 눈물을 보고 그들의 개인적 사연을 접했을 때 그게 설사 픽션이어도 교감하는게 우리의 구조니까. 냉정한 얘기일 수 있지만 사실 자체가 너무 허망하고 처참할 정도로 냉정한 팩트를 얘기해보자면, 911 때 몇천명의 민간인이 죽은 것에 온 미국인이 눈물을 흘리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 후 빈라덴이 누군지도 모를 아이들과 여자들 십수만이 아프간에서 무차별 폭격에 희생 되었다. 정부를 탓하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정부 마저도 빈라덴과의 개연성이 거의 없던 나라였다. 공식집계 자체가 없지만 첫해에 십만 민간인이 죽었을 것이란 추측은 있다. 그들 나라 그들이 아는 얼굴이 아니었기에 같은 민간인이었으나 동정하는 이 하나 없었다.
교감은 내 삶과의 연개성에서만 나오는 것일까. 아무도 분노하지 않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은 불의한 죽음에 입다무는 사회. 난 이미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가끔 이렇게 떠들썩한 사고에 사회가 교감해줄 때면 나도 몇몇 기사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몇몇 의인들에 감동 받고 몇몇 교감자들의 교감의 진정성에 따스함을 느끼지만, 너무나 현실에 비례하지 않는 과잉보도에 마치 슬픔이 하나 없었던 세상처럼 꾸며 가는 것만 같아 어안이 벙벙하다.
그렇다고 보도를 줄이라는 것은 아니다만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다는 보도가 얼마나 진실성이 있는 표현인지 회의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차라리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는게 더 현실적인 보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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