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더와 기업가의 닮은 점

나는 전직 트레이더였지만, 아직 자리잡은 기업가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무척 닮은 꼴을 많이 느낀다.

 

트레이딩에 있어서 난 비교적 성공한, 상위 3% 수준은 되었던 것 같지만, 상위 1%가 전체 트레이더 연봉의 90% 이상을 가져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트레이더의 하위 95%는 마이너스다. 이 점이 기업가와 닮아있다. 하위 95%는 낮은 성취를 이루는게 세상의 구조라지만, 기업가와 트레이더는 낮은 성취가 바로 지극한 고통이고 좌절이 된다.

 

많은 기업가들이 실패한 기업가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이 점이 절절히 공감이 간다. 성공한 트레이더에게는 패턴이 많지 않다. 전부 제각각이다. 게다가 애당초 샘플 수가 적어서 뭐라 말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에게선 찾기 힘든, 실패하는 사람의 특성은 매우 명료하다. 게다가 매우 확실하고 빈번하게 주위에서 관측이 가능하다. 톨스토이는 불행한 가정은 만가지 이유가 있고 행복한 가정은 한가지 이유가 있다라고 했던가. 이 말이 참으로 잘 들어맞는다. 불행할 수 있는 이유는, 실패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고, 그 특성들은 전부 친인척 관계다.

 

트레이더들 중 90% 이상은 한가지 이유로 망한다고 본다. 순진해서다. 기업가도 마찬가지다. 망한 기업가들을 보면 하나 같이 “그럴 줄은 몰랐다” 고 한다. 이유도 다 제각각이다. 친한 사람의 어이 없는 배신으로, 혹은 작은 욕심이 재앙이 되어서, 사소한 실수로 송사에 휘말려서, 몇년째 잘 팔리던 물건이 하루아침에 안 팔려서… 모두 들어보면 어처구니 없고 예측 불가능했던 외부환경이다. 트레이더도 마찬가지다. 장이 빠질줄 몰랐지, 유럽사태가 터질줄은 몰랐지, 그 기업이 한방에 갈 줄을 알았나, 거기가 꼭진줄 알았나, 그렇게 가격이 폭락할 줄 알았나 등등. 그런데 이런 얘기를 백번 듣고 천번 들으면, 그냥 ‘이렇게 불확실할 줄 몰랐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이들에게 ‘이렇게 불확실할 줄 몰라라’가 시켰는가. 모두가 불확실하다고 반복해서 경고하는데도 불확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마음 먹어 버린 것 아닐까. 그래도 5년간 모은 돈인데 이 주식에 몰빵하면 설마 내 소중한 돈이 손실이야 나겠어? 나 자신의 감성을 토대로, 그다지 잔인하지 않았던 주변인들과의 경험을 생각해, 대단한 불행은 내 평탄한 인생에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 먹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불행이 찾아오면 미처 몰랐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을 알았다면 행동이 달랐을까?

달랐다.

이 주식에 들어가면 하락할 가능성이 40%라는 걸 인지하기만 해도, 전재산을 넣진 않을 것이다. 관리를 할 것이다. 왜냐면, 불확실하니까. 불확실한데 모든걸 쏟아부어보라는 건 젊은이를 위한 얘기다. 젊을 때는 잃는 것보다 얻는게 훨씬 많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몰랐고 공부할 생각도 없었다는 건 무책임하고 순진한 얘기다. 트레이더들은 대부분 계좌를 받자마자 뭔가 내가 하면 엄청 잘될거라는 검증되지 않은 논리로 손실한도를 생각하지 않고 숙숙 베팅을 하다가 금새 개털 돼서 짤린다. 쥬니어를 키울 때는 기법보다도, 그런 절제력이 있는지를 더 유심히 본다. 기법이야 배우면 그만이지만, 절제가 안되는 사람은 아무리 가르쳐도 절제가 안된다. 전세계 카지노업과 지하 도박세계가 살아있는 증거다. 게다가 절제력은 똑똑하고 말고와 상관 없다. 이는 합리성과도 관련이 있다. 똑똑하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불확실성만을 걱정해 하루종일 떨고 있는 트레이더나 기업가는 멀리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줄 몰랐던 사람은 최초의 불확실성에서 멍 때리고 멘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트레이더와 기업가에겐 적어도 3년 안에 그런 불확실성이 여러 가면을 쓰고 찾아온다. 그리고 그 유명한 98%는 거기에 휩쓸려 나간다. 돈이 떨어질 줄 몰랐다, 사람 뽑기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이렇게 안 팔릴 줄 몰랐다, 옆에 경쟁업체가 들어올 줄 몰랐다, 대기업이 진입할 줄 몰랐다… 어느 산악가가 아주 어린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산을 겁내지 않는 사람에겐 산을 가르치지 않는다.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겁이 없다는 것은 트레이더에겐 단점이기도 하다. 적당히 겁이 있어야만 한다. 기업가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물론 어떤 경우는 정말 예상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처제와 처남이 경리 담당이었는데 둘이 짜고 돈을 다 훔쳐 달아났다거나, 건물주가 갑자기 투자해둔 가게를 권리금도 없이 빼라고 했다는 등의 얘기를 들으면 내 가슴도 먹먹하다. 이렇게 악랄하게 기획된 사기들은 딱히 방법이 없다. 이런게 한 10% 정도 되는 것 같다. 운칠기삼이 필요한건, 이런 10%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트레이더도 마찬가지지. 잘하고 있는데 팀에서 사고가 나서 다 같이 짤리기도 하는 것이고.

 

트레이더의 또 한가지 큰 특징은 독립적 사고가 가능하느냐이다. 외부에서 보면 트레이더들이 여의도 증권시장 내부 정보를 가지고 막 서로 서로 나눠먹으며 투자하는 것 같지만, 실제 대단한 트레이더들의 대다수는 모든 판단을 독립적으로 한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뇌구조 속에서 정확한 과정을 거쳐 여과시키지 않은 베팅은 들어가지 않는다. 정확한 패턴이랄까 선후관계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트레이딩에서도 경우의 수는 무한에 가깝다. 남의 얘기로 진입한 포지션은 남의 얘기를 듣고 정확한 최적 타이밍에 청산을 해야한다. 게다가 그 매매의 구조를 이해해야 어느 정도 포지션을 잡을지에 대한 배분이 가능하다. 남이 모르는, 그렇지만 나는 매우 매우 잘 아는, 아주 확신도가 높은 특정 현상에 대한 베팅을 해야 한다. 그래서 독립적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도 가끔 부자가 되기는 하지만, 훌륭한 트레이더가 되지는 못한다. 기업가도 마찬가지다. 남 얘기를 잘 들어서 기회를 잘 잡는 것도 방법이지만, 반드시 자기의 확신에 찬 의사결정이 동반 되어야 한다. 쥬니어들을 키워보고 주변인들을 보면, 인류의 80% 이상은 독립적 사고를 잘 못한다. 남 얘기를 의심해보는데에 심리적으로 거부반응이 있는 것이다. 남들이 다 맞다고 하면 맞다고 생각한다. 겸손하고 예의를 알며, 조직생활에 맞춰져서 그렇다.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입시광풍이나 부동산 광풍이 왜 불겠으며 버블은 왜 있겠는가. 남 얘기를 함부러 믿는 사람은 트레이더가 아니다. 아마 기업가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트레이더의 아주 재미난 현상 중에 하나는, 일정 궤도에만 오르면 모든 심리와 기법이 자연스럽게 안정된다는 것이다. 궤도에 오르기 힘든게 문제다. 어쩌면 대한민국 증권사들이 트레이더들을 잘못 키우고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여하간에 일정 이상의 성취를 경험하면, 트레이더에게 필요한 대다수의 자질이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간다. 이 최초의 성취감들을 잘 체험할 수 있는지가 너무나 중요하다. 기업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자기 자신에게 성취를 느낄 수 있도록 삶을 잘 기획해주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경험과 고민을 먹고 사는 물건이다. 좋은 경험을 잘 떠먹여줘야 한다.

 

트레이더와 기업가는 솔직히 많은 점이 다르다. 기업가는 혼을 다 바쳐 사람의 마음을 울려야 한다. 하지만 트레이더는 겉도 속도 얼음처럼 냉정할 수 있다. 업무에 있어서 누구를 감동시킬 일이 없다. 기업가는 무엇보다 사람을 모아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데, 트레이더는 로직의 싸움이며 아주 깊숙한 내 직관과 감각의 싸움이다. 그러나 기업가는 결국 불확실성 속에서 자산을 성장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트레이더의 모든 것을 포괄하기도 한다. 그래서, 실패한 트레이더의 모든 점이 실패한 기업가의 모습에서 반복될 것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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