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는 후지다?
펀드 투자는 다시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펀드는 후지고, 이미 과거의 물건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그 근거들을 나열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펀드로 손실을 많이 봤다.
둘째, 펀드 매니저들이 시장을 못 쫓아간다고 한다.
셋째, 펀드는 수수료가 비싸다.
넷째, 펀드는 매매가 느리다.
다섯째, 펀드는 불투명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펀드가 싫다”가 하시는 고객들의 마음은 진짜이지만, “그러니까 고객한테 펀드를 팔지 말고 이름만 다른 무엇인가를 대신 추천하자”는 이야기는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 격은 “ETF”입니다.
ETF는 저렴하고, 펀드 매니저의 개입이 거의 없고, 매매가 빠르며, 투명합니다. 그러나 펀드로 손실을 많이 본 것처럼 ETF로도 똑같이 손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99% 똑같고, 1%만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충 믿고 맡긴 투자가 손실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진 못합니다.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액티브 펀드가 아닌, 인덱스 펀드도 펀드 매니저의 개입이 없고, 투명하며, 수수료가 매우 저렴합니다. 때로는 ETF를 사고파는 것보다 더 저렴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하루 이틀 매매가 느릴 수 있습니다만, 이것은 혹자에겐 단점이 아니며, 대다수 사람에겐 특별한 영향을 못 미칩니다. 펀드 투자는 주식보다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이 잘못 접근했다가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을 우려하여, 금융 당국에서 가입절차를 엄청나게 귀찮게 만들어놨습니다. 동의사항이 너무 많아서 현란할 지경이죠. 아이러닉 하게도 펀드가 쉬우므로 펀드가 (주식처럼 상장된) ETF보다 훨씬 더 가입하기 어렵고 귀찮아졌습니다. 각설하구요.
결국 투자의 진입 타이밍이 수익이나 손실에 가장 큰 영향을 줍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죠. 그러나 많은 이들은 투자가 진입 타이밍과 상관없다고 주장합니다. 적립식을 하면 그런 것을 다 평준화할 수 있다느니 뭐니 하면서 적립식으로 펀드를 많이 팔기도 하였습니다. 덕분에 고객들은 펀드라는 말만 들어도 만성적인 분노를 일으키곤 합니다. 결과가 좋을 리 없으니까요. 투자의 진입 타이밍에 상관없이 돈을 조리 있게 운용해주려면 모종의 구조화가 필요합니다. 구조화 증권인 ELS 같은 게 대표적이죠. 그리고 그런 구조화 증권 안에는 여러 가지 금융 파생 상품을 섞거나, 시장의 흐름에 맞게 꾸준히 관리해주는 로직이 들어갑니다. ELS의 경우에는 장외파생상품 팀이 다이내믹 헤지를 통해 일 년 365일 관리해주고 포지션을 만져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입 시점의 영향을 많이 줄일 수는 있지만, 전부 줄일 수는 없습니다. 결국, 뭐가 됐든 진입 시점이 굉장히 중요한 셈입니다.
그러나 세일즈맨 입장에선 진입 시점을 이야기하면 눈앞의 매출 기회가 날아갑니다. 자동차 타이어는 내년 봄에 바꾸셔도 될 것 같다고 하면, 내년 봄까지 매출이 미뤄질 뿐 아니라 내년 봄에 고객이 나를 찾아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물론 장기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그런 것도 좋은 세일즈로 연결될 수 있겠습니다만, 통상은 당장 세일즈가 실패했을 때 말하는 멘트죠. 그런데 증권사는 기본적으로 세일즈 회사입니다. 여러 상품을 가지고 와서 고객에게 건의하여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렌게리 글렌 로스라는 영화를 보면 세일즈맨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사인을 받는 것만을 목표로 영혼까지도 팔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일즈맨들의 이야기입니다.
증권사가 덜할까요? 증권맨들의 삶을 들으면 눈물이 날 것입니다. 이 상품이 좋고 말고를 떠나서 수수료 수입을 채우지 못하면 지점장실에 끌려가 인간 이하의 대우와 모욕으로 밤에 잠을 못 잡니다. 부모님 돈 할머니 돈까지 다 끌어들여서 수수료 수입을 올려야만 숨을 쉴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부모님이나 친지들, 친구들의 재산 수준이 증권사 입사에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으로, ‘고객님 이 펀드는 지금 시장이 비싸니까 가입하지 마시고 우선 자금을 안전하게 보유하고 계세요. 제가 좋은 기회가 오면 알려드릴게요’ 라고 말하는 세일즈맨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 세일즈맨은 수입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겐 더 많은 고객이 몰리기도 하죠. 사실 한 발짝만 물러서서 보면 시장의 타이밍을 재단하는 것은 몹시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수년간의 진심 어린 연구가 필요하지만요.
여하간에 90% 이상의 증권맨은 수수료 수입에 쫓깁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연간 100억 원을 펀드로 판매한 세일즈맨은 1억 원의 실적도 못 올린 것입니다. 자기 몸값과 간접비용을 올리지 못한 세일즈맨은 인생이 지옥 같습니다. 눈앞에 천만 원 들고 찾아온 고객과 노닐 때가 아닙니다. 돈 있는 사람을 혈안이 되어 찾고, 한번 찾으면 거래를 하도록 어떻게든 꼬셔내야 합니다. 창의적이고 솔직한 자문을 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고객 돈이 없으면 할머니 돈 1억 원을 가지고 주식을 백번 샀다 팔아야 안 잘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매우 장려하는 게 증권업의 전통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세일즈맨들의 상술에 의존해서는 자산이 불어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입니다. 고객의 처지를 생각할 겨를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만들다 보니 구체적으로 이런 제안까지 받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밀고 있는 상품을 로보어드바이저로 제공하는 척해주면 안되냐?’ 안됩니다. 해당 금융사에서 밀고 있는 상품도 심혈을 기울여 선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타이밍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습니다. 상품부서에서 추천해서 세일즈맨이 팔기 시작해서 10% 오르고 20% 오르면, ‘인제 그만 팔아야겠다’ 고 멈추는 데는 없습니다. “고객님 이거 두 달 만에 20% 올랐어요 지금 아주 핫합니다” 라며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게 시작됩니다. 언제까지? 폭망할 때까지. 폭망하고 나면 어떻게 하죠? 신상품을 팝니다. 왜냐고요? 세일즈맨이니깐요. 무엇인가를 팔아야만 실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투자 서비스는 근본적으로 서비스료를 받아야지 판매 수수료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당은 부적을 팔아야 돈을 벌죠. 하지만 의사는 의료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비싼 가격에 팔 게 있으면 마음이 혹합니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고객의 재방문이 이어지죠. 그게 비싼 물건을 팔지 않는 맛집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펀드가 후지다는 이야기는 고객의 경험을 대변하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펀드 판매와 연루된 모든 것이 나쁜 경험으로 이어졌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래서 ETF를 판매하는 분들에게 찾아간다? 그것은 이제 펀드를 안 팔고 ETF를 팔겠다는 그 정확히 똑같은 세일즈맨들에게 고스란히 다시 찾아가는 것입니다. ETF 를 사더라도 근본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시게 될 수 있습니다.
냉정하게 펀드와 ETF를 잘 비교해보고 적재적소의 투자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결국엔 다들 잘 쓰면 약이고 잘못쓰면 독인 양날의 검이죠. 전략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긴 쉽지 않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투자 타이밍이 제일 중요한거 같습니다. 수익률에 미치는 가장 큰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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