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에서 공채로 배운 것들

요새 스타트업 때문에, 혹은 더 본질적으론 취업난 때문에, 혹은 빠른 경영환경의 변화 때문에 ‘공채 출신’의 관념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다들 이직을 많이 생각하고, 첫 직장의 중요성에 대해 덜 진지하게 생각한다. 물론 나야말로 주위에선 직업과 업의 차이에 대해 설파하고 다니는 나발수 중 한명이었으니, 더 그렇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지나고 나서 하는, 군대 얘기처럼 식상하고 편파적인 얘기이지만, 첫 직장 생활은 정말 중요한 거 같다. 나는 키움증권이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온라인 증권사 시장지배력이나 성장성이 가장 좋은 증권사 출신이다. 나는 사실 공부를 못해서 증권사 공채를 들어갈 형편도 안됐지만, 한편으론 트레이더를 직접 지원해서 특채로 100대1의 경쟁을 뚫고 입사해 그 회사의 공채라는 생각을 별로 안했다. 다행인건 키움이 당시 즈음부터 공채 문화를 키우는데 관심이 많아 가족으로 보듬어준 것이다. 8명 정도의 동기가 같이 공채 흉내를 내며 공채 문화를 키워갔다. 키움이라는 보금자리를 떠나기 전까지 나는 공채로 뽑아준 친정의 고마움을 잘 몰랐다. 조급하고 갈 길 먼 여느 청춘이었으니까. 하지만 경력직으로 타사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싸늘하고 냉정한 평가를 온몸으로 느끼며, 아 이제서야 프로의 세계에 왔구나 하는 짜릿함과 한편으론 친정의 따스함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다. 어찌 됐건 나는 공채 같은 포근함 말고 더 험난한 과정을 헤쳐가고자 해봤지만, 키움을 만들고 우리에게 관심을 주시던 대다수의 임원들 역시도 키움이라는 스타트업을 키워나간 개척자들이셨다. 또한 어마어마한 성공을 만들어낸 위대한 개척자들이기도 하셨다. 한국의 증권업은 키움을 제하고는 논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다 자기 경험 속에서 배운 것만 기억나기 마련이므로 사실 어디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더라도, 뭔가를 하나쯤 배울 누군가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나는 키움의 고위 임원진 분들과의 짧은 대화들을 평생 곱씹으며 살아간다.
페친이시기도 한 윤수영 대표님은 당시에 전무님이셨다. 증권업계 전체의 대표적인 기획통 중 한분으로 꼽히셨다고 들었다. 나는 함께 일해볼 기회가 없었지만 젊은 시절의 전설은 익히 들었다. 그 분이 해주신 말씀을 기억한다. 첫째는 대기업 임원은 성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하와이 가 있다’고 하셨다. 성공의 기준을 낮게 잡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셨고, 생각을 넓게 하라는 의미기도 하셨다. 둘째는 사람을 사귀는 데만 너무 큰 가치를 두지 말라는 것이다. 본인이 성취를 하고 성공을 하면, 주위에 사람이 득실 거리고, 본인이 성취를 못하면 있는 사람도 떠난다는 것. 그런 것에 너무 연연치도 말고, 그런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성취 중심적 증권업의 매서운 원칙들을 알려주고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의미기도 하셨을 것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증권업은 과도하게 관계중심으로 자기 가치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실 없이. 셋째는 좋은 아이디어를 탐구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라는 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개인투자나 열심히 하라는 대다수 증권맨들의 얘기와 흡사할 수 있지만, 어쩌면 직장인이기 이전에 증권맨으로서 세상 돌아가는 바와 돈이 흐르는 바를 계속 고민하는게 우리의 정체성에 더 맞닿아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세상 돌아가는 큰 흐름을, 물리적인 성과로 연결해내는 인과성에 대한 연구를, 아무리 백오피스에 있더라도 꾸준히 해야한다는 의미셨다. 여러가지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말씀들이다.

읽는 사람 기준에서는 별 것 아닌 얘기들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 나이의 나에게 큰 인상을 준 뾰족한 인사이트들이었던 것 같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인상이 깊었던 김익래 회장님의 말씀은 더 생뚱 맞을 수 있다. ‘사람의 인생은 첫직장 3년 안에 결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군대에서도 느꼈는데, 군생활 2년의 모습은 사실상 훈련소에서 갖춰지고, 훈련소에서의 자세는 사실상 훈련소에 입대하는 나의 마음자세에서 결정이 나는 것 같았다. 나비효과처럼, 처음의 마음과 처음의 습관이 나의 세계관을 만들고 그 세계관과 조우하는 나의 자세와 틀을 만들어 평생을 가져가게 된다. 군대를 우습게 본 사람은 군생활 내내 모든 걸 건성으로 대할 수 밖에 없고, 군생활에 군기를 잡고 임한 사람은 군생활 내내 고귀함과 진지함을 지키고자 한다.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그런 환경을 바라보는 자세에서 모든게 시작되고 끝난다. 자신이 우습게 보는 환경에서 이미 게을러도 혼나지 않는 상호관계를 만들어 둔 사람이 스스로를 혁신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마치 회장이 될 것처럼 열심히 시작한 사람은 그 관성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또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초창기에 나의 자세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셨나 싶었다. 내가 보기에 회장님보다 못하지 않을 것 같은 카리스마를 갖춘 어느 임원분께 왜 직접 창업을 하지 않으시나 여쭤봤더니, ‘오너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엄청난 선언이다. 얼핏 회장님의 말씀과는 위배될 수도 있는 표현이다. 그런 면에서 오너는 ‘남들이 보기엔 하늘이 내렸다 싶을 정도로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노력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오너를 하늘이 내린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 분과, 오너로서 마치 하늘이 내린 것처럼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과는 삶의 디테일에서 여러가지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또 어느 상무님께선 나를 앉혀놓고 많은 얘기를 나눠주시곤 하셨는데, 임원이래봤자 연봉도 얼마안되고 지분도 없다, 하지만 내 회사라고 생각하면 내가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재미 때문에 새벽에 눈이 떠지고 매일매일이 미치도록 재밌다, 이런 경험을 꼭 해보기를 추천한다고 하셨다. 다른 임원분들은 고통을 호소하곤 하셨는데, 그 분은 정말 매일 매일 너무 즐겁게 회사를 다니시는 것 같았다. 그 분의 눈빛이 잊혀지질 않는다. ‘정말 재밌다’ ‘최고다’를 만날 때마다 연발하셨다. 저런게 열정이고 저런게 성공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런 얘기들은 초창기에 들은 얘기들이다. 이후에 여러 어른들을 뵈며 더 자세한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다. 어떤 분은 극악한 반면교사였지만, 저런 사람도 먹고 사는구나 하는 차원에서 인사이트를 얻었다. 사회생활이라는게 그런 면에서 어쩔 수 없다. 싸이코 같은 사람 밑에 일하며 저런 사람을 뽑아 쓰는 회사의 시스템에 대해 의아하기도 했었지만, 시간 지나고 보니 어떤 싸이코를 만나도 의연해질 수 있는 강인함을 얻게 되었다.

키움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10년 이상을 눈부시게 성장한 회사의 DNA 를 경험해봤다는 것은 나에게 영향이 크다. 키움은 지금은 번듯한 사옥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엔 그저 여의도에서 임대료가 가장 싸다는 이유로 유화증권에 입주해있었다. 후진 사무실에서 이면지 한장 한장 아껴쓰는 알뜰한 문화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워런 버핏이 탐방을 가면 가장 좋아하는 창업자의 자세라고 한다. 기업과 고객을 생각해야지, 허세에 신경을 쓰는 회사는 절대 투자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 번듯한 사옥이라는 것도 2008년 금융위기가 있을 때 가히 똥값이라고 불릴 가격에 인수했다. 남들이 공포에 휩싸여 제무제표를 정리한다고 터무니 없는 가격에 건물을 내놓을 때까지 현금을 들고 침착하게 기다렸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매수했다. 그 건물가격이 한해만에 원상복귀하며 가져다준 수익만도 수백억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ROIC 에 대한 냉정하고 집요한 고민이야 말로 오너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회장님은 IBM 출신으로 IT 벤처 1세대셨다. 그런 키움이 의외로 트레이딩 등에서 새로운 도전을 꺼려하시는 모습을 보며 왜 더 진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을 회장님께 건방지게 여쭤본 적이 있다. 회장님은 잊지 못할 답을 해주셨다. ‘IT 란 퍼스트무버가 시장을 가져가는 구조가 맞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금융업은 다르다. 누군가 부딪혀서 얻어맞는걸 다 확인한 후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 보수적으로 접근해도 충분히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두 업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냥 보수적인게 아니라 매우 깊은 판단을 통해 적절하게 보수적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 표현을 가슴에 새긴다. 핀테크라고 무작정 뛰쳐들어갈 것이 아니라, 양질의, 검증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속도보다는 검증된 아이템을 적재적소에 가져가는게 더 중요하다. 키움은 의외로 온라인 증권업에서 3번째 주자였다. 하지만 창업 속도에서 앞선 것이 아니라, 이단아 같은 차별화와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서비스에서 앞섰다. 그리고 수성과 공성의 절묘한 균형으로 지금까지 회사를 키워가고 있다. 지금 인터넷 은행 등에 키움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 누구보다 이 분야를 오래동안 깊게 고민한 팀이 키움이기에, 그 누구보다 인터넷 은행을 제대로 만들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금융 혁신에서 모두가 은근히 꿈꾸고 있는 지위가 ‘제2의 키움증권’이다. 그런데 키움증권이 지금 아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안일한 생각이다.

여하간에, 내가 키움을 들어가고 키움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인 행운이다. 하지만 어느 회사를 들어가더라도 그 회사의 좋은 DNA 를 곱씹어볼 기회는 있을 것이다. 키움이 내게 최적이었다가 아니라, 내가 키움에 있었기 때문에 마침 내가 듣고 싶은 얘기만 들으며 배울 수 있었던 것일터. 훨씬 작은 회사도, 훨씬 큰 회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신에 물론 대형사에 있으면 안일해진다. 조직에 정신이 녹아버린다. 그럼에도 조직에서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배움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젊은 조직에서 윗선으로 올라가신 분들은 이런 점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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