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us Chun – 담벼락 2012년 10월 6일

행복의 정의가 여럿 있겠지만 물질적 부의 한계란 참으로 명료하다. 우리는 어느 순간 비판의식을 잃고, 물질적 잣대를 체득하고 만다. 외제차, 고급시계, 고급 주택… 하지만 이 욕심이 절대적인건 아니다. 주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외제차라면 아무런 자랑의 가치가 없고 동경의 대상도 아니다. BMW에서 자동차 천만대를 무료로 제공해준다면 누가 갖고 싶어하겠는가. 물질적 부는 야구카드 같아서 내 친구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나만 가지고있다는 점이 가치가 생겨난다.
달리 얘기하면, 우리가 원하는 물질적 부의 대부분은 종국엔 주위 사람의 부러움을 받고 싶은 낯간지러운 욕심이다. 기본적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엔 다르지 않느냐고 하겠지. 그것도 일리는 있다만, 부담 가능한 거리에 집을 짓고 음식료 가격도 낮추어 살 수 있는 후지고 저렴한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것 아닌가 하는 점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많지 않다. 무슨 말을 한들 최소한 한국에선 전체 gdp 에서 집을 제외한 기초생활비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 부분이 되려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기초생활비 부담을 늘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점점 가져야할게 더 많은 삶의 무게를 강요당하고 있기도 하다. 야구카드를 수집하는 아이들에게 수집은 너무나 멋진 취미이지만 반이상은 강요 이기도 하다. 모두가 갖고 있는데 자신만 없다면 불행을 강요 당하는 것 아닌가. 수집을 하며 불행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희소한 것을 소유함으로써만이 충족되는 행복감과 불행에서의 일시적 해방. 백을 사며, 차를 사며, 집을 사며, 모두가 한번쯤 느끼지 않을까. 이 잣대에 나를 한번 맡겨버리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인기가 중간도 안되는 학생이 자신의 힘으로 유행에서 자유로워 질 수 없다. 아버지에게 눈물로 호소하여 비싼 야구카드를 구입해야 하는 고통을 물론 한국에선 느낄 일이 별로 없겠으나 그 비슷한 예는 몇만개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놔버려야 자유롭다. 니가 뭘 하던 뭘 갖던, 나는 내가 가진 무형의 것이나 챙기겠다는 주의. 그 무형의 것이 지혜나 사랑이 된다면 불패의 조건이 되어버리겠지. 물질이 행복보다 불행을 더 주기에 본인은 더더욱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글쎄 진정 그 불행의 근원에서 벗어날 길은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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