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혹은 체제라는 뜻의 ‘레짐’ (regime). 투자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단어이고, 그에 비해 연구가 덜 된 영역이며, 불리오 알고리즘에 들어가는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이 개념을 반드시 이해하기를 권한다. 여기서 레짐은 경기 사이클이나 시장의 지배적인 분위기 혹은 구간을 이야기한다. 정권이 바뀌듯이, 시장 환경도 아주 뚜렷하게 바뀐다는 뜻이다.
모든 위대한 투자자들은 레짐을 완벽히 이해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트레이더 중에 제시 리버모어, 헤지펀드계에선 레이 달리오이다.
제시 리버모어는 한 세기 전의 전설적인 트레이더다. 어릴 땐 직관과 호가 매매를 통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종국에는 개별 시세의 움직임보다 ‘거시적 시장 분위기’를 읽어내는 것이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상승장에 주식을 들고 있고, 하락장엔 매도를 한다는 얼핏 듣기엔 매우 간단한 방법론을 얘기하지만, 그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한국의 전설적인 트레이더 선경래 씨는 몇천만 원으로 투자를 시작하여 2008년의 하락장 내내 하락 베팅에 성공하여 1조 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고 한다. ‘하락장’이라는 것을 구분하여 인지하지 않는다면 이런 규모의 거래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락장이라는 레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파고든 것이다. 남들은 물론 -50%의 하락세 내내 ‘반등’만 얘기하다 끝난 시절이었다.
리버모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글로벌 매크로 트레이더 Colm O’Shea (콜름 오셰아)는 조지 소로스 밑에서 일하다가 향후 COMAC 을 차린다. 오셰아는 2007년 8월 단기 자금 시장이 말라버린 것을 보고 하락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엔 아무도 단기 자금 시장을 주목하지 않았다. 그가 항상 하는 이야기는, 거시전망은 내일 날씨를 예측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지를 관측하는 일이라고 한다. 즉 현재의 레짐이 변화하였는지를 인지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이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가 반전이다. 모두가 레짐의 변화에 관심이 없고 허튼소리를 하고 있을 때, 정확한 정보를 찾아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는 레짐을 독특하게 해석한 스타일이다. 달리오는 대부분의 투자론을 ‘불가지론’으로 설명하는 겸허한 헤지펀드 제왕이다. 즉 대부분의 시장에서는 상승 종목 같은 것을 알 수 없기에, 오로지 분산투자한다는 관점이다. 단 하나, 수백 년의 역사를 연구하는 수백 명의 역사학자로 이뤄진 팀원들이 연구해낸 것은, 레짐이 변화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의 레짐은 구체적으로 물가 상승기나 하락기와 경기 상승기와 하락기가 교차되는 4개 구간의 레짐이다. 다른 모든 것은 알 수 없지만, 특정 레짐에서 어떤 자산군이 더 상승하는지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그것에 양념을 조금 더 해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를 만들어냈고, 매년 10% 안팎의 수익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우리가 구분하는 레짐은 위의 투자자들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데이터 중심으로 구체화했다. 상승장 중에서도 점진적 상승장, 폭발적 상승장, 하락장 등으로 나누고 개별 레짐 내에서의 특징을 분석하여 우리가 투자하고 싶은 레짐만 골라 투자하는 방식이다. 특정 레짐이 다른 레짐과 명료하게 구분된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사점이다. 일반적인 학자들은 레짐의 구분 없이 시장을 너무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20년간의 시장의 특성, 같은 식으로 말이다. 시장은 레짐 별로 완전히 다른 인격을 갖고 있다고 보는게 맞다. 하락장에선 뉴스를 받아들이는 모습도, 매도를 하는 모습도, 시장이 반응하는 속도도, 일반적인 수익률도, 순환매 구조도 상승장과 완전히 다르다. 단순히 하락장과 상승장, 횡보장만으로 구분을 해도 일단은 충분하지만, 구체적인 시장의 인격들을 발견하면 할수록 더 정교한 레짐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레짐의 특징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변동성이 억제된 점진적 상승장이다. 이 시장은 폭발적 변동성을 갖춘 상승장과는 인격이 완연히 다르다. 금융업자들은 흔히 ‘하락’이라는 표현을 싫어해서 ‘일시적으로 빠졌을 뿐이야’라는 자기최면의 한 형태로 ‘변동성 시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대부분 하락과 변동성이 함께 오는 시장을 이야기한다. 변동성 높은 상승장을 변동성 시장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시장을 오래 살펴보고 데이터를 충분히 분석해본 사람들은 상승형 변동성 시장이 대부분 하락형 변동성 시장의 가장 주요한 전조라는 것을 안다. 변동성 플레이는 베트를 매우 짧게 쥐고 욕심을 버리고 접근해야 하며, 일반적으로 의외로 기대수익률이 낮다.
레짐을 어떻게 분류하고 인지할 것인지가 투자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로보어드바이저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현시점에 어떤 자산군이나 상품이 투자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지 줄어들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서비스가 투자 수익률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투자 상품들이 레짐을 무시하거나 외면한 결과, 많은 투자자에게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소위 전문가들의 이런 무책임하고 무지한 태도를 보고 있으면 정신이 아늑할 때가 많다. 언제 사야 하고 언제 팔아야 하는지를 모두 맞출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언제가 매수하기 유리한 구간이고 언제가 매수하기 불리한 구간인지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나 고민도 없다면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의 투자일 뿐이다. 이런 투자로는 돈이 절대로 벌리지 않는다. 특히나 이런 투자에 비싼 수수료까지 지불하고 나면, 남는 것은 나쁜 레짐의 고통을 다 겪고 좋은 레짐이 오기 전에 포기하는 악순환의 고통일 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명한 투자자들은 이런 레짐을 적극 연구하여 활용하길 권하며, 귀찮으시면 불리오를 사용하기를 권한다. 전세계의 우수한 레짐에 투자하고, 후진 레짐은 항상 피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