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페친이시며 아마추어 퀀트이신 (다른 직업이 있으신) 강환국님의 ‘일반인들 돈 버는데 기여한 영웅들’ 시리즈를 보며 퀀트의 역사를 대충 살펴봤다. 다독과 정리벽이 합쳐진 글에서 큐레이션의 힘을 느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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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내가 퀀트들을 조금은 낮춰보던 이유 중에 하나는 어쩌면 퀀트의 왕 중 왕이었던 Edward O. Thorp 의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겠다. 블랙숄즈 공식을 몇년 더 빨리 비공개적으로 정리한 그는, ‘(블랙과 숄즈)는 학자니까 뭐 논문을 쓰는 거고 저는 당시에 자산운용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비공개로 돈을 버는 거고 뭐 그런거죠 아쉬움은 없습니다’ 라는 식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블랙 + 숄즈는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돈을 버는데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논리를 정리하고 데이터를 정리해 세상에 발표할 여유가 없는 법이고, 나 역시 트레이더다 보니 그런 문화에 젖어 있었다. 지적인 유희를 즐길 시간에 니 로직을 최대한 execute 할 고민을 해라, 가 트레이더들의 불문율이었다. 마켓 위자드 시리즈에서 Larry Hite 라는 시스템 트레이더는 “완벽하지 않음으로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라고 했다. 완벽할 시간에 결과에 더 집중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요새는 돈을 잘 버는 뛰어난 퀀트들이 자신들의 지혜를 세상에 나눠주기도 한다. 학계에서의 명예는 돈과는 또 다른 문제니까. 그렇지만 전반적인 퀀트들의 분위기가 트레이더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기에 나는 차라리 트레이더의 세계에 더 집중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왜 돈 버는 방법이 명명백백히 공개되는데도 많은 이들이 따라하지 못할까 하는 점을 좀 곱씹어 보기 위해서다. 전설적인 시스템 트레이더 한명은 ‘내가 내 로직을 월스트릿저널에 전면 광고로 공개해도 어차피 따라할 사람은 없다’ 고 얘기 하기도 했다. 경험의 차이, 궁합의 차이에서 오는 ‘신념’이 있지 않으면 어차피 그 방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Alpha Architect 는 ‘교육으로 투자자들을 돕겠다’고 공표한다. 정말 좋은 방법 중에 하나다. 스스로 체화하지 않은 규칙은 남의 것일 뿐이고, 눈 앞에서 끝없이 돈을 벌고 있는 워런버핏을 보고 있어도 사람들은 워런버핏에게 돈을 맡기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추세투자’에 대한 확신을 일찌감치 얻었다. 될 것이다, 그것을 증명한 사람이 충분히 많고, 난들 못할 리가 없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에 그 매매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도 없었고, 주위에서는 모두 회의적이었던 지라 도전해보기 무척 힘들었다. 트레이더라는게 도전이랍시고 돈을 잃으면 대개는 그대로 짤리는 직업이다. 혼자 연구하기엔 여러 미세한 규칙들을 충분히 경험하거나 연구해보지 못했다. 장중 매매인지라 데이터를 분석하기도 거의 불가능했다. 한참을 기다리며 ‘진짜 확신’을 얻기 까지 몇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한번 경험해보고 나니 그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고, 이후엔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자기 것’이 되기 전까지의 지적인 검증만으로는 실천할 수 없다.
아마 트레이더들이 추세매매를 싫어한 이유 중에는, 추세매매의 이론적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초짜들이 이론을 외치며 돈만 주구장창 깨먹는 걸 너무 많이 봐서 그럴 것이다. 해봤자 난 놈 아니면 다 깨먹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수없이 많이 본 케이스다.
일반인들이 투자를 함에 있어서도, 사실 충분히 훌륭한 이론들이 많이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린블라트의 방법만 충실히 이행해도, 혹은 전술적 자산배분만 잘 활용해도, 충분히 간단하게 오래동안 자산증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믿게 되기 까지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데이터가 검증하고 있어도, 뭔가 미심쩍어 머뭇거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나 너무 쉬우면 쉬워서 걱정이고, 어려우면 어려워서 걱정인 것이 투자다.
그래서 투자에선 경험이 중요하다. 적금이라도, 예금이라도 좋은 투자의 시작인 이유는, 그 과정의 경험을 몸에 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차곡차곡 모으며 돈의 중함과 세월의 힘을 느끼고 나면, 그것이 점점 원칙으로 쌓이게 된다. 적은 금액으로 주식 투자를 하는 것도, 금액을 늘리지 않고 리스크 관리를 하면 어떻게든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체화하는 과정이다. 돈을 벌어보는 경험도 쌓일 것이고, 잃어보는 경험도 쌓일 것이다. 경험이 쌓이면 현상이 보이고, 현상의 검증을 다시 경험하면 신념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Larry Hite 는 이런 얘기도 한다 “세상엔 좋은 베팅, 나쁜 베팅, 돈 번 베팅, 돈 잃은 베팅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잃은 베팅이 나쁜 베팅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중략) 돈을 잃어도 좋은 베팅일 수 있다”. 좋은 베팅을 꾸준히 이어가면 돈 번 베팅의 수가 점차 누적될 것이다. 누적되는 것을 경험하고 보는 것만큼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더 찾기 전에 조금씩 경험하자. 요는 ‘조금씩’이다.
세상엔 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춰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일들이 있는 법이다.
어떻게 글에 생각을 잘녹여내시는지..정말 이 밤에 하나 배워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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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다소 막연한 얘기이긴 합니다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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