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다운형 ELS 라는 상품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칫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수 있는 설명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솔직히 이건 3년 만기의 상품이 아니라 6개월 만기 상품에 6개월씩 연장조건이 5회 달려있는 상품이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본다.
예컨대 kospi 지수와 s&p500 두가지 지수를 쓰는 95-90-85-80-75-70 짜리 표면이율 (혹은 제시수익률) 7% 짜리 노낙인 상품이 있다고 해보자.
스텝다운형이라는 이름 때문에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너무 겁먹지 마시라. 대부분의 ELS 는 이런 스텝다운형이어서, 하이파이브든 오토콜러블이든 무슨 이름으로 설명하든 결국은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익혀보는 것도 무방하다고 본다. 쫄지말고 배워보시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런 상품은 꽤 간단한 상품일 수 있다.
통상의 설명을 보면 이런 스텝다운형 상품들은 만기가 3년인데 6개월마다 조기상환의 기회가 있고 그때마다 배리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면 당최 누가 이해하겠는가.
관점을 바꿔서 ELS 가입자 입장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 상품은 6개월 짜리 단기 상품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첫만기인 6개월에 연율 7% (6개월이니까 3.5%) 를 돌려받는 일종의 조건형 고금리 예금이다. (제대로 밝히자면 예금은 손실의 가능성이 없어야만 예금이기 때문에 예금은 아니다)
그 조건은, 상품 뒤에 통상 따라붙는 “95-90-….-70”의 첫 숫자인 95를 95%라 생각하고, 해당 두 지수인 kospi 와 s&p500 두 지수가 시작시점의 95% 이상이면 (6개월째 해당일에 5%이상 하락한 상태가 아니라면) 조건이 충족되어 마치 예금처럼 만기가 된다는 것이다. 원금과 이자를 전부 돌려받고 상품은 사라진다.
이 예금은 혹시 두 지수가 95% 이하이면 (6개월째 해당일에 두 지수 중 하나라도 5% 이상 하락한 상태라면) 상환에 실패한 셈이지만, 다행히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6개월이 자동연장된다. 연장 되었을 시에 “95-90-…-70”의 두번째 숫자인 90, 즉 90% 이상 (12개월째에 해당일에 두 지수 중 하나라도 10%이상 하락한 상태가 아니라면) 다시 밀린 이자까지 다 지급하여 연율 7%로 상환되는 예금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재수가 없어서 이 조건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예금이 계속 상환이 늦어지지만 조건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 기회가 늘어났고, 조건도 폭이 더 넓어진다.
친구한테 돈을 빌려준 것과 비슷하다. 연율 7%에 빌려갔는데, 사정이 안 좋으면 6개월씩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친구의 사정은 뭐 예컨대 승진이었다고 해보자. 승진하면 돈을 이자쳐서 돌려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매 6개월에 한번씩 물어보니 계속 승진을 못했다 해서 돈을 못 돌려받고 있지만 이자는 쌓이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친구가 3년이 되도록 승진을 못하고 회사에서 짤린다면, 원금 중 일부를 안받기로 했다고 해보자. 일단 첫 6개월에 승진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친구였기 때문에 빌려준 것이고, 행여나 승진을 못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승진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고 봐야겠다. (케바케겠지만…)
그러니까 만기 3년에 어쩌고라고 생각하면 너무 복잡하다. 만기 6개월에 연장 조건이 붙어서 나한테 유리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보면 되려 단순한 상품이다. 만약 3년이 될 때까지 시장이 너무 하락해서 자금이 회수가 안되어있다면, 마지막 3년째 날에 상당히 낮은 기준, 즉 “95-90-…-70” 중 마지막이자 여섯번째 숫자인 70, 즉 두 지수 모두 70% 이상이기만 하면 3년치의 이자를 전부 쳐주고 상환해주겠다는 것이다.
3년 안에, 6개월째에 두 지수가 95%도 못넘고, 12개월째에 90%도 못넘고, 18개월째에도 85%도 못넘고, 24개월째에도 심지어 80%도 못넘고, 에라이 30개월째에는 되겠지 했는데 75%도 못넘고, 화딱지 나는데 36개월째에 70%도 못넘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얼마 안되잖은가.
하지만 얼마 안된다고 생각하고 끝낼 문제는 아니다. 가능성이 많진 않지만 아예 없지도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같은 7% 조건에 95-90-85-80-75-70 짜리와 90-90-85-85-70-70 짜리 중 어느게 더 안전하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비교를 할 것인가. 대충 둘다 상환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감만 있지 어느게 구체적으로 얼만큼 더 유리한지 당최 알 수 없는게 또한 ELS 의 애매함이다. 국내에선 ELS리서치 (elsresearch.com) 만이 계산해서 비교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미래의 시장 움직임을 정확하게 계산해주는 방법론이라는게 무척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학계의 연구도 매우 미진한 부분이긴 하다. 다만 단순한 계산으로도 첫번째 만기상환의 확률이 가장 높고 예측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감각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여지도 많고) 1차조기상환 배리어가 낮을 수록 상대적으로 매우 더 유리한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1차조기상환이 5% 낮은 것이 2차조기상환이 5% 낮은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팩터라는 것이다. (그만큼 이자가 낮아질 여지도 많다)
얼마 안되는 가능성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이자율이 천차만별로 바뀌는 것이 ELS 의 특징이다. 내가 중시 여기는 조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추천으로는 역시, 6개월짜리 상품이라 생각하고 6개월만에 조기상환될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나머지는 다 차선책에 대한 대비이자 덤이라고 생각하는게 맞다고 본다. 6개월에 한번씩 차곡차곡 안전하게 조기상환 받아서 3.5% 씩 계속 쌓아나간다면 연기준으로 오히려 7% 이상의 복리효과도 있을 뿐 아니라 유동성의 위기에서도 조금은 자유롭다. 그럼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상환이 연기된다면, 오히려 그런 사건에서도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
이런 설명을 과도하게 해석해 6개월 후에 꼭 필요한 돈을 ELS 에 넣는 우를 범하진 마시길 바란다. 예금 같긴 하지만 여러가지 복잡한 조건이 달려 있는 예금이다. 또한 위의 예에선 마지막 모든 조건까지 실패한다면, 더 많이 하락한 주가지수를 기준으로 손실이 결정된다. kospi 가 3년째날에 -40%로 끝난다면 전체 원금에서 이자도 못받고 -40%의 손실이 확정되는 것이다. 가능성이 많진 않지만 꽤 큰 손실이다. 대신에 분석이 복잡한 만큼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기도 한 것이고, 그만큼 큰 손들이 활발하게 대중들의 수익률을 약탈해가기도 어려운 시장이다.
다른 곳에서도 여러번 반복한 이야기지만, 자산시장의 가장 큰 원리는 소수가 최대다수를 약탈하는 구조다. 다수가 소수를 약탈하면 시장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시장은 최대다수를 잡아먹는 쪽으로 움직인다. 대중은 대중이기 때문에 반드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구조화증권에 거는 개인적인 기대는, 이러한 약탈적 행위를 매우 어렵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물론 터무니 없는 수수료가 붙어 있는 상품들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고객에게 이상한 상품을 권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하지만 그건 불완전판매의 문제이지, 구조적 약탈과는 조금 다르다. 그만큼만이라도 내 보기엔 꽤 좋은 현상이다.
다시는 내 글을 읽지 않을 사람을 위해 한가지 팁을 더 붙이자면, 시장이 폭등하고 있을 땐 ELS 가입을 조심하시라. 시장이 하락해서 ELS 로 손실을 보는 것보다, 폭등장에 너무 높은 지수에 엮여 들어가 단순한 조정에 말려 들어가는게 훨씬 위험하다. 특히 초보자라면, 시장이 근래에 많이 빠졌다 싶을 때 ELS 를 한번씩 진입해보는걸 권한다. 펀드보다 원금 손실의 가능성도 적을 뿐 아니라 경우의 수가 적어서 초보자가 습관을 기르기엔 나쁘지 않다. (물론 진짜 완전 초짜라면 예적금을 권한다. 투자는 습관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