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사태와 관점의 차이에 대한 수용

담벼락 2015년 2월 28일

드레스사태를 보면 (사진 속 드레스 색깔이 파란색인지 금색인지 하는 것)
아무리 객관화된 간단한 사실마저도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파검인지 금흰색인지 사실 뭐 중요하랴. 내 주위 사람들과 색깔 따위마저도 다르게 보고 살았다는게 쇼크 아닐까.
난 색약이라는 이유로 놀림도 받아봤고 특전사 부사관 시험에서도 색약으로 떨어졌다. 세상을 보는 눈이 물리적으로도 다르다는 것은 좀 충격이었다. 애당초 초등학교를 모로코와 한국에서 보내고 중고등학교를 미국과 한국에서 보내며 21세기를 맞이한 성장과정 자체가 조금이라도 공통점이 있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모로코에는 한인 가족이 4가족도 안됐기에 이 사실을 잘 안다.
해외생활을 하면서 선진문화 혹은 후진문화를 체험해본 것보다 훨씬 중요한 단 하나의 장점은, 사람과 사람의 관점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경험적 통계다. 드레스 색깔처럼, 멀쩡한 사람이 당연하게 인종주의자이기도 하고 또 자기 주위 사람도 다 그래야되는 줄 알기도 한다. 극좌나 극우도 마찬가지다. 세상 모든 상식적 사람은 자신과 같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나는 평소에 어떠한 뻔한 상식도 인류의 100명 정도를 무작위로 모아놓으면 50% 이상의 수의 긍정을 듣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이 싸다는 것도 공기가 맑다는 것도 애들은 놀아야 된다는 것도 혹은 공부가 좋다는 것도 심지어 인간의 생명은 존귀하다는 것도 절대 다수의 의견이라 하기 어렵다. 물잔이 반은 비었다고 믿는 사람도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도 북핵이 위험하지 않다는 사람도 태반이다.
/*그래서 정치란 생각보다 복잡한 매커니즘이다.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상식들을 가진 인류가 서로 죽이지 않고 생존하게 할 방법이다. 그래서 국회에서의 언어적 폭력을 일정 긍정적으로 본다. 실제 폭력을 방지할 하나의 미니어처 전쟁이고 협상의 과정이니까.*/
남의 상식을 규정하고 대화하는 건 그래서 어리석은 짓이다. 우선 이 드레스가 무슨 색으로 보이냐고 묻고 그럴 수 있다는 걸, 그런 관점의 차이가 당연하다는 걸 인지할 때에서야 그제서부터 대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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