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불안감

후배님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다 보면 20대의 원초적인 공포 하나가 자주 언급된다. 친구들은 다 잘나가는 것 같은데 자신만 제자리인 것 같아 두렵다는 것이다. 물론이다. 20대에는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은 때로는 질투심, 투쟁심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런 점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 같다. 30대가 넘어 40대 쯤 되면, 주위 사람들의 치열함에 눈을 감아버리기 일쑤다. 자극조차 되지 않는다. 자극이 없는 삶이라니, 좋은 점도 있지만 분명히 심심한 면도 있다. 젊음은 뜨거운 용광로 같은 자극을 토대로 먹고 산다.
예컨대 유명한 스포츠 만화들을 살펴보자. 세상의 공리를 위해 운동을 시작하고 성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강백호는 고작 좋아하는 여자한테 멋있어 보이려고 농구를 시작하고, 서태웅을 극혐하고 질투한다. 그저 더 멋져보이고 싶어서, 라는 동기는 20대만 되어도 상당히 감소하는 치기 어린 동기다. 하지만 많은 위대한 예술가가, 많은 위대한 운동가가, 고작 그 정도의 자극을 토대로 자신의 일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를 태울 뗄감이니까.
20대 후반의 문제는, 고민의 전선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농구장에서 농구만 하는 것이라면 새벽에 일어나 연습을 해서 나의 치열함을 표현하면 그만일텐데, 이젠 무엇에 치열해야 할지조차 감을 잡기 어렵다. 고시촌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사이, 멋지게 성공한 듯한 옛친구들의 여유 넘치는 모습을 접할 때마다 견디기 어려운 감정이 몰아닥칠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왜 그렇게 잘 되었는가.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인가.
10대에는 반항심이 있어야만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듯이, 20대에는 호승심이나 투쟁심이 있어야만 성장할 수 있으니, 그런 감정에 너무 괴로워만 할 필요 없다.
하지만, 30대 후반에 들어서는 형아의 생각을 얘기하자면 인생은 진짜 기나긴 철인3종 경기라는 것이다. 오늘 진도를 더 뺀 친구가 시험 당일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인생엔 적게 잡아도 수십번의 인생급 위기가 온다. 일찍 결혼 잘한 엄친아도 몇년 지나 보면 이혼하고 헤어져서 더이상 어머니의 질투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누구는 잘나가는 직장이 통째로 날라가기도 하고, 투자를 잘못해 전재산을 날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기도 한다. 아무도 정해진 잣대로 성공을 평가할 수 없는 시기가 온다. 마지막으로 평가받는 시점이래봤자 취업할 때나 장가 갈 때쯤이 아닐까. 그러나 결혼한 바로 다음날부터는 어떤 점수 체계도 없다. 돌아보면 결혼 전에도 별 같잖은 점수 체계였다. 27살에 취업했냐 29살에 취업했냐는 그 시절에 엄청난 사건 같지만, 불과 10년을 더 살아가는 과정 사이에도 수많은 장애물을 더 넘고 넘어야 한다. 수십번이고 넘어질 것이고, 수십번이고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 장애물들의 다양함과 무서움은 경쟁자들을 다 잊게 만든다. 살아남은 자가 승자라는 흔하고 잔인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잘 사느냐의 문제다. 내가 보러간 영화와 친구들이 보러 간 영화가 있는데, 몇분 몇초에 친구들이 얼마나 더 웃었느냐, 얼마나 더 재밌었느냐는 지나고 보면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즐겁게 끝까지 보고 그 시간을 즐기고 갔느냐가 중요하다.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 대개 남의 영화를 의식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영화는 내가 즐긴만큼이 점수의 끝이다. 절대평가인 셈이다. 일류대를 나와 일류 석사를 받고 일류 박사를 받고 일류 회사를 들어갔다가 업무에서 인정 받지 못해 자살한 사람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에서 작은 것이 틀어지자 자신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느낌을 받았나 보다. 일류 가문에서 태어나 형제들 중에 가장 총애를 받고 일류 회사를 운영하다가 회사에 문제가 생기자 자살한 사람 얘기가 있었다. 주어진 삶이 틀어졌을 때, 주어진 황금 그릇이 찌그러졌을 때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나 삶에 주어진 그릇은 없다. 6년 넘게 병원에 입원해있느라 청춘을 전혀 즐기지 못한 친구가 있었다. 어느날 병이 완쾌되고 나니 세상에 그보다 행복할게 없었다고 한다. 건강하게 걸어다니며 건강하게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그 자체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즐겁고 감사히 하루하루를 잘 살고 있다. 뒤늦게 학교를 들어가고 뒤늦게 자격증을 땄다. 그런 에너지는 주위로도 뻗어나가고, 자신의 삶도 변화시키더라. 그런 병은, 내일 당장 내게도 생길 수 있는 병이다. 그 병이 생기고 나면, 오늘의 내 일상을 침상에 누워 매일 기도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남들보다 1~2년 뒤쳐지는거,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심리적으로 초조하지 마라. 초조한 사람이 실수하고 넘어진다. 몸을 치열하게 움직이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이 된다.
인생은 40대 부터라고 생각한다. 25살이라면, 감히 15년을 더 준비할 때라고도 할 수 있다. 초등학교 같은 것이다. 이것저것 다 배우고, 이것저것 다 잊어버리게 된다. 초등학교 때의 점수 따위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배워서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지치지 않고 열심히 다니면 어딘가 도착해있을, 그런 과정일 뿐이다.
자동차를 대량생산한 헨리 포드는 가장 무서운 경쟁자가 누구냐는 얘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무서운 경쟁자는 당신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항상 자신의 사업을 개선하려고만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업이 정말 그렇다. 우리가 매일 매일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현재 나보다 조금 나은 경쟁자들을 의식해봤자 의미 없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고, 우리가 되려 그들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토끼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중간에 무너지지 않는 것이 실상은 훨씬 큰 도전이다. 누구나 중간에 우쭐해서 멈춰서고 우울해서 멈춰서고 유혹당해서 멈춰선다. 남한테 잘 홀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언젠가 다 멈춰서서 포기하고 만다. 그 잘나가던 대우도 한방에 망했고, STX 도 한방에 갔다. 해외 유수의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후배들이 불안한 이유는, 자기가 느끼는 자기 안의 열정이나 치열함과 재능을, 사회에서 먹히는 재능으로 환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결국 환산된다. 영원히 환산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해봤자다. 당신들 선배들도 똑똑한 사람들도 많지만 등신들도 천지에 널렸다. 시간만 흐르면 대다수가 제법 괜찮은 직업으로 삶을 환산한다. 어차피 3년차 직장인인 주임 대리급이 되면 자네들이 놀려고 해도 가치를 창출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회사에서 당신들을 원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영원히 원할 것이란 얘기는 아니다. 최소한 10년은, 그러나 10년 정도만 간절하게 원할 것이다. 너무 많은 기대도 말고, 너무 걱정도 말고, 하루하루 치열함을 잘 살려 세월을 묵혀보시라고 제안드린다.
후배님들의 개인적인 걱정이 있다면, 들어줄 선배가 없다면 언제든 내게 연락해도 된다. juliuschun@gmail.com, 이름은 천영록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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