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리스크가 하이 리턴이 아니야

얼마 전에 카카오뱅크에 가입하니 스티커가 선물로 도착했다. 그런데 조금 놀란 건, 스티커 뒷면에 글이 쓰여 있다는 것! 직원들끼리 이것은 스티커 제작의 대혁명이라고 칭송하였다. 앞면만 인쇄하는 것이 스티커의 본질인 줄 알았는데, 양면을 인쇄할 수 있다는 작은 생각의 전환이 매우 참신했다(어쩌면 이미 많이 쓰는 방식일 수도). 웃자고 한 얘기이지만, 카카오뱅크 제작진이 모든 사물을 얼마나 자유롭게 재해석하려 했는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투자에서는 흔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표현을 쓴다. 변동성이 높은 시장일수록 장기 수익률이 다소 더 높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변동성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어서 억지로 짜낸 이론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스티커에 한 면 밖에 없다는 생각 구조랑 비슷하다. 모든 시장이 본질적으로 한가지 특징만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다중인격체이다.

가장 중요한 차트

위의 차트가 필자가 생각하기엔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차트 중에 하나다. 이것을 깨닫는데 개인적으로 이토록 오래 걸린 이유는 아마도 단기 매매가 전공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나마 이 의미를 깨닫게 된 데에는 해외투자, 커버드 콜, 레이시오 매매 등 장기 시장 흐름에 연동된 투자 경험이 쌓여서라고 생각한다. 다행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차트고, 너무 획일화된 구획 정리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꽤 큰 의미들이 담겨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구간은 변동성이 낮고 덕분에 안정성도 수익성도 높은 시장이다. 차트의 맨 왼쪽 구간이다.

여기서 말하는 ‘변동성’은 시장이 움직이는 폭이고, ‘안정성’이라는 것은 시장이 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며, ‘수익성’이란 모든 걸 합쳐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다.

이 구간은 변동성이 낮고 안정성이 높으며 수익성도 좋은 ‘대평화’의 구간으로, 이런 특징은 길게 지속하며 점진적인 상승과 함께 ‘이어’진다. 이런 구간이 포착되면 한 달 후에도 이런 구간이 계속되는 선순환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치다. 친구네 치킨집이 매출이 꾸준히 나고 수익도 꾸준히 날 때야말로 다음 달 수익을 예측하기가 쉽다. 주식시장에선 수익이 좋아 보이는 곳에 자금도 몰려서, 주가도 서서히 상승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주가가 서서히 상승하고 있는 곳이 다음 달도 여전히 수익이 높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가지로 안정적이고 행복한 구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개별 주가보다 장기 지수에서 훨씬 강력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면모는 여러 데이터로 확인된다. ‘변동성 응집’이라는 현상은, 낮은 변동성 구간끼리 몰려있고, 변동성이 높은 구간도 몰려있는 모습이다. 최소한 변동성만큼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변동성이 낮은 구간에서의 기대수익률이 다른 구간보다 월등히 높다. 이래서 레짐, 레짐, 하나보다. 변별적으로 투자하면 돈을 더 쉽게 많이 벌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안정적인 경제 상황, 경제분석에 기반한 투자자들의 행태, 시장이 상승한다는 소문에 의한 점진적인 자금 유입, 그로 인한 대다수 기업의 업황 개선 등이 서로 맞물려 있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 경제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확연히 높다는 것이다.

수많은 논문이 ‘추세 추종’을 하면 큰일 난다고 한다. 시장에서 돈을 버는 대다수 헤지펀드 들이 추세추종형 투자자이지만, 개인들이 따라 하면 대개는 손실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안정적인 추세에 무릎에서부터 투자하지 않고, 그림에 나오는 두 번째 구간에 투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이를 ‘대폭등 시대’라고 칭해보자. 이때는 변동성이 늘어나며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구간이다. 가치에 의해 움직이던 시장이 투기와 수급에 의해 탄력을 받기 시작하여 내재가치에서 폭발적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시장의 정확한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소위 ‘전문가’들의 새로운 이론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모든 경제적 연결고리들이 흔들리며 결과적으로 역사적인 기대수익률도 급감하는 구간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시장이 많이 움직여 마치 당장 투자를 하지 않으면 큰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을 주기 시작한다. 돈 벌기 쉽다고 이웃들이 아우성치는 구간이다. 사실은 투자하기 매우 까다로운 구간이라 변동성을 관측하여 까칠하게 접근해야 한다. 승산이 적은 만큼 꼬리가 길면 반드시 밟히게 되어 있다고나 할까.

이후 변동성이 폭발하며 하락하는 시장이 있다. 이럴 때는 기대수익률이 엄청나게 낮다. 아무리 매매를 잘하는 사람이어도 주식을 통해 수익을 내는 건 어려운 구간이다. 하락 추세가 뚜렷해지며, 그것이 지속할 가능성이 대단히 커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럴 때 또 열심히 투자를 한다. 바로 네 번째 구간, 변동성은 높지만, 가격이 워낙 낮아져 기대수익률이 아주 높은 구간 – 워런 버핏이 사랑하는 구간- 에 왔다고 성급하게 결론짓고 매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치투자를 어설프게 흉내 내는 사람들은 이런 구간에 큰 손실을 입는다. 분명히 두 번째 구간을 다 인내하고 기다리며 투자를 미루다가 지금 훨씬 낮은 가격에 매수하고 있는데도 고통은 끔찍하기만 하다.

이런 구간이 다 지나가고,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졌을 때 가치투자의 기회가 온다. 폭락했을 때의 기대수익이 점진적 상승기의 기대수익을 포함한 그 어느 때의 기대수익보다 더 높다. 가파른 반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반드시 제 가격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부동산으로 치면 경매에 나온 물건을 헐값에 사는 것과 같다. 그러나 변동성이 극에 달하고 ‘전문가’들은 지구의 멸망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투자하기 망설여지는 구간이기도 하다. 변동성이 높아서 수익성도 높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gh-risk high-return)의 유일한 사례이며 용감한 자가, 현금 가진 자가 큰 복을 얻는 시기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구분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티커는 한 면만 인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이었을까. 그래서 논문들을 보면 상승추세에 투자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상승추세가 최소한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가격이 저렴해질 때 사면 좋다고 막연히 주장하기도 한다. 변동성과 가치를 함께 얘기하면 소속 문파에서 퇴출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일까. 이런 얘기를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일반 투자자들만 고생하기 십상이다.

결국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구간은 두 개 밖에 없다. 변동성이 낮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있는 로우리스크 미드리턴 (low-risk mid-return) 시장이나, 변동성이 폭발하는 중에 가격이 믿을 수 없이 싸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시장. 나머지 시장들을 참고 견디면 기대수익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올라가게 만드는, 부자들의 비법이다.

하이 리스크가 하이 리턴이 아니야”의 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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