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병

남들이 보기엔 팀장으로서 내가 꽤나 느긋한 편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삼국지 게임에서도 천하통일을 하루만에 하려는 건 야망이 아니라 조급함이지 않은가, 한편으론 삼국지 게임을 하루만에 끝내려다 보면 게임의 목적 (재미)을 느낄 틈새가 없지 않겠는가, 라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연병’ 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연병은 말 그대로 병사를 훈련 시킨다는 표현인데 연병장이라는 표현 밖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다만 킹덤이라는 만화에서 어느 장수가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정예군을 상대로 잡싸움을 계속 걸어가는 것을 보다가, 설명충 주인공이 이것은 ‘연병!!’ 이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며 인상이 깊었다. 싸움 경험이 없는 민병들을 리스크가 적은 전투의 흥분감에 자꾸 노출시키면서 훈련을 시켰다는 그런 장수의 기발한 반전을 독자에게 선사하기 위한 연출 중의 일부였다.

우리의 팀원들을 연병시키고 있다라면 꽤나 오만한 발상일 수 있다. 특히나 주주들에겐 지나친 유희나 느긋함으로 보일테지만, 나는 연병 없는 조직은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서든 일반 조직에서든, 어떤 업무 포지션도 하루아침에 흡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 아무리 익숙한 업무라 하더라도, 사람이 바뀌고 조직이 바뀌고 환경이 바뀐 상황에서는 그에 맞는 적응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적응이라는 과정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어떤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조직원이라도 새로운 학습과 적응과, 자기발전이 동반되어야 더 강한 팀이, 더 효율적인 팀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스타트업이라면 모든 환경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쟁터의 외딴 부대만큼이나 다양한 불확실성을 맞이하게 된다. 그 안에서 팀원들의 동적인 자기변화의 복잡성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팀빌딩이 중요하다는 것 아닐까. 그래서 스타트업 조직의 가치가 일반 조직보다 높은 것이니까.

이 연병의 개념은 특히나 리더에게 적용된다. 장수가 성장해가는 과정이니 ‘연장’이라고 불러야 할까. 여하간에 가장 필요한 성장은 리더의 성장이고, 구성원 모두와 함께 성장해가며 실무적 dna 를 융합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니발은 십대에 아버지의 부대원들을 끌어모아 냅다 로마로 진군해갔다. 진군 두달간의 과정이 곧 연병이었고, 두달만에 전군이 한니발을 목숨 걸고 섬겼다고 한다. 한니발의 탄생이었고 동시에 한니발 군의 탄생이었다. 행군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과정을 눈여겨 봐야 한다. 시저는 자신의 군단에게 대열 없는 마라톤 진군을 시켰다. 도착한 순서대로 쉬다가 다시 출발해서 헤쳐모이는 역대 최고속의 행군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최강의 시저 군단들이 만들어졌다. 연병은 그 리더의 성장을 녹여내 전 구성원이 유기적 성장을 하고 조직적 일관성과 효율성을 갖춘 팀이 되어 스스로 입증해가는 과정이다. 리더가 바뀌든 구성원이 바뀌든 새로운 연병의 과정이 필요하기도 한 이유다. 중대장이 함께 땀을 쏟아내지 않은 부대는 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신성한 스타트업의 성장 과정을 구시대적 군사 용어에 맞추는게 이상해보일 수 있겠지만, 모든 위대한 조직은 비슷한 기본원칙에 의해 만들어진다. 호흡을 맞추고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갖추어진 인재를 대충 모으면 조직이 굴러갈 것 같다는 생각은 환상적이다. 어느 누구도 갖추어진 사람은 없다. 자기의 dna 만큼 열심히 주어진 공간을 채워가는 것이 사람의 매력이다. 깎아빚은 조각상 같은 인재를 껴다 맞출 수 있는 조직도, 경영환경도 없다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싼 인력도, 제 아무리 비싼 인력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자기 자신이 몸을 던져 성장하지 않는다면 연병은 꿈에도 못 꿀 일이다.

그래서 연병(염병X)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때론 조금 돌아가게 되는 상황도 조급해지지 않는다. 프로젝트는 돌아서 가더라도 팀이 더 강해져있는 길이 되도록 설계해놨다면 어느 쪽이 되든 잃는게 없을 것이다. 우리도 매일 그렇게 되길 기대하고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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