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그만둔 썰

(동문 커뮤니티에 올린 글)

안녕하세요. 저는 경제학부를 나와 34세의 끝자락에 서 있는 한 청년입니다.

경제 01 천영록 이라고 다른 글들에서도 소개를 했으니 여기도 다시 써놓겠습니다.
올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쌩뚱 맞지만 오늘 아침에 딸래미를 안고 함께 본 ‘가장 똑똑한 동물들’ 비슷한 이름의 다큐 내용을 좀 담아 볼까요.
응당 생각나는 동물은 돌고래일겁니다. 아주 어려운 트릭들도 쉽게 배울 뿐 아니라, 그림을 읽고 그것이 시키는 바를 기억하여 트릭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헌데 돌고래의 가장 복잡한 트릭은 자연 속에서 이뤄집니다. 한마리가 4~5m 정도의 흙탕물 원을 그리면 서너마리가 일렬로 서서 대기하고 있다가, 흙탕물에 위기감을 느낀 물고기들이 물 밖으로 뛰어오르면 뷔페를 즐기는 방식입니다.
또한 모든 돌고래가 다른 동물 수준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 외에도 자기자신을 밝히는 코드를 부릅니다. 프로그래밍에 익숙한 분들에겐 ping 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친한 돌고래들 끼리는 몇년 뿐만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다니는 경우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들 간에 거리나 상황 등을 소통하기 위해 이러한 ping 을 던지는 것이죠.
돌고래는 유인원 이전 가장 똑똑한 생물이었고, 지금까지도 두뇌의 상대적 크기가 가장 크고 뇌가 많이 발달한 동물이죠.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큰 뇌가 필요한지, 언제부터 이러한 진화가 시작되었는지 학자들은 궁금했습니다. 돌고래의 선조는 초대형 포식자였는데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몸을 줄이고, 서로 소통을 해가며 뇌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결국은 사회생활 때문에 뇌를 더 키웠고, 사회생활의 득을 누리는게 혼자 강한 것보다 더 좋다고 판단한 것이죠. (저는 우발적 진화론을 잘 믿지 않습니다. 모종의 판단이나 결정이 들어간 경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능이 뛰어난 동물들은 전부 사회생활을 합니다. 우리의 뇌가 가장 많은 역량을 사용하는 곳이 바로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남과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되려 저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아직 일주일이 채 안 됐네요, 사랑하는 동료들에게 통보를 한 것은요. 사회를 떠나 무엇을 하겠느냐는 어른들의 걱정이 많을 것 같아 아직 말씀 드린 분도 몇 없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가장 잘하는 생물체는 실상은 개미나 흰개미 등입니다. 철저하게 주어진 일을 하며 자신의 자리를 완벽하게 지키죠. 누가 가르친 적도 없지만, 누가 인수인계 한것처럼 태어나는 순간 부터 자신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여왕개미는 자녀이자 부하들에게 유전기억을 물려줍니다. 이들의 업적이나 효율이나 충성도는 정말 대단합니다. 조직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개미 조직을 꿈꿀 것 같애요. 그런데 왜 우리는 개미보다 돌고래에 가까울 까요. 때로는 서로 먹이를 놓고 경쟁하기도 하고, 때로는 팀을 만들어 협업하고, 때로는 서로 아기를 봐주고 때로는 우정으로 삶을 함께 하는 돌고래는, 그런 삶이 더 좋아서 그 길을 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뒀으니, 저는 지금 그만둔 사람의 입장만 생각을 하고 공감하겠죠. 특히나 며칠 안 되었으니 자기합리화로 똘똘 뭉쳐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꼭 개미처럼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조직이 돌고래와 개미의 차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돌고래의 방법을 한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리랜서의 삶을 너무 긍정적으로 그려둔 것 아니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흥미진진하고, 몹시 어려운 만큼 도전하고 성취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단지, 더 멋지니깐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올해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재밌게도 가장 큰 일은, 여기 성대 사랑에 8월 즈음에 글을 올리고, 멘토링을 시작하여 많은 후배들을 만난 일인 것 같습니다. 지쳐있는 후배님들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어두침침하고 짧은 시계를 뚫어보려고 손을 휘젓는 열정과 용기를 느꼈습니다. 나한텐 뻔한 얘기도 학생에겐 시커먼 물 속에 손을 넣어보는 두려움과 막막함과 호기심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기에 더 큰 용기를 내는 모습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으로 울컥하기도 하였고, 후배님들의 등 뒤에서 흡사 아우라 같은 것 마저 보였습니다. 뇌가 크기만 한 것보다, 자신의 몸 대비 상대적인 크기가 더 중요하듯, 후배님들의 지혜와 삶의 깊이보다는, 그 크기에 비한 용기가 제 안의 뭔가를 일깨워준 모양입니다.
남들이 선망(?) 할 수도 있는 증권사를 6년반을 다녔습니다. 중간에 펀드매니저도, 법인영업도 해보았지요. 그 무엇보다, 2008년에 세계에서 선망 받는 1위의 직업이 ‘트레이더’였었던게 기억나는데 (서브 프라임 사태와 함께 많은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요) 트레이딩을 꿈꾸었고 그 일을 원없이 해봤다는게, 어디서든 ‘트레이더’ 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게 제 인생엔 큰 축복이었습니다. 많은 자신감도 얻었구요. 수입이나 사회의 인정 보다는, ‘동급’이라고 느껴주신 정말 상상 초월하게 뛰어난 분들을 업계 안팎에서 쉽게 만나 가르침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게 가장 큰 혜택이었습니다. 내 몸에는 안 맞고, 나는 영원히 이방인이라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소위 이너서클이란 곳에 들어가서 나비 넥타이 매고 일원 흉내 한번 내본 정도의 느낌으로도, 그것을 목격하여 얻은게 참 많았습니다.
후배들에게 제 경험들을 한줄로 정리하라고 하면, ‘하면 된다’ 였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긴 하나, 그 어떤 것도 정해놓고 하면 됩니다. 한문단으로 정리하라고 한다해도 거의 마찬가지일텐데요, 하면 된다는 말은 질 보다는 양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김태희를 사귀고 싶다, 라는 건 질적인 문제이죠. 그런건 잘 안됩니다. 원래 이성 문제는 의지대로 잘 안되기도 하니까… 다른 예를 들자면, 1년만에 하버드에 편입학하고 싶다, 라는 건 분명히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한문장이지만, 사실 조건이 너무 복잡하고 질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하버드 박사를 졸업한 만큼 공부를 많이 하겠다, 라고 양적으로 정의해둔 목표는,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행동만 하면 되는 목표를 설정하세요. 안되는 이유가 단지 하나, 내가 하지 않았기 때문 밖에 없는 문장을 만드세요. 책을 1초만에 100권 외우겠다는 목표를 잡지 마시고, 책을 100권 외우겠다는 목표를 잡으세요. 그게 진정성 있는 목표면, 한장 두장 외워가면 됩니다. 일년간 한권을 외웠으면, 100권 외우는데 100년이 걸릴 것 같겠죠. 하지만 요령이 생기고 뇌기능이 늘어나 결국 20년이면 가능할수도 있습니다. 삶이 그렇지 않나요? 그런 목표를 잡고, 하면 됩니다. 하면 (희박한 가능성으로) 된다 라는 얘기가 아니라 (지금 시작)하면 된다 라는 얘기입니다.
죄송합니다 훈계라니.
저는 목요일부터 말년휴가(?)를 시작했습니다. 6년반 동안 함께 춤춰온 대한민국 파생시장에 작별을 고할 시간도 없이, 저는 다음 직장 1일차를 출근을 하여 사장님께 눈도장을 찍고 주어진 일에 매진했습니다. 사장님이래봤자 저 자신입니다. 같은 돈 주고 더 하드워킹하는 미친놈을 구할 길이 없어, 싼 맛에 저를 고용했습니다. 저 역시도, 같은 돈 받고 확실히 배울 곳이 이 사람 밑 밖에 없어 보여서, 어차피 새로운 업계 완전 초짜 아마추어로 시작하는거니 열심히 일하기로 하고 취업했습니다. 인격을 이분화 했습니다. 혼자 잘난 맛에 창업하려 해본적이 여러번 있으나 죄다 게을러서 실패하더군요. 처자식을 먹여 살릴 프로라고 생각하고, 보스가 있다고 생각하고, 동네 독서실에 앉아 오늘이 출근 4일째입니다. 근태가 중요하진 않으나, 매일매일 사장님께 업무량과 방향을 보고해야 하니 뭐든 쥐어짜내야 합니다. 사장님이란 표현은 이상하군요, 회장이 1인 사장을 고용했다고 생각해야겠군요. 뭐가 됐든 저는 고용자와 피고용자 관계, 투자자와 피투자자, 갑과 을 두가지 인격으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저의 가설은 하나였습니다.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저는 투잡은 힘들고, 능력상 1.7 job 이 가능하겠단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업을 위해 최소한 1.0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0.7로 증권사를 다닌다는게, 힘들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0.3을 다시 매꾸려고 이래저래 시간과 에너지를 쓰다 보니 창업 준비 마저도 진행이 매우 더디고 답답했습니다. 어찌보면, 이 0.3의 문제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했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1.0을 창업에 쓰고, 0.7을 다른 알바에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마저도 흠칫한게, 창업에만 해도 3.0 이 들어갈 거란 게 점차 명료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 하면 그 자체로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사는 자신감, 하면 된다라는게… (2.0 을) 하면 된다 였던 만큼, 2.0을 할 줄 아는 노하우와 경험이 있습니다. 딱 정말 그거 하나 믿고 갑니다. 하면 되더라.
후배님들께 도전을 하라느니 어쩌라느니 말을 떠들어 놓고 피드백들을 받으며 어쩌면 제 안에 더 울림과 책임감이 생겨서 이런 길까지 왔습니다. 불과 5개월. 사실 여기 글을 쓰는게 중요하진 않습니다. 제 마음 속에 있는 여러 후배들, 그리고 앞으로 만날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한순간도 멈춰서 주춤거리거나, 이 젊은 나이에 원로의 훈계 놀이를 하고 있어선 안되겠단 생각이 들어서 더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가 멈추면, 쪽팔릴 환경을 성대사랑이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이 사회는, 도전을 하면 쪽팔릴 환경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그 안에 더 빠져들기 전에 어떤 의미에서 저는 더 과감히 발을 빼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여러 동문분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했습니다. 어딜가나 비웃음을 많이 받을 시즌이 오고 있습니다. 멋있다기 보단 무모해 보일 것이 당연합니다. 사실은 이제야 무작정 도전하라는 선배들의 얘기의 무게와 무책임에 짓눌렸을 많은 젊은이들의 심정이 이해도 됩니다. 도전이라는게 말이 좋아 도전이지, 엄청나게 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고, 잘 될 것을 찾는 우연들이 많이 필요하지요. 그냥 도전하는 척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제 자신의 가벼움을 사과드립니다.
헌데 오해 마시기를, 사회 구조 내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도전을 하여 하루하루를 눈부시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다만 조금 다른 형태로 조금 더 나에게 가혹하고 비주류인 것을 시켜보고자 했을 뿐이니깐요.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뛰어난 개발자나 기획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당장 팀을 함께 하자는 얘기는 아닐지라도, 함께 소통이 가능한 분들이라면 오랫동안 만나며 서로 도움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멘토링은 해드릴 시간이 매우 부족합니다만, 저의 부족한 시간을 노동으로 조금 채워주실 분이라면, 저는 물물교환으로 멘토링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수에게 멘토링이라니 좀 웃기겠네요.
아직 법인을 설립하기 전입니다만, 회사 이름은 eclips 가 될 것 같습니다. 서비스가 3월 이전에 만들어지면, 매우 투박한 형태가 되겠지만, 동문 분들 한번씩 사용해주시고 피드백을 주신다면 저는 대학학비와 기회비용이 전혀 안 아까울만큼 큰 보상일 것 같습니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하시구요! 즐거운 연말 연시 되세요!
광고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