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과 뇌에 대한 정말 판타지적 사견

Julius Chun – 담벼락 2014년 11월 1일

뇌. 뇌란 참 멋지다. 진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진화 역시 참 멋지다. 개인적으로 진화의 증거들을 보며 한순간에 만물이 창조됐다고 보기는 거의 힘들다는 점을 알지만 (무신론자임) 진화를 보고 있노라면 적자생존식 모델도 불가능한 논리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여러 종이 수없이 많은 모델로 변형해간다. 그리고 어떤 능력은 동물 스스로 얻어나간다고 믿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투명해져야겠다 해서 투명해지고 불빛으로 미끼를 삼고 싶어서 불빛을 몸에서 발산하고, 색깔이 현란했으면 좋겠다 해서 색채가 아닌 초미세 단위의 빛 반사를 이용해 날개에 만가지 푸른빛을 띄고, 보고 싶다해서 눈을 만들고 파장을 이용하겠다 해서 귀를 만들고,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술들을 억만가지 방법으로 총동원하는 생물들이 단지 시간이라는 툴만을 이용한 느린 진화의 과정이라 보기는 무리다.
판타지의 영역을 섞자면 결국 어떤 의지의 개입이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것이 한 무리 중 특수한 누군가의 의지로 몇백만년에 한번씩 큰 진화를 일거에 해낸다던지, 그것을 돕기 위한 더 고차원의 존재가 있었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하면 생물이 끝없는 고민과 가끔씩 큰 의지로 삶을 연명해가는 이유는 뭘까. 단지 생존? 번영? 어떤 생물은 번영을 꿈꾸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번영에 더욱 적합한 생물들도 얼마든지 더 많다. 나는 이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어딘가를 향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 개체 개체의 삶이 생존과 번영만을 위해 다투고 있다라고 일괄적으로 존재의 목적을 얘기한다면 그게 와닿느냔 말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향해가고 있고, 그 과정에 기적적인 진화들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점진적인 진화와 종간의 다툼은 늘 있어왔다. 하지만 혁신적이고 충격적인 변신의 과정은 무엇인가. 돌연변이는 생존을 해야 돌연변이 아닌가. 때로는 800도의 온도에서 아무렇지 않게 생존하는 생물들은, 그간 80도 100도의 온도에서 점진적인 진화를 할 기회조차 없었던 녀석들도 많다. 그 온도에 처하게 된 것이 하루아침의 일일테니까. 왜 인간은 최소한 몇종의 인간적 유인원과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혼자 전세계에서 살아남았는가. 진화라면 그들도 같은 방식으로 진화를 했어야 할 것 아닌가. 이 대부분의 질문의 끝에 뇌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 신과의 연결고리는 바로 여기 아닌가.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일종의 종교적 심판의 날과 매우 흡사할런지도 모르겠다. 이 긴 투쟁과 화합과 변신의 레이스에는 누군가의 약속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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