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며 원칙주의자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원칙이 있을 수록 인생이 쉬워지는 면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너무 구닥다리 원칙에만 갇혀 살고 싶진 않다. 그 가운데 어딘가에 답은 늘 있어왔다. 그런 애매모호함 속에 답을 찾으려면 항상 간단한 장비가 필요하다. 그것이 늘 ‘원칙’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가풍처럼 익혀온 몇가지 정체성이 있는데, 그 중 가장 강한 것은 역시 트레이더가 아니었나 싶다. 투자자 얘기가 아니다. 분초를 다투는 트레이더는 투자자와는 조금 다른 고집들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트레이더의 첫번째 원칙: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 것. 특히 선의의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내 자신을 끝없이 속이는 주체이다. 내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다면 트레이더 출신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성공과 실패도 중요치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패한 자는 자신을 속이는 데에 더욱 담대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트레이더 출신으로서 항상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속 쓰린 것을 속 쓰리다고 인정하는 절대적인 정직성을 좇는다. 자기 자신을 속이면 트레이더의 구층 지옥으로의 급행 열차를 타는 셈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스스로 현혹하는 자는 절대로 트레이더로 살 수 없다.
트레이더들은 궁극적으로 선생이나 애널리스트, 컨설턴트와 이런 면에서 완전히 반대의 삶을 산다. ‘선생’ 이라 말할 수 있는 류의 사람들은 자신이 더 아는 것을 토대로 자신보다 모르는 사람의 머릿속에 특정한 그림을 그려주는게 목표다. 아는 척 해야 하고, 때론 자신이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을 어필해야 한다. 트레이더들은 의견을 잘 말하지 않는다. 말해봤자 금방 틀릴 ‘아무말’이었음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얘기한다. 조지 소로스는 이런 식이었다. “나는 올해 시장이 오를 거 같애. 분명히 오를 거야. 그런데 이 생각은 오늘 오후에 바뀔 수도 있어. 그냥 그렇다고.” 모든 트레이더들이 이런 식이다. 완결하게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놓고 시작한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변덕쟁이 같다. 그저 확고한 의견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은데, 말을 하라고 하니 현재의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스님에 가깝다.
펀드 매니저의 세계에 들어가서 가장 놀란 점은, 이런 부분에서 트레이더와 정말 문화적 차이가 있더라는 점이다. 이것은 아마 VC 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수의 매니저들은 소위 ‘세일즈’를 한다. 내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종목을 사 놓은 다음, 동네 방네 커피샵을 돌아다니며 동료 매니저들에게 그 종목을 최대한 자신감 넘치게 자랑하고 어필하고 설득한다. 이것이 세일즈다. 세일즈를 할 땐 반드시 동료 애널들이 있게 마련이다. 애널들이 더 유려한 논리들을 펼쳐주고, 더 최신 소식들을 전해준다. 결론은 그 종목을 사라는 것이다. 진실된 논리가 있건 없건 간에, 그렇게 여러 기관 투자자들이 그 논리를 공감해서 종목을 사기 시작하면 주가가 오른다. 그러면 본인도 신나고 애널도 신나고 동료들도 신난다. 이 영향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까 세일즈 없이 펀드 매니저를 하기 힘들다. 설령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다니지 않더라도, 남들이 무슨 생각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항상 중요한 세상이다. 기관 투자자들의 수급이 하나의 세력으로서 일시적인 주가 변동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시세 조정과 무엇이 다르냐 묻는다면, 똘똘한 매니저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자본주의적 조정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결과는 기관 투자자 전체 평균이 벤치마크를 하회하는, 대참사였다. 이유는 트레이더 답게 생각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free rider 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일 것이다.
트레이더는 남의 말을 열심히 듣지만 휘둘리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 물어본다. 훌륭한 투자자들도 물론 마찬가지일 것이다.
트레이더는 수익을 추구한다. 수익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효율’에 가깝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이라는 게임 머니를 더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을 보는 것이다. 그게 앞서 말한 자본주의적 조정 과정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많은 트레이더들이 모이면, 좋은 시장환경이 조성된다. 돈이 돌고,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대전제를 가지고 산다.
수익의 기회는 window of opportunity 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기회의 창이 열렸다 줄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기회의 창들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트레이더의 일과를 가장 적절히 설명하지 않을까 싶다.
그 안에서 하나의 ‘비율’을 본다. 그 비율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수익의 확률과 수익성의 비율 같은 것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비율이 하루종일 오락가락 한다. 수많은 요인들로 수많은 투자처의 기회들이 오락가락 움직이고 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구간에서 나의 비율을 취하기 시작하면 된다. 그 ‘원하는 구간’이 각자의 또 다른 원칙들인 셈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내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아이러닉 하지만 수익추구를 안하는 트레이더나 투자자들을 정말 많이 본다. 그럼 도대체 뭘하고 있느냐 물으면, 답이야 제각각이지만, 결국 ‘트레이더 흉내 놀이’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 수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간지를 원하는 것이다. 직업을 원하거나, 잘난체를 원하거나, 스릴을 원한다. 칼을 차고 있는데 폼으로 차고 있는 셈이다. 무사가 될 마음의 준비는 하나도 안한 사람들이 많다. 자신을 속인 것이다.
돈을 얼마나 운용하는지를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깜짝 놀란다. 어떤 종목으로 몇% 를 벌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놀랍다. 그게 뭔가 어떤 기준이 될런진 몰라도, 트레이더는 오로지 얼마나 안정적인 기법을 만들어냈는지만이 중요하다. 매달 벌고 있으면 그걸로 된거다. 매달 벌 줄 모르는 사람들은 핑계와 자랑이 늘어난다. 아마 사업도 그렇지 않을까. 순이익을 내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 외에는 할 얘기가 없다. 적자인 회사들은 자꾸 자랑질을 늘어놔야만 하는 슬픈 운명이다.
트레이더가 국내에선 멸종해가고 있다. 슬픈 일이다.
이유는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다는 점과, 수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과,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속였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트레이딩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은 도처에 널렸다고 생각한다. 좋은 조직과 좋은 리더를 만나면 대한민국 트레이딩 센터들도 엄청난 기회의 창을 열어제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기술등은 엄청난 차별화를 줄 수 있다. 트레이딩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그런 기술을 잘 활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학적으로만 접근해서 당장 결과를 낼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으로 기존 트레이더들이 그런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당장에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양쪽 세계의 적절한 융합을 이끌어내면 될 일이다. 그런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제도권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후배들에게 미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