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전에 Scope의 명료화를…

MBA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일지도 모르겠지만, 나같이 제대로 못배운 사람은 체계적인 경영이 때론 막막하다. 여러 종류의 조직에 있어 보고 또 만들어보니 소위들 얘기하는 ‘조직관리’에 대해 괜히 더 고생하며 배우는 점들이 있었다. 오늘 할 얘기는 인력들의 커뮤니케이션의 바탕에 깔린 ‘조직의 구성’에 관한 내용이다. 물론 내 내공수준이 낮으니만큼 대단치 않은 내용일 수도 있다.

나는 앤디 그로브의 책에서 경영의 대다수를 배웠는데, 경영에 대한 대다수의 내용이 나와 있고, 내가 앤디 그로브나 그의 책을 찬양하는 고수들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만큼 그냥 믿고 철저히 곱씹었다. 그 중 한가지 내용이 (경영에 관한 책이니 만큼 모든 내용이 놀랄만큼 당연한 내용들이다만) 계층적 조직 구조에 관한 것이다.

한 집단에서 목표를 정하면 그 목표를 이룰 가장 큰 단위의 방침이 그 조직의 ‘전략’이다. 그 전략을 달성하는 구체적 방법이 ‘전술’이다. A 전략을 달성시키는 전술이 A1, A2, A3… 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전술은 실제로 실현을 하는 단위이다. 아이스크림 집을 차렸다 치면, ‘아이스크림을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이 전략이 되고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만들 것’, ‘주위에 소문을 많이 낼 것’, ‘효율적으로 서빙할 것’ 등 여러 전술이 나오게 된다. 이 전술들이 제대로 실행되어야 그 전략도 성공할 수 있고, 그 전략을 성공시킬 수 있는 모든 필요조건들이 전술인 셈이다. 조직이 크다면, 전략을 만드는 계층과 전술을 실행하는 계층이 다를 수 있다. 이 하위 조직은 위에서 결정한 전술 A1 을 임명받아 그것을 그 조직의 ‘전략’으로 삼는다. A1 을 이룩할 전술 A1-1, A1-2, A1-3 … 을 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위에 소문을 많이 낼 것’을 담당하는 조직에서는 그것이 조직의 주목적이며 전략이니,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전단지를 뿌릴 것’, ‘인터넷에 광고할 것’, ‘선물을 줄 것’ 등 여러 전술을 검토해본다. 그 밑에 하위 조직이 또 존재한다면 이런 전술을 다시 그 조직의 전략으로 받아들여 그 전술의 실현을 위임 받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조직 구조의 이유이다. 하위 조직이 상위 조직에서 의사결정된 전술을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그것을 실현시킬 전술들을 마련할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이다.

군대로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연대장이 윗선에서 받은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대대장들을 모아서 전술을 정하면, 대대장들은 자신들의 중대장들을 모아 상위의 전술을 실현시킬 구체적 전술을 정하고, 다시 소대장들이 그것을 실현시킬 구체적 전술을 정하고, 다시 분대장, 상병, 뭐 이런 식으로 내려오게 되고, 각 개인들의 영역에서도 정해야 할 것들의 계층이 여러번 나뉜다.

기업이 커지면 이러한 계층이 많아진다. 계층이 많아지면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내용도 정확히 전달이 안되기 마련이지만, 중간계층에서 위로 의견을 올려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어려워지기도 한다. 때론 각 계층에서 흡수할 수 있는 정보가 다른데, 하위 조직의 정보가 더 중요한 경우도 상당수다. 좋은 조직은 항상 위아래의 의견 교환과 정보 교환이 자유롭다고 하는데,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아주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대개는 아래 계층의 이슈들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들을 위로 올려보내면 되긴 하지만, 리더라고 해서 모든 하위 계층의 경험을 다 해보는 것은 아니기에 어쨌든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해진다.

조직 생활을 오래한 사람은 고생을 통해 이런 선명한 계층구조를 이해하게 된다. 권한과 책임의 선이 명료하면, 정해진 전술이 완벽히 시행되는지에 대한 확실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좋은 전술인지에 대한 판단력은 악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대개 중간관리자 개개인의 능력으로 떼운다 – 어디든 인재가 중요하긴 하다).

흔히들 대기업 생활을 해봐야 조직을 안다고 하는데, 내 경험에는 가장 중요하게 배우게 되는 부분은 이런 점들이고, 이 외에는 특별한 실무가 아니라면 개인사업에서 배우지 못할 부분이 거의 없다. 그러니 학생인 후배들에겐 이 부분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대기업을 경험 해보라고 권하긴 하는데, 딱히 대충이라도 경험해봤으면 굳이 더 있을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정리하자면 조직 생활의 가장 중요한 점은, 계층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그것의 실행이 이뤄지는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히 인지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이든 해당 전략을 철저히 이행시킬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deliver 하는 능력, 혹은 execution 능력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조직의 구조와 자신의 ego 사이의 갭을 줄이지 못해 deliver 하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대개 기업에서 일어나는 인적 스트레스다. (나는 개인적으로 ‘제갈공명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자기가 개입하면 기존 세력들이 경악하며 숭배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재밌는 것은 제갈공명이야 말로 본인의 분수파악으로 위대해진 인물이다)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뭔가를 제때 deliver 해내는 능력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

조직 생활을 오래하게 되면 가장 큰 문제는, 상위 계층에서 하는 의사결정에 점점 관심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관심을 유지하거나 기민하게 이해하고 고민하려는 사람이 희소한 만큼 빠른 승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전술을 deliver 해내는 능력 외에 상위 계층에 인사이트를 보탤 여지가 별로 없어, 조직의 경직성을 느끼며 염증이 나게 마련이고, 정작 그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직급에서는 이미 감이 너무 떨어지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좋은 조직들이 일찌감치 리더쉽 프로그램을 마련해 일부에게 상위 계층의 고민들을 키워나가도록 장려하는 이유도 이런데에 있다. 오래 앉아 있으면 실무는 능한데 그 다음 고민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윗사람의 심중’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 ‘똥꼬를 잘 빠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술의 이행이 훨씬 의도에 맞게 정교하고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에 당연히 중임을 맡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해본다.

반면 동아리 등 아마추어 집단에서는 이러한 계층 구조에 대한 이해가 너무 적다. 아무나 다 평등하게 최고 의사결정을 같이 하고 싶고, 차등 의사결정에도 다 끼고 싶고, 차차등 의사결정에도 다 끼고 싶고, 누가 deliver 하는지 누가 책임자인지 아무것도 결정이 되지 않는다. 대개는 실무자가 별로 없어서 문제고, 보고가 잘 되지 않아서 전술이 이행이 되는지 어떤지 파악이 되질 않는다. 어쩌면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지향하는 조직들은 다 이런 아마추어리즘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효율보다 개개인의 생각의 집합이 중요하다면 이런 민주적 절차가 좋지만, 무엇인가 deliver 되어야 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민주적 절차에는 책임과 권한이 애매모호해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그 결과가 취향이나 입장 차이로 마무리 될 수 없는 건들이라면, 아무도 책임을 안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결핍은, 전략을 결정하는 주체들에 대한 명료한 선이다.

스타트업은 완전한 아마추어와 완전한 대기업식 조직 생활의 가운데 어딘가에서 좋은 것만 취해야 하는 집단이다.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적은 인원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deliver 하는 것이 스타트업 조직의 특성이고 존재이유이다. 실제 젊은 스타트업들은 자연히 아마추어리즘이 난무할 개연성도 높다. 나도 아마추어 때의 순진한 발상으로 동아리를 운영하기도 했었고, 그 동아리의 연장선으로 운영되는 회사도 많이 봤다. 그러나 조직구조가 정확하지 않다면 구성원들의 뛰어난 인품이나 목적의식의 규합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야만 조직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상적이지만 확대가 어려운 방식이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의리이다.

스타트업에게 권하는 방식은, 의사결정의 폭 등 scope 를 정확히 규정해놓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라는 것이다. 스타트업들은 대개 전 계층의 의사결정을 비슷한 인원구조에서 해결해야 한다. 계층이 10개가 있는데 참여하는 미팅 인원이 전부 같을 수도 있다 (심지어 모두 한명일 수도 있다). 한번에 모든 계층의 전략과 전술을 다 다루는 것은 브레인스토밍이다. 반면 촘촘한 execution 을 해야할 때는 집중력을 높이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원이 많아질수록 체계가 없는 미팅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이스크림 전단지를 돌리는 회의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아이스크림 팔기로 한 건 맞아?’ 라는 식의 한참 윗선의 전략 회의로 넘어가면 scope 가 널을 뛴다. 누군가는 무엇이 정해졌고 무엇이 정해지지 않았는지를 명료히 해야되고, 그 최종 의사결정을 한 사람이 향후 책임을 져야하며 참여자들은 그것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 책임과 권한이 분산되어 있어도 무방하다. 유연해도 좋다.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명료해야 한다. 책임과 권한을 가진 사람이 회의 참여자들의 의견이나 정보를 최대한 듣고 규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반대입장이 있던 어떻던 누군가는 결정을 내리고 execution 에 집중할 수 있는 scope 를 명료히 해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뜻이 아무리 좋아도 아마추어가 된다. 이런 부분에서 민주성과 아마추어리즘을 구분 못한다면 큰일난다.

스타트업의 강점은 빠른 결정을 통해, 단위별로 빠른 execution 이 이뤄지는데에 있을 뿐 다른 건 별로 없다. scope 가 그래서 더욱 간명해야 하고,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해당하는 scope 인지가 명확해야 한다. 대기업이나 소기업이나 미팅이 많아지면 진이 빠지고 느려지는데, 대부분의 경우를 보면 필참 인원에 대한 명료한 기준이 없어서다. 의사결정자도 아니고 정보 공유상 참관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 많은 회의가 늘어날 수록 일할 시간이 없다. 앤디 그로브는 매니저의 미팅 이유를 1. 내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2. 하위 계층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3.의사결정을 위해, 이렇게 세가지로 압축한다. 대기업 회의에는 ‘얼굴 보기 위해’, ‘교감하기 위해’, ‘문맥을 알아두라고’, ‘본부장님에 대한 예의상’, ‘군기 잡기 위해’ 등 쓸데 없는 이유가 많다. 분위기가 아무리 좋아도 미팅의 목적을 명료히 하고 한가지를 확실히 해결하는게 좋다. 두세 계층 아래에 있는 실무진들은 그 계층이 모이는 미팅에 참석해서 해당 전술을 논하면 그만이다. 반대로 높은 계층에 있는 사람이 지나치게 낮은 계층의 전술 (혹은 실무) 회의에 참여해서 감놔라 배놔라 의사결정에 참여해서도 안된다. 스타트업에서 매우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관리자들이 최하단의 실무까지 겸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내려놓고 위임하는 선을 언젠가 반드시 결정해야 한다.

자신이 원한다면 자신의 능력에 맞는 scope 에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은 소형사들의 전반적인 장점이다. 반대로 어딜가나 마찬가지인 것은, 자신이 준비가 안된 계층의 회의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이해못한다면 개인적인 스트레스가 쌓이기는 대기업이나 똑같다. 그것은 상위의 계층이나 하위의 계층이나 마찬가지다.

역으로 때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대한 scope 를 모두 관장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기도 하는게 스타트업이다. 내가 들어본 스타트업 이직 후 고통 받는 사람들의 고민의 대다수는, 생각보다 상위 scope 에 개입할 수가 없다는 점과, 생각보다 다뤄야 하는 scope 가 너무 넓어 토나온다는 것 두가지다. 상위 scope 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고 대안 전술들에 해박해야 진급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조직이나 같다. 다만 스타트업은 ‘진급’ 개념이 없을 뿐이지만, 결국 책임과 권한의 이양은 실력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반면 스타트업 생활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넓든 작든 자신의 성향에 딱 맞는 scope 만 정해서 열심히 해도, 그것이 명료하고 효율적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 아닐까. 대기업에서 요구하는 scope 는 얼마나 형식적이고 비효율적인가.

중간관리자 이상으로 성장하길 원한다면 자신의 위치와 회사에서 제공하는 권한과 책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scope 안에서 최선을 다하되 그 다음 scope를 항시 상상하고 고민해야만 기여를 할 수 있다. 밑으로 작은 scope 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위로는 넓은 scope 들을 이해할 수록 가치 있는 인력이 될 것이다. 조직이란 결국 여러 scope 에서 최상의 execution 을 이루기 위해 서로 촘촘히 의존하는 집단에 다름 아니다. 여러 scope 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이 배당된 인력들의 재능, 권한, 책임의 총합이 촘촘하고 골고루 전략적으로 배분되었는지를 보는 것이 조직관리의 전부가 아닐까 하며, 개인으로서는 그 안에서 자신의 책임을 정확히 소통하고 이행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런 얘기는 그 누구보다 스타트업 창업을 생각하는 founder 본인에게 해당한다. 나는 은근슬쩍 scope 를 정확히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전팀원들이 모든 scope 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scope 가 없어야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scope 가 정밀해야 그 안에 마음껏 깊이 뛰어들어갈 수 있는 자유가 더 커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또한 대표에게 윗사람이 없다는 것은 가르쳐줄 사람도 없다는 것인데, 상위 scope 의 의사결정은 커녕 정보나 지혜조차 없다라면 상위 의사결정자가 공석인 것이나 다름 없다. 본인이 대표라고 하지만 본인이 과장 역할을 할 뿐, 팀장 본부장 대표 한명도 없는 경우라는 것이다. VC 들은 아마도 대표를 보며 대표가 대표 노릇을 하고 있는지 과장 노릇을 하고 있는지를 볼 것 같다. 과장이 뭐하는 자린지도 모른다면 대표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Scope 의 명료화와 그 이유에 대해 써봤다. Execution 이란 말이 난무하지만 그 의미는 작은 전술이라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력이란 scope 가 어디에 있든 정확한 execution 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관리자나 중간관리자의 최종 책임이고 덕목이다. 아무리 작은 task에 있어서도 scope 를 정확히 규정해두면 손이 빨라질 수 있다.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현실은 수직적인 계층 구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병렬적인 이웃 부서도 많다는 것인데, 앤디 그로브는 매니저의 역량을 이렇게 정의한다. “자신이 영향을 끼치는 자신의 부서와 관계부서들의 총 생산성을 증진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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