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 융합으로 인한 혁신, 개인적 집착

두물머리라는 이름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융합의 이미지에서 나왔다. 물론, 실사구시, 실학, 혹은 한적하고 아름다운 순한글 지명의 고요한 그 장소의 이미지도 담겨있지만.

내가 융합에 대해 집착한 사례 하나를 다뤄보자면, 주식과 파생의 융합이었다.

나는 파생트레이더로 시작해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주니어 시절을 보내고 주식 브로커로 눈길을 돌렸다. 주니어 시절엔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그다지 성과가 나오지 않았고, 윗분들과도 정서적으로 너무나 맞지 않아 괴로워 했으며, 평판이 좋지 못한 선배들 밑에서조차도 평판이 더욱 좋지 못한 나를 보고 있자니 깊은 좌절감이 생겼다. 평판이 좋지 못한 선배들한테라도 그나마 평판이 좋았으면 더 위안이 됐을런진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한가지 위로가 있었다면, 나는 군대시절에도 초창기에는 그다지 인정 받지 못하는 슬로우 러너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욕심이 너무 앞서고 실력은 뒤쳐졌는데, 독창적인 관점을 찾고자 노력하다보니, 전형적인 볼썽 사나운 주니어의 모습으로 성장했던 것 같다. 남이 만들어둔 길을 가지 않으려 하다 보니 흡수력이 낮았고, 흡수력이 낮은 주니어는 개똥만도 못한 것이 현실이다. 헌데 여하튼 나름 낙관적인 나는, 어디서나 무엇을 배우던지 나의 방식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의 말년은 매우 좋았다고 자평하는 만큼, 나만의 페이스로 배우는 도리 밖에 더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경제학을 배우는데 멘큐를 읽지 않고 노벨 경제학자들의 칼럼만 읽는 식이었다. 교수님한텐 찍히고, 학점은 잘 안나오지만, 특정한 기간이 흐르고 나서 멘큐 정도를 이해할 수준이 되고 나면 나름 강점이 생겼다. 보는 눈이 넓다거나.

어찌됐던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주니어에서 짤리다 시피 주식 브로커가 되었다. 당시엔 트레이더에겐 브로커를 하는 것이 무슨 치욕처럼 회자됐지만, 나는 몇몇 브로커들을 만나본 순간 이들이 호흡하는 세계가 훨씬 넓고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식의 세계로 들어왔고, 브로커 중에 파생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던 만큼 나름의 강점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직접 book 을 운용해본 경험이, 뛰어난 매니저나 뛰어난 담론들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제의로 자산운용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주식 운용을 직접 경헙해볼 수 있게 되었다.

어찌보면 파생트레이더는 매우 복잡한 상품을 가지고 매우 단순하게 생각하는데에 큰 의의가 있다. 아마 모든 매매가 그럴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핵심적인 edge 를 살려서 집요하게 파헤쳐서 꾸준한 이익을 창출해내는 것이 모든 운용의 핵심이다. 그런데 여의도의 주식운용은 반대다. 간단한 상품을 가지고 온갖 복잡한 담론과 정보들을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겉멋에 휩쌓인 채 본질을 망각한 듯한 면이 있었다. 말솜씨가 뛰어나고 사소한 지식을 잘 외우고 읊는 화려한 사람들의 얘기일 수록 궁극적으론 잘 안맞았고, 어떤 의미에선 쓸데 없는 노이즈를 과다하게 증폭시킨 혼란의 집대성 같았다. 어쩌면, 내가 아둔해서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보다 한결 똑똑한 사람들은 그 많은 정보를 훨씬 질서 있게 정리해냈으니까. 여하튼 나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수준의 노이즈 레벨이었고, 과감하게 파생 트레이더의 세계로 돌아와 버렸다.

그 당시에 내 커리어의 목적의식이 분명히 잡혔다. 주식세계에서 파생과 멀티에셋 매크로 트레이딩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고, 파생세계에서 멀티에셋은 커녕 주식 시장 조차 이해하는 사람이 없어서, 완연히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단절된 정보를 가지고 각자의 매매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두가지를 다 경험하고 멀티에셋 트레이딩으로 갈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아주 좋은 포지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파생트레이더의 세계는 100명중 90명 이상이 짤리는 세상이었고, 손익이 안 좋으면 비웃음의 수준을 넘어 멸시 당하기 일쑤였다. 화려한 미래 계획 따위는 눈앞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을 허황된 꿈이었을터였고, 그래서인지 누구한테도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하진 않았다. 내 꿈을 들어주며, 그 허황된 스케일에 감탄하며 점수를 주던 몇몇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물론 나의 목표는 아시아 최고의 헷지펀드 사장이었다. 그러기 위해 모든 종류의 매매와 그 매매의 핵심,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매매들의 융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 의미에서 트레이더를 하고 있는 순간을 건방지게도 ‘선수생활’이라 생각하며 ‘감독생활’까지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항상 히딩크를 생각했다. 최고의 선수로 뽑힐 수는 없으나, 최고의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대표 정도는 찍어야 할 것이고, 아마도 국가대표란 것조차 불가능에 가깝게 어려운 일일터라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헌데 우리나라 트레이더 씬은 매우 좁아서, 매매의 융합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고, 되려 자신이 전수 받은 특정 매매기법과 철학 밖에서 매매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여러 의미에서 자살 행위였다. 나는 정서적으로 잘 안맞던 첫번째 사수에게 배운 기법과, 주식에 대한 이해, 그리고 두번째 사수에게 배운 기법, 이 세가지를 토대로 기회가 될 때마다 운용의 융합을 생각했다. 그 바닥에도 도저히 쫓아갈 수 없을 것 같던, 천재적인 트레이더들이 즐비해서 정면 승부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히딩크 같은 기가 막힌 전략의 생존법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항우와 힘으로 겨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이 안하는 걸 계속 고민하고, 고리를 만들어 엮어갔다.

예컨대 이런식이다. 주식꾼들은 ‘판때기’를 매일 보고 있으면 주식시장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어제 오른 업종들이 오늘 비실댈때, 혹은 어제 오른 업종들이 오늘 더 강하게 오를 때, 주가지수의 등락폭이 같다할지라도 센티멘트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매니저들은 잘 안다. 하지만 차트나 파생시장에 반영되는 시그널들은 또 완전히 다르다. 둘 중 하나만을 사용했을 때보다는, 두가지를 섞었을 때 시그널의 교집합이 훨씬 강렬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또한 파생시장에서는 우리팀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하지만 스캘퍼들만 사용하던 호가 읽기라는 기술이 있었다. 호가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면 결정적인 특징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여러 기법들의 교집합 속에서 나는 밤마다 수백개의 차트를 보고 해외에 있는 주요 매크로 블로그들을 훑어 보고 호가 매매에 내재변동성에 대한 이해와 실시간 틱차트에 대한 이해까지 얹어서, “현재 120일선이 240.30 인데 오늘 피벗 저항선과 이 120일선이 걸리는 수준까지 상승한다면 강한 하락이나 강한 돌파 둘 중에 하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 즈음에 들어올 해외 시스템 트레이더들의 반응을 미결제약정의 급격한 움직임으로 모니터링 하되 베이시스 폭으로 선물에 집중되는 물량을 관찰하고, 주식 업종에 들어오는 물량이나 업종별 급등락 형태로 주식포지셔너들이 기술적 지표에 대응하는 방식을 참고하고, 20일이상 포지션을 가져가는 주요 옵션 트레이들이 OTM 미결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호가 움직임을 살피면서 day trading 선물 큰손들이 저항선을 요리하는 모습을 통해” 내 대응전략을 선택하는 식이었다. 물론 매크로 전략도 더하고 주도주의 움직임도 참고했다.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많다 보니 그 교집합에서의 시그널이 남들보다 훨씬 정확하다는 걸 알아채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옆에서 다른 선후배들은 “XX 장 왜 올라?” 라는 식으로 반응할 뿐이었으니까.

얘기가 길었는데, 하고자 하는 얘기는 융합적 사고의 장점이다. 나는 슈퍼스타가 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널부러져 있는 무기들을 줏어서 아주 큰 무기를 쉽게 만들어냈다. 그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금융에서도 이런 것이 가능했다. 이유는, 똑똑한 사람들도 군중을 따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바닥을 깊이 파는데에 전문적인 사람들이 많다. 남의 땅을 보고 배우거나 희한한 방법을 접목해보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 머릿속에 큰 벽이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익숙한 것에서 안도감을 느끼는게 사람이기 때문에, 나보다 자질과 기술이 뛰어났던 많은 사람들도 융합에는 관심이 없다. 똑똑한 사람 백 중에 99명이 관심이 없다는 것은 나에게 공포감이 아니라 안도감이다. 그들보다 앞설 수 있는 유일한 통계적 장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것은 아니다. 한 우물을 깊이 판 사람이 다다르는 천국은, 융합을 추구하는 사람이 다다를 천국과는 다른 세계이다. 나는 히딩크의 길을 따르고자 했고, 히딩크의 천국에 들어가고 싶었을 뿐이며, 영원히 박지성이나 메시의 천국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두물머리는 재밌게도 융합을 토대로 만들어졌지만, 특히 주식과 파생의 결합으로 상품을 만들어주고 있다. 왜 굳이 파생을 써야하는지 답답해하는 사람들도 있을런지 모르겠다, 특히나 서비스 개시 전에는. 내 생각에는, 어떤 상품들의 조합은 기적과도 같은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단순히 지난 7년간 이어져온 내 고집의 연장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미에서 꿈을 꾼다. 내가 오랜기간 직접 경험했던 그런 두 상품의 장점의 교차점에서 이뤄지는 퀀텀점프를, 이전에 없던 효율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꿈을. 이런 꿈이 여전히 조소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자칫하면 팀 식구들을 시궁창으로 안내할런지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퀀텀점프의 흔적을 경험해본 사람이 이 바닥에서도 너무나 적어, 가끔은 나뿐이 아닐까 하는 외로움도 있다. 그러니 내 자신을 믿고 나아가볼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주식이 더 우월한지 아닌지 하는 담론은 사실 이미 수년전에 머릿속에서 정리했기 때문에. 결론은 항상 융합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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