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아들아, 오늘은 시장 이야기다

딸아 아들아 오늘은 시장 이야기를 적어둘테니 십년 후에 읽거라. 십년 후에도 고스란히 사실인 이야기들을 이 젊은 날의 아빠가 해주마.

하는 일이 금융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아빠한테 질문을 한단다. 시장을 이길 수 있나? 남들이 다 돈을 벌려고 하면 누군가는 돈을 잃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짧은 생각이다. 시장의 본질을 알지 못해서이다. 너희는 아주 어려서부터 시장을 두고 두고 이기는 연습을 하게 될거다.

어떤 게임이 있다고 해보자. 이 게임은 10명의 사람에게 카드를 여러장씩 나눠주는 게임이야. 카드에는 명령이 적혀있어. 다섯명에게 하이 파이브를 해라, 여섯명에게 말을 걸어라, 세명에게 카드를 뺏어라, 두사람에게 카드를 나눠줘라, 누군가를 게임에서 이기도록 도와라. 이 게임은 하기에 따라서 모두가 이길 수도 있고 모두가 질 수도 있지.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이기는 조건이 다르다는 거야. 각자 자신의 조건을 찾아서 게임을 하기 때문에, 나의 행동이 남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전혀 방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시장은 모두 같은 시간 안에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는 거지.

어느날 선물옵션 시장에서 보니 기관과 외국인이 한달 내내 선물을 매도하는 거야. 게다가 풋옵션을 사고 콜옵션을 팔고, 오로지 시장이 하락해야만 돈을 버는 포지션을 구축하더라는 거야. 그런데 그 달에 시장이 많이 올랐어. 시장을 보며 제로섬 게임이니 뭐니 해서 누군가 돈을 번 만큼 누군가는 잃었다고 하는데, 결국 기관과 외국인은 선물옵션 시장에서 돈을 많이 잃은 거야. 그런데 알고보니 주식을 대량으로 사면서 일부만 선물옵션으로 헷지를 했다는 것이었어. 게다가 원화강세에도 베팅한 것이었다더구나. 게다가 현선물 스프레드가 벌어져 차익거래를 하기 좋았다는 구나. 게다가 특정 종목을 더 공격적으로 사기 위해서 헷지를 했다는 구나. 게다가 신흥국 자산을 늘이기 위해서 그랬다는 구나. 분산투자를 해야한다는 명령이 있었다는 구나. 게다가 그들은 단기투자자도 아니었다는 구나.

그러면 주식시장이 오르는데 외국인들에게 주식을 판 개인들은 손해를 봤을까? 단기 트레이더여서 주식이 오르니 챙기느라 바빴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결국 패자는 없었던 셈이지.

어떤 이들은 가격을 보지 않고 일년 내내 주식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연금도 그렇지. 또, 거시경제 사이클을 보면서 주식 시장에 우호적인 기간 동안에는 길게는 십년 내내 주식을 사는 장기 투자자들도 있지. 반대로 주식 하락기가 명료한데도 주식을 팔 수 없는 사람들도 있어. 보험회사일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일 수도 있어. 회사 오너들은 아주 오랫동안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고, 계속 더 사기도 하고.

모두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 시장에서 만난 거야. 그러니 시장이 무슨 천재적인 초단타 트레이더이자 스윙 트레이더이자 중기 트레이더이자 장기 트레이더가 모든 기회를 다 뺏어먹듯 하는 괴물은 전혀 아니야. 게으른 자에게 그래 보일 뿐이지.

그러나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다 보니 다양한 일들이 발생해. 누군가는 후회할 일만 골라서 하는데, 사실 그게 대부분의 사람이야. 자연인 그대로의 우리가 시장을 보게 되면, 자연인 그대로의 행동들을 하거든. 서울에선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얘기가 있는데, 시장이 딱 그런 곳이야. 이문, 이문을 위해 속고 속이는 시장이지. 시장을 모르는 촌놈이 들어가면 코 베여. 그러나, 이문을 위한 싸움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질서정연하지도 않아.

비겁해 보이겠지만, 돈을 번다는 것은 전쟁이 끝난 후 패잔병들의 귀중품을 챙기는 일과 비슷해. 혹은 승자에게 기념품을 파는 것과도 비슷하달까. 무모하게 전쟁에 뛰어드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돈이 될 일을 구체적으로 더 안전하게 반복하는게 중요하지. 누가 이기든 상관 없이 나는 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 시장을 대하는 마음이 이래야해. 남의 인생과 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전쟁을 할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들의 광기를 피해 안전한 수익을 추구하는 것.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인생의 모든 것이 그렇듯,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란다. 내 손에 쥔 카드에는 어떤 명령이 적혀있을지, 그것은 다행히도 너희가 직접 선택할 수 있어. 매달 돈을 버는 것이 목표인지, 분기마다 돈을 버는 것이 목표인지, 얼마나 벌고 싶고 어떤 방식으로 벌고 싶은지를 계속 고민해보면 그 안에 나름의 명답이 있을 거야. 그것을 찾거라. 너희에게 딱 맞는 것을 찾아서 그것을 선배들에게 배우고 꾸준히 추구한다면, 생각만큼 세상과 시장이 너희를 방해하지 않을 거야. 모두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의 것을 빼앗으려는 자는 생각보다 없을 거야.

시장에 연연하지 말거라. 시장이란 것은 종목을 어떻게 묶는지 짜맞추기 나름이라 아무 의미도 없어. 그러면 시장에서 일어나는 하나 하나의 기회들에 대해 알게 될거야. 화이팅.

1 thought on “딸아 아들아, 오늘은 시장 이야기다”

  1. 처음 댓글을 답니다.
    시장이란것이 결국은 정답을 정해놓은 판이 아닌, 참여자들이 가진 전략적 목표에따라 종횡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우리는 어쩌면 2차원 평면위에 두가지 변수만 고려한 그래프를 지나치게 보면서 학습한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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