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직무란 무엇이며, 일반 직무와는 언제 어떻게 다른가

취업을 하려 할 때 직무를 막연하게 걱정하게 된다. 무슨 일을 어떤 호흡으로 맡게 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직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어쩌다 보니 많은 취업 준비생과 또 이직 준비생들에게 상담을 하며 그들의 구체적인 걱정들을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스타트업의 mission – oriented 방식이나 가치제안이라는 틀 등을 통해 고부가가치 직무에 대한 접근 자세 등을 중심으로 얘기했는데 조금 더 체계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모든 대형 조직은 임무(mission)중심의 조직과 기능중심의 조직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군대로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분대 중대 대대 단위의 전투조직이 있는가 하면 보급과 정보 등을 전문으로 하는 지원부대도 있다. 보급과 정보를 담당하는 조직들은 많은 전투조직에게 체계적이고 유연한 지원을 해주기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고 쉼없이 그 일을 해나가는 반면, 전투조직은 환경의 변화에 맞춰 독립적이고 구체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가전제품 회사에서는 냉장고를 만드는 본부와 에어컨을 만드는 본부가 각자의 전략팀과 세일즈팀이 존재하지만, 전체 회사를 아우르는 인사나 총무팀이 모든 본부를 전부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업은 환경에 맞춰서 또 인재에 맞춰서 책임과 권한의 구조를 바꿔가며 이런 조직구조를 최적화 해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텔의 앤디 그로브 전 회장은 같은 목적을 공유한 모든 대형 조직은 임무와 기능의 하이브리드 조직형태로 가게 되어 있다고 단언했다.

임원이라면, 혹은 창업자라면 이런 구조를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직 고민자의 대다수는 조직의 중심에서 조직의 형성 목적과 과정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 자신의 직무의 가치와 향후 커리어 개발계획이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어쩌면 고민해야 할 문제 자체가 단순히 임무 중심의 제너럴리스트가 되느냐 기능 중심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느냐일 수도 있다. 직무 단위에서 회사의 미션을 함께 하고 싶은지, 기능만을 함께 하고 싶은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실 자신이 스페셜리스트라는 느낌이 안들면 무조건 제너럴리스트이다. 국내에서 스페셜리스트는 임무중심의 조직문화에 포함되기 다소 힘들어 때론 외로움과 공허함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스페셜리스트팀들에게 임무중심의 일을 많이 만들어 준다. 반면 제너럴리스트들은 임무중심의 조직에 많이 속해있다 보니 오히려 기능적으로 차분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많이 배려 받는다. 원래는 회계사가 심심하고, 상사맨은 정신이 없어야 정상인데, 우리나라에선 그 가운데쯤의 조직이 대다수인 것 같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스페셜리스트의 가치가 높지 않은 역동적인 사회에서는 한명 한명 인재의 경험과 직관이 관리자의 역량으로 승화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외국은행에 다니는 딸은 전문가로 성장하는데 국내은행에 다니는 아들은 이 부서 저 부서 돌아다니며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다는 글을 읽었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나도 꽤나 공감이 갔다. 하지만 국내에는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고 이해해볼 수도 있다. 조직의 핵심을 찌르는 임무를 파악하고 다양한 업무를 이해함으로서 향후 조직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거나 개혁시킬 수 있는 직관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뭐든 과하면 병이 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의미에서 임무와 기능적 사고가 해외보다 몹시도 버무려져 있다. 재무팀이라고 하지만 평생 재무를 맡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개발자라고 하지만 언젠가는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한가지 일만 하지만 회식에는 늘 참석해야 하고, 윗분들의 눈치를 잘 읽어야 한다. 정치를 위함이 아니다. 문서에 나타나지 않는 행간의 맥락을 이해하고 회사 전체의 mission 에 문화적 주파수를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원래 정치의 의미겠지만)

본인의 커리어에 대해서도 임무와 기능을 잘 생각해야 한다. 자금부에서 4년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타사에도 자금부 이직만을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기능적인 부분인데, 모든 조직의 기능은 끊임없이 바뀌어가기 때문이다. 진정한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면 미션을, 즉 그 프로젝트의 성격을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상사를 다니다가 한국 배터리 사업의 위력을 느끼고 LG 화학 배터리 사업부로 이직을 한다면 전형적인 미션 중심의 사고다. 미션에다가 나의 기능을 버무려서 내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기능은 미션을 뒷받침할 때 최고의 가치를 발휘한다. 미션이 없는 기능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기능이다. 기능만 있는 결혼이 오래가지 못하듯이 뜻이 맞지 않는 커리어는 쉽사리 유지되지 않는다.

스타트업은 그저 기업의 초기 단계, 축소판일 뿐이다. 한가지가 다르다면, 광적인 속도와 재능을 탑재하려는 시도와 흐름들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론 그저 하나의 작고 배고픈 기업일 뿐이라, 다를 것이 없다. 헌데 작다는 그 이유, 빨라야 한다는 그 이유로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임무중심의 조직이다. 작든 크든 뭔가 구체적인 하나를 해보자, 하는 프로젝트성 조직이다. 스타트업 같은 조직에서는 기능적 부서를 설치하고 프로세스를 정립시킬 현실적인 여유가 없다. 모든 이가 기능을 잘 다루는 대단히 빠른 제너럴리스트여야만 한다. 그래서 스타트업 이직에 기능을 내세우고 기능을 요구하는 것은 조직을 경직화시킬 우려가 있다. 기능만을 사겠다고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또한 경계하고 봐야한다.

뭔고 하니 스타트업에 들어간 순간 평소에 겪어본 적 없는 강렬한 미션 중심의 사고와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밌게도 우리는 기능주의에 젖어 있다. 장점은 뭐든 일을 잘 처리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일의 ‘처리’에 너무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미션에 대한 고민은 없고 감성은 많은게 한국 사람이다. 조직 걱정은 많이 하지만 내가 주인처럼 생각해보지는 않는다. 우리식의 집단주의다. 이런 감성이 스타트업에서는 ‘열심히 일만 하는’ 우리의 습관으로 나타나기 쉽다. 일을 만들고 일을 착착 진행하며 모종의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이런 기능주의다. 일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이기적이고 집요한 번뇌가 부족하기 쉽다.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게 된다면 이런 생각구조의 변화를 가장 크게 각오해야 한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효율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맞는 방향을 끊임 없이 고민하고, 내가 하던 일을 수십번 수백번 뒤집을 수 있는 주체성과 유연함이 있어야 한다. 콜럼버스의 배가 출항을 시작한 이후에는, 어떤 선원의 노력보다 항해 방향이 훨씬 중요해진다. 망망대해에서 옳은 각도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판단하지 않는다면, 백날 노를 열심히 저어봐야 큰 공이 아니니까.

이것은 아쉽게도 비단 스타트업만의 운명이 아니다. 대기업도 임원 레벨이 되면 이러한 기대가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기능의 두터운 역사와 신뢰가 쌓인다면 조금의 안전망이 느껴질 수 있을 뿐이다. 스타트업은 그것 없이 발가벗겨 지는 것이고.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한테는 기능을 먼저 쌓으라고 얘기한다. 기능을 못하는 인력은 어떤 얘기도 말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이직을 준비하시는 분들한텐 이제 기능을 내려놓고 관리자의 삶을 상상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권해본다. 자신이 있다면 스타트업이야 말로 백번의 MBA 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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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직무란 무엇이며, 일반 직무와는 언제 어떻게 다른가”의 1개의 생각

  1. 잘봤습니다. . IT전공.. 대학원 나온 후 스타트업 시작한지1년이 조금 넘었으나.. 아직 저는 제대로 아는게 없네요. 학교 외 조직경험도 없어서인지 운영 방식이 아는것 자체가 없고 검색해서 알아봐도 스타트업 보다는 좀 더 큰 기업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정부 지원금으로 사람들을 고용해도 금방 나가고..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거나 아는것 자체가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게되어.. 스타트업에 대해 이제야 공부하는 중입니다..너무 좋은 글입니다. 느낀게 많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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