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아들아, 누구나 5억 원의 기회는 있다.

딸아, 아들아, 누구나 5억 원의 기회는 있다. 내 생각을 깨워준 자산의 공식이니, 이 이야기를 꼭 명심해라.

많은 사람들은 ‘돈이 없다’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돈은 강물 같다. 한 곳에 쌓아두고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잘 흐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흐름이 곧 자산이다. 흐름을 박탈 당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돈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에겐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심리, 우리의 세계관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돈을 우습게 보고, 우습게 보기 때문에 나쁜 습관이 쌓인다고 생각한다. 그 습관은 다시 우리의 세계관을 좌우한다. 부자가 되려면 나의 생각 구조를 잘 가다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5억 원이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이 질문은 정말 중요하다. 없다고 생각하면 고민하지 않지만, 있다고 생각하면 고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기 위해 애를 쓰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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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에서 신의와 성실을 다한다면 5억 원은 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담보에 담보를 잡고 무리를 하면 대다수 직장인은 아름다운 방법으로든 무서운 방법으로든 사회에서 5억 원을 융통 가능하다. 진짜다. 5억 이상의 빚이 생긴 사람들을 떠올려봐라. 불쌍하다고 생각지만 말고, 냉정하게 생각해봐라. 그들도 결국은 빌렸기 때문에 빚이 생겼다. 순수히 이자만으로 5억 원을 가득 메운 사람은 없다. 원금을 어떻게든 조달하긴 한 것이다. 그것이 실패한 사업이든, 무리한 주택 구매든, 지인에게 훔치듯 빌렸든, 사람들은 어쨌든 성공적으로 돈을 빌렸다. 어떤 사람은 수십억을 빌리기도 했고, 정주영 할아버지는 거의 환갑이 되어서야 개인 빚을 다 갚기도 했다고 한다. 사업이 잘 되고 있든 아니든 빚은 언제든 잘만 접근하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유에 따라 언젠가는 적정한 금융인이 나타나 결국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이 없다’고 하지 말아라. 생각을 닫게 된다. 아직 쓰지 않았을 뿐이다. 인생에 한 번쯤 빚을 써야 할 날이 올 것이고, 이 사회 구성원 누구라도 모든 것을 건다면 그 소중한 자원을 빌려볼 수 있다. 그러니 우리에겐 사실상 5억 원의 마이너스 통장이 있는 셈이다. 이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영영 이 자원을 사용할 수도 인지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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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에겐 관념적으로나마 5억 원 정도의 자산가치가 있다. 5억 원의 현금이 있는 사람을 봐라. 연 5%로 투자할 때에 한해에 2500만 원을 벌 것이다. 현금은 없지만 근로소득으로 그 정도 돈을 버는 사람이라면, 사실상 ‘나’라는 공장은 5억 원짜리 자본으로 만든 공장과 비슷한 것이다. 실제 돈이 없는데 무슨 소리냐 할 수 있지만, 생각해보아라. 기업은 자본, 노동, 기술의 조합이다. 노동 없이 자본만 가지고 돈을 버는 것과, 자본 없이 노동만 하여 돈을 버는 것, 경제적으로 본다면 유무형의 자산 가치는 같다. 지금 우리는 수중에 2500만 원을 찍어내는 기계설비가 있는 셈이고, 그 5억 원짜리 공장의 주인인 셈이다. 앞으로 그 공장으로 한동안 자본금 5억 원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남이 5억 원 주고 사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평생의 노동을 한 번에 팔 생각이 없어 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공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주어진 월급만 생각하고 살지 말아라. 실제로 그만한 자본 위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설령 빈손으로 태어났을지언정, 사회적 자본을 조금이라도 부여받은 것이다. 신용을 쌓기에 따라 5억 원 정도 내 뜻으로 움직일 수 있는 룸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과 내 몸을 종잣돈으로 어떻게 부자가 될지를 궁리해야 한다. 그것을 활용하려 하지 않는 자에겐 너무나 가혹한 세상이다. 본인이 본인의 의지와 지혜로 자신의 운명을 일정 부분 선택할 수 있다는 점만이 어쩌면 자본주의의 유일한 장점일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려라.

이 세상의 룰 안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형의 자본들을 완전히 통제하여 성공의 휘발유로 사용해야만 한다. 내가 앞으로 벌 돈과 지금 벌고 있는 돈, 모두 내 공장의 재무제표의 일부이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돈에는 의미와 이름표가 있다. 그것을 바보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남의 손에 넘겨주면 우리의 공장은 망해가는 공장에 다름 아니다. 순간의 기분을 위해 사용하는 그 모든 돈은 내 공장의 설비를 팔아먹어 나온 돈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들어오는 근로소득은 우리가 현재를 즐기라고 세상이 주는 선물이 아니다. 나의 사회적 자본을 태워 먹으면서 현금화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의 소득이다. 돈이 없다고 선택하지 않은 모든 투자, 나 자신은 소중하다며 자신에게 사준 모든 작은 선물도 다 어떤 소중한 기회를 차버리는 댓가라는 것을 부정하지 말자. 기름칠하지 않는 공장, 사랑받지 못한 공장이 고도화될 가능성은 없다. 작아 보이지만, 나의 공장을 정성으로 관리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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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계관이 우리의 저축 습관을 방해하는 두 가지 요소를 소개해본다.

첫째는 우리는 현재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과거의 우리의 변화를 아주 크게 인식한다. 10년 전에 좋아하던 가수, 좋아하던 음식, 좋아하던 사람의 스타일이 지금과는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후에는 우리의 취향이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 나 자신의 모습과 생각을 내 인생 최고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에 공부를 더 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 생각하면서 이젠 늦었고 앞으로 10년간은 큰 발전을 못 할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을 과대포장하고, 미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돈은 시간이라는 자원을 가장 많이 먹고 성장하는데, 우리의 이런 자세가 돈이 클 수 있는 환경을 방해한다. 과거에 쓴 돈은 의미 없었지만, 지금 쓰는 돈은 의미 있게 느껴지지, 그렇다고 미래에 쓸 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다. 마케터들이 지름신을 부추기는 것은 이런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고, 항상 마케터들은 승리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공장을 내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도 비슷한 이야기다. 우리는 3천 원짜리 커피를 5천 원에 살 때면 비싸게 느껴지지만, 10만 원 짜리 상품에 배송료가 6천 원 붙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가까운 것을 더 세심하게 보는 우리의 뇌구조에 기인한다. 미국에 사는 친구가 교통사고 난 것은 멀게 느껴지고,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바늘에 찔린 것은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시간의 축에서도 그렇다. 10년 후의 1개월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만, 지금부터 1개월은 아주 멀게 생각한다. 먼 것은 비약적으로 멀어져도 여전히 먼 것이고, 가까운 것은 조금만 멀어져도 아주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저축에 적용해보면 이런 느낌이다.

지금부터 매월 55만 원을 저축해서 연 8%로 불린다면 10년 후에 내 자산은 1억 원이 늘어있을 것이다.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에 만약 10년간 매월 55만 원을 저축해서 연 8%로 불렸다면 내 통장엔 1억 원이 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이런 마음의 변덕을 다스리는 것, 지금의 희생을 통해 미래의 나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이 부자들의 첫 번째 조건이다. 모든 부자는 과거의 자신이 선물한 무엇인가로 현재 부자가 되어 있다. 선물하는 자가 없으면, 다 써버리면 미래의 나는 불쌍하다. 오늘의 내가 언젠가 미래의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미래의 나를 남이라고 생각해도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지금 당장 나의 소비습관을 냉철하게 돌아보고 가족과도 철저하게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 오늘 쓰는 2만 원, 여행비나 술값, 자동차 유지비 혹은 각종 유흥에 사용한 올해의 600만 원, 그것이 십 년만 쌓이면 1억 원이다. 그 1억 원은 내 인생 일대의 종잣돈이고, 앞으로 영원히 연평균 800만 원을 찍어낼 공장이다. 돈 뿐이랴 온갖 지혜와 지식이 흘러나올 곳이다.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미래엔 그럴 수 있다. 미래의 공장을 해체해서 즐긴 오늘, 그것은 내일이면 그다지 분홍빛으로 기억되지 않을 일순간의 쾌락이다. 생산성이 없는 투자에 쏟아부은 돈은 대표이사의 배임 및 횡령이다. 그 회사의 주주는 미래의 나 자신 아니겠느냐. 가난에 치를 떨고 슬퍼할 나 자신과 가족의 자산일 수도 있다. 돈이 많다 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푼 한 푼의 소비가 모두 내 공장을 때려 부숴 사용하는 자산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했으면 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욜로’라는 표현으로 더욱 많은 소비를 조장하는 게 세태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데 미래의 내가 기가 막히게 멋진 삶을 살다 가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내 공장을 키워야만, 그리고 내 소비를 다스려야만 진정한 행복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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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아들아. 누구나 5억 원은 있다. 단지 내 손에 없을 수 있을 뿐이다. 돈은 돌고 돈다. 내가 수십억 수백억을 다스리는 수문장이 될 수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일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 명확한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나의 역할을 설계하고, 내 주위에 스쳐가는 돈들의 본성을 헤아려라. 그 돈들이 너희에게 붙어 함께 일할지, 아니면 너에게 소비의 쾌락을 주다가 소비의 박탈을 주는 고통의 씨앗이 될지는 너희가 돈의 주인이 되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직 그 힘을 깨우쳐 다스리지 않았을 뿐이다.

2017.08.20

사랑이 화랑이 아빠가 미래의 자녀들에게
(Photo by Caroline Hernandez on Unsplash

Photo by Mike Newbr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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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teve Shreve on Unsplash
Photo by Igor Ovsyannyk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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