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이 세상에 단순화

세상에 변하지 않는 사실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밖에 없다.

라고 헤라클레이토스도, 주역도 얘기하고 있죠.

옵션 트레이더의 하루만큼 이 구절을 느끼는 일도 없을 겁니다.

아침 9시10분, 원했던 타이밍에 원하던 포지션을 25% 정도 잡았습니다. 10분이 흐르고 보니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 됩니다. 첫째 포지션 속에 매수 헷지 포지션은 많이 올랐고 매도 헷지 포지션은 많이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둘을 합치니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러나 10분이 흘렀기에 그간의 시간 가치는 사라졌고, 기회도 사라졌고, 이제 장이 거꾸러 움직이면 매수 헷지 포지션이 손실을 뱉어내는 속도가 매도 헷지 포지션이 회복하는 속도보다 빠를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 베팅은 시장이 20분에 걸쳐 천천히 오를 징후들이 보여서 들어간 것인데, 10분만에 원하던 위치까지 급격히 움직였죠. 10분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점은, 시장이 더 오르면 큰 손실이 날 수도 있고, 시장이 빠져도 이익을 뱉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포지션이 부풀어 오르면서 애초에 의도했던 바의 45% 수준이 되었습니다. 값이 어디로 가든 내 포지션 손익이 어떻게 변할지 정확한 계산이 어려워졌습니다. 델타도 감마도 베가도 세타도 전부 처음에 포지션을 잡을 때와는 다릅니다. 10분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수천가지 경우의 수 중에 한가지가 발생하면서, 앞으로 또 수천가지 경우의 수를 분류해서 정리해야 합니다.

10분 전과는,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된 것입니다. 모든 걸 끊고 퇴근할 수도 있고, 이 손익을 토대로 다시 처음부터 두배로 베팅할 수도 있고, 이 손익을 두고 더 적게 베팅해볼 수도 있습니다. 머리속에 온갖 생각이 오고 갑니다.

수천가지의 경우의 수와 수십가지 변수들이 패턴으로 춤을 춰댑니다.

보통 주식 투자를 할 때라면 6개월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 옵션 포지션에서는 반나절 만에 일어납니다. 전재산이 하루만에 날라가는 사람들도 수두룩할테고, 평생 벌어본 돈보다 많은 돈을 하루만에 버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우리는 프로니까, 매우 보수적으로 이런 변동성을 관리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틀어지고 비틀어지고 뒤틀어지는 와중에 ‘변화’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툴을 이용해 어려운 현실에 적용하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변화를 쫓아다니는 것을 ‘다이내믹 헷징’ 혹은 ‘델타 헷징’ 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봤자 뭔가를 완전히 체계 있게 하기는 극한에 가깝게 어렵습니다. 동시 다발적으로 너무 많은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죠.

2년전까지 저는 트레이더였습니다. 트레이더는 세상 물정을 배우기 어렵지만, 세상 물정의 근간의 원리를 배우기는 좋은 자리입니다. 철이 없지만 장인이 되는 이상한 커리어죠.

모든 것이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뇌가 그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 뇌의 용량은 작동 원리와 한계가 대개 비슷하죠. 개념과 개념을 연결시키는 것이 우리 정신세계의 가장 큰 힘이라면, 여러 개념들이 동시에 흔들릴 때는 상황파악이 기하급수적으로 느려지거든요. 그것을 직관으로 풀어가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직관은 본디 경험을 토대로 스냅샷 같은 패턴을 파악해내는데 능합니다. 연속적으로 모든게 변하고 있으면 매순간을 재계산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단순화에 있습니다. 변수를 줄이고 의사결정의 폭을 줄이는 것이죠. 현상파악을 간단한 룰로 파악하려 할 수록, 복잡도를 줄일수록 우리는 더 섬세한 패턴을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계산하는데에 30초가 걸리는 정말 아름다운 로직보다, 보는 순간 0.5초안에 호불호를 판단할 수 있을만큼 단순한 잣대를 갖는게 더 빠르고 일관적인 판단이 가능합니다. 다른 변수를 날리기 위해선 무엇인가를 고정시켜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고정시킨다면 어떤 변수에 대한 대응효과를 포기해야겠죠. 즉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변화에 다 적응할 수 없으니, 포기할 변화들은 신경을 쓰지 말고 내가 잘 아는 몇몇 변수만으로도 충분한 효용이 나올 수 있게 해야지요.

전술적 자산배분은 아주 많은 것을 고정시킵니다. 한달에 한번 매매를 한다라고 주기를 고정시켜버리면, 실제 매순간 매매를 하는 것보다 단점이 아주 많습니다. 대신에 백테스트나 여러 원칙이 한결 간단해지고, 그 효과는 훨씬 탐색하기가 쉽죠. 작은 종목들을 포기해버리면, 실제 가끔씩 상한가를 경험하는 즐거움은 없어질테지만, 여타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들을 고정시켜버릴 수가 있습니다. 고정시키면 간단해지고, 적당히 간단해지면 그 본질의 강인함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고수들이 항상 원칙을 얘기하는 것은, 원칙이 없는 사람들이 때에 따라 직관의 힘으로 더 잘할 수도 있지만, 너무나 많은 착각과 오판의 영역에서 헤매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 얘기를 끊어먹고 무례한 사람들은 상종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무례한 듯 보여도 마음은 착했던 사람들을 부득이하게 멀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회들을 전부 포기해버리는데에 간단함의 미학이 있는 것입니다. 무례하지 않은 사람들만 만나고 살아도 인생이 충분히 윤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투자를 함에 있어 그 원리가 잘 생각이 안나고, 계산을 여러번 곱씹어야 한다면, 그다지 좋은 투자원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온갖 실질 변수들 속에서도 버티려면 아이러닉하게도 통제 가능한 불필요한 변수들을 다 시스템에서 날려버려야 합니다. 버리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은, 이러한 변수들이 내 머릿속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좀 더 간단명료한 투자를 전술적 자산배분을 통해 경험하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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