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생각중이신 분들께, 팀을 먼저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 사업계획서가 먼저냐, 팀이 먼저냐 하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라 어렵긴 하지만, 결국 사업에 대한 계획보다 팀이 만들어지는게 더 결정적이고 중요한 이슈 같다. 사업에 대한 계획은 팀을 만들기 위해서 결정적인 편이지만, 사업의 방향에서는 어쩌면 덜 급하고 덜 중요한 이슈다. 어차피, 아주 많은 수정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사업계획 없이 팀을 꾸린다는 건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정답도 없다. 그냥 알던 사람, 주위에 보이는 사람, 연락 닿는 사람, 친했던 사람, 소개 등으로 닥치는 대로 모아보는 수 밖에 없다. 최첨단의 시기에도 결국 사업과 가족을 만드는 방법은 그렇게 원초적이다.
팀을 꾸림에 있어서 하고 싶은 얘기들이 조금 있다.
첫째, 문화가 중요하다. 팀을 꾸려야지, group 을 꾸려선 안된다. 그냥 집합만 해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간의 교감과 소통이 가능할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이것도 어려운 문제다. 아마도 문화라는 단어보다는, 가치관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실력이 좋은데 윤리의식은 별로 없는 사람이 있고, 윤리의식만 엄청나게 강하고 실력은 없는 사람이 있다손 쳐보자. 둘이 한자리에 있으면 둘은 장담컨대 서로를 경멸할 것이다. 당연히 윤리의식도 있으면서 실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최우선 가치관이라는게 있을 것이다. 도덕이 더 중요하다면, 굳이 도덕성을 깔아뭉개는 가치관의 사람을 급하다고 뽑아쓰지 말자. 창업자와도 싸우지만 반드시 팀 전체의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차피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은 어디서든 문제가 생길테니 좋은 예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게다가 만약 그런 갈등으로 인해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이 아니라, 도덕성이 있는 사람이 먼저 짐을 싸서 나간다면? 한마디로 개판이 되는 것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이건 도덕성이 더 우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실력이 더 중요하다면, 도덕성만 따지는 사람을 뽑아서 갈등을 만들지 말고, 도덕성이 더 중요하다면 실력만 믿고 도덕을 무시하는 사람 뽑아쓰지 말라는 것이다. 성실한게 중요한데, 변덕스러운 천재를 합류시키지 말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데 너무 우직하고 보수적이기만 한 사람을 데리고 있는 것도 갈등의 여지가 되며, 새벽형 인간이 자유로운 영혼을 뽑아 써도 팀의 문화가 일원화될 리가 없을 것이다. 문화란, 비슷한 영화 좋아하거나 비슷한 음식을 좋아하거나 다같이 칼퇴하는 걸 좋아하거나 삐까번쩍한 사무실을 지향하는 그런 류의 코드나 문화가 아니다. 설령 친해지지 않는 사람들 간에도, 서로 존중하고 교감할 수 있는 주요 가치관들이 있으면 되는 것 같다. 우리팀은 나랑 다르게 술도 안먹고 사람 만나는 것도 부지런하지 않은, 말수도 없고 그런 친구들도 많다. 그렇지만 일에 대해 진지하다는 면에서 가치관이 비슷하다. 서로 value 하는 것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은 끝장을 내고 싶은 고집들이 있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제대로 불태워보고자 하는 고요한 집념들이 있다. 이런게 하나의 문화인것 같다고 나는 느낀다. 이 문화를, 다같이 나이트나 클럽 다니는 걸 공유하는 문화와 착각해선 절대 안된다. 다같이 레드와인 좋아하거나 다같이 액션 영화 좋아하는 건 그냥 취향이다. 취향은 같아도 그만, 다양성이 있어도 그만이다 내 보기엔.
둘째는 부하를 뽑을게 아니라는 것이다. 동료를 모셔라. 이건 전원이 파트너나 다름 없는 우리팀의 고유한 생각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주위에서 이 실수를 너무나 많이 봤다. 자신과 비슷한, 자기의 얘기를 알아먹을, 그런데 자기보다 일을 못하는, 또 자기와 특별히 다른 대단한 특기가 있지 않은 사람을, 예컨대 ‘그냥 말 잘듣고 친하고 똘똘한 후배’를 끌어다 쓰려는 사람들이 장담컨대 창업자의 90%다. 명령을 내리는 권력이 있으면 리더라고 생각하고, 명령을 잘 알아처먹는 사람이 있으면 훌륭한 팀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만큼 잘못된 생각이 있을 수가 없다. 이게 사회생활에선 정상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오히려 대기업 부서원 간의 관계라는 점에서 예외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을 고스란히 따라하기나 잘하면 될만큼 대충 복제 가능한 저부가가치의 노동을 하고 있다라면 오케이다. 하지만 창업에서 그렇게 저부가가치용 팀구조로 성공하긴 힘들다. 나보다 뭐 하나를 확실히 더 잘하는 사람이랑 있어야 한다. 저부가가치 직원들은 한참 후에 뽑아도 된다.
나 역시도 회사생활하며 내가 제법 잘한다 생각했기에, 나랑 비슷한 사람을 썼으면 하는 욕구가 있었다. 나같은 사람을 계속 키워내면 엄청나게 잘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본부장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창업은 안된다. 내가 마이클 조던이라면 조던을 여럿 키울 수가 없고, 내가 히딩크라면 히딩크를 여럿 키워봤자 소용이 없다. 나만큼 열정적이지만, 분야가 다른 사람을 파트너로 데리고 와서 힘을 합쳐야 하는게 정석 같다. 인문대생이라면, 인문대에서 만난 영어 좀 잘하거나 성격 좀 좋거나 똘똘한 친구들을 포섭하려고만 하지 마라. 특히 창업자가 직접 할 수 있는 분야를 두세명이 분업하려는 건 포지션의 중복이다. 창업자가 해야하는 건, 창업자가 직접 다 해라. 대신에 혼자 배워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타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셔와라. 가서 빌던지, 가진 돈을 다 주던지, 여자를 소개 시켜주던지, 사업계획서를 보여주던지, 술을 진창 먹이던지, 심지어는 약간 과장이나 거짓말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셔와라.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 떠날 수도 있지만, 거짓말을 안하면 아무것도 시작 못할 수도 있다. 나도 거짓말 했다. 내가 대단히 잘할거라고. 그땐 확신이 더 없었는데, 별 수 있나. 누가 그러던데. 창업가는 끝없이 거짓말 속에 살아야 된다고. 1년안에 접을 가능성이 대단히 많음을 알면서 당당하게 직원을 뽑고, 잘 안될 가능성이 많은 걸 알면서도 잘 될거라고 말하고, 현금이 바닥 나는데도 앞으로 더 성장할 거라고 말하잖는가. 제정신인 사람의 머리구조가 아니다 어차피.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 꼭 개발자나, 여타 기술이나 인사이트가 가진 사람을 데리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위임한다는 생각으로, 모셔온다는 느낌으로 팀을 꾸리자. 그들이 마음과 정성을 담아서 전문성을 쏟아내고 있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도저히 내가 지도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의 작업이 아니다. 시간이 많다하더라도 창업자가 감당해낼 수 있는 규모와 깊이의 일들이 아닌게 대부분이다. 창업자는 그저 그들의 열정이, 팀 전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연동되어 발휘되고 있는지를 체크하면 된다. 군부대를 유지하는데 1000가지의 업무가 다뤄져야 한다면, 뛰어난 지휘관이 개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10가지도 안된다. 그런데 100개짜리 묶음을 처리할 수 있는 팀을 지휘할 수 있는 전문가를 10명 20명을 뽑아서 위임하는 것이다. 1000가지 업무의 플로우를 다 파악하기는 커녕, 100개짜리 묶음 마저도 구체적인 처리 방식을 이해하긴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그러한 전문가 10명들이 서로 신의성실을 다하고 지휘자의 의도를 교감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래서 군대에서도, 내 부하인 후배 지휘관보다는, 행정보좌관들의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 지휘관들만 있는 조직은 전략은 짤런지 몰라도, 실제 전문성이 많이 필요한 보급 관리도, 전투도 전혀 해낼 수가 없다.
셋째는 친분을 떠나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나도 정말 친구가 많은 편에 속했다. 친한 사람도 많았고 죽이 잘 맞는 사람, 말 잘 통하는 사람 등과 꼭 같이 일해보고 싶어서 인연을 계속 쌓아갔다. 그런데 의외로 공동창업에는 친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다. 친한 사람에게 프리미엄을 준다면, 친함이 사라지는 그 순간 그만큼 죽이 안맞는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파트너간에 친분은 어차피 없어질 수도 있는, 언젠가는 도마에 올려놓고 지지고 볶아야할 협상소재일 수 있다. 친구랑 동업하면 망한다고 그러잖는가.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나 상호필요는 많지 않은데, 친분이 강했던 관계가, 어느 순간 그 친분이 증오로 바뀔 수 있는 상황으로 가면 회복 불가능이 되어버릴 것이다. 차라리 존경심이나 필요가 많은데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과 일하고 있으면, 사이가 나빠지더라도 큰 타격도 아닐 뿐더러 실제로 사이가 나빠질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친분은 사업의 성패에 따라 어차피 엄청나게 흔들릴 수 있는 요소다. 생각해봐라, 이 사업이 성공한다면, 나는 지금 같이 있는 친구들과 평생 제일 친하게 지낼 것이다. 또한 대표이사는 필연적으로 팀원과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예컨대, ‘어젯밤에 회사 망하는 꿈꿨어’라고 말할 수 있는 대표이사가 있을까. 그렇다고 그런 꿈을 꾸지 않는 대표이사도 없다. 결국 팀원과 허물없이 불알 다 까놓는 친구로 계속 남는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부하를 뽑지도 말아야 하지만, 절친이랑 사업 벌리고 매일밤 서로 소주 먹거나 일하면서 같이 농담 따먹기 하고 신나서도 안된다. 장담하는데 6개월안에 접는다. 놀다 보니 일이 안되고, 안되다 보니 술한잔 하고, 하다 보니 일이 더 진행이 안되었고, 그러다 보니 남탓하고, 그러다보면 실망하고, 그러다보면 충격 먹고, 그러다보면 흩어진다.
그러나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은 좋다. 하루아침만에 사귄 사람은 제 아무리 MIT 출신이어도 평생을 도모하기 힘들다. 상대방의 주요 가치관은 알아야 한다. 평생동안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지, 그 사람이 절대로 하지 않을 일과, 반드시 추구하게 될 일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유비 관우 장비의 관계 정도가 참 좋다. 서로 포지션이 확연히 달랐고, 그 팀에 서로 가져오는 가치도 명료히 차이가 났다. 장비는 명문가 출신으로 윗사람에게 예의가 바르고 지식도 뛰어났다고 한다. 유비는 특유의 흡입력이 있었고, 관우는 진중함과 무인으로서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서로 맡은 포지션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고, 서로 협의라는, 협객들의 도의를 공통된 가치관으로 뭉치고 신뢰하되, 개별적인 행동 규범은 각자 개성이 있었다. 유비 혼자였으면 제갈량을 모셨을까? 세명이 조조라는 카리스마에 대적할 팀이었기에 스카웃도 원활했다.
슬램덩크의 멤버들도 좋은 팀이다. 서로가 서로의 포지션을 절대로 대체할 수 없었고, 다 같이 모종의 가치관을 공유했다. 약간 날건달 같은 이들이, 안감독 밑에서 농구의 즐거움을 배우며 서로를 의지해가고, 강백호로 대변되는 급격한 성장을 즐겼던 것 같다.
이런 팀원들을 데려오는 자세는, 나는 인수합병의 자세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큰것을 떼어주는 대가로 상대방이 가져오는 패키지를 팀에 합류시키는 것이다. 내가 취업자리 줬다고 생색내어야 할 사람이어도 문제가 있다. 함께해줘서, 비록 중간에 헤어지게 되는 한이 있어도, 내가 두고두고 고마워할 그런 사람을 찾아서 설득하고 부탁해야 할 것이다. 물론, 뽀록으로 얻어지는 경우도 많다. 답은 없지만, 사업계획이 틀어지면 당장 나갈 사람이 아니라, 함께 사업계획을 더 만들어갈 사람을 꼭 만나서 큰 일을 도모해보시기를.
이제 일년된 창업팀의 팀장 얘기니 별로 도움 안되거나 나중에 수정해야 할 부분도 많을 것 같다. 2학년생한테 듣는 대학생활 이야기가 가장 생생하기에 한번 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