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를 바라보는 경제학적 투자자의 해부학 (긴 버전)

  암호화폐 이슈는 기술적이기보다는 매우 경제학적인 이슈다. 경제학에서 주로 다루는 인센티브 문제와 화폐 경제학, 그리고 그것이 경제적 자원의 유통과 배분에 미칠 영향력 등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포괄적으로 섞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암호화폐 기술이 세상에 미칠 영향력을 냉정하게 한번 검토해보고, 그 잠재력과 다른 기술들의 잠재력을 비교해 과연 투자하기에 적절한 가격 수준인지 보자. 가뜩이나 말이 많은 판이라 괜히 읽을 거리를 하나 더 만드는 것에 죄스럽긴 하지만, 가격 폭등락시의 사회 분위기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 있게 공부하고 투자해온 사람으로서 한줌 노이즈를 더해 본다.

글이 길어서 한줄 요약: 생각보다 범용성이 없고, 개념들이 모호해서 별로인데, 그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자원이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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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이슈가 되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합법화 혹은 폐지에 대한 쟁점에 대한 의견부터 하나 남기겠다.

(약간 긴 규제 디쓰)

‘거래소’ (혹자는 중개소라고 얘기하기도)에 대한 규제를 증권업 혹은 도박 사이트 최소한 둘 중 하나와 동일한 기준으로 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투자업에 대한 복잡하고 후진적인 규제는 물론, 도박 사이트에 대한 전면 규제에조차 다른 이유에서 원론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금융 전반의 국제화가 심층적으로 진행되어 있는 터에 국경 내에서 도박을 금지하는 것이 도박 중독의 피해를 줄여주는 실효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법 영역 및 원정 도박(?)으로 너무나 손쉽게 이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숫자로 수 없이 증명된 바가 아닌가? 앗싸리 규제 자체를 뛰어넘기 위해 만들어진 초국경적인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것은 명분도 어떤 실효성도 없다고 본다.

우리 나라 규제는 근본적으로  피해 최소화가 목표가 아니라 ‘민원 최소화’가 목표인 것 같다. 피해 발생의 근원적 이유와 상관 없이 규제당국에 민원이 발생할 근거만 없으면 면피가 된다고 믿고 있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니라고 한번 말씀해주시라. 예컨대 ELS 라는 구조화증권에 투자해서 손해본 사람이 많아지면 제 아무리 효용을 얻은 사람이 많아도 규제해버린다. H지수 떨어졌다고 ELS 규제하니 H지수 반등할 때 벌 수 있는 돈은 다 날렸다. 돈 못 벌었다고 민원 넣진 않으니까, 피해자가 없었노라며 당당한 셈이다. 펀드 투자해서 손해본 사람이 많아지면 펀드 투자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어버린다. 일반인은 투자하기 어렵게 말이다. 민원이 늘면 누군가 모가지가 날라가는데, 규제를 잘 풀어봤자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효성 없는 규제가 늘어나는 것은 정말이지 사회적 낭비여서 그 피로도가 극한에 다다렀다. 최소한 뭔가 혁신하려는 사람들에겐 그렇단 말이다. 혹자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버렸다고도 주장할 것이다. 어쩌면 규제가 적은 암호화폐 거래소에 김치 프리미엄 투기가 몰린 것도 과도한 규제의 틈새에 자금이 몰리는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한편, 그렇다고 해서 증권업이나 도박 사이트 둘 중 하나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특례를 만드는 것도 형평성 문제가 있다. 도박에 준하게 판단하되 도박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이 합리적이리라 생각하지만, 일단 쉽지 않겠지. 우리 나라에서 용서 받는 투기는 그저 부동산 청약 투기 밖에 없다.

한마디로 규제는 짜증나지만 여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하여 jtbc 에서 유시민과 정재승이 나온 가상화폐 토론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극명하길래 흥미로워 뒤늦게 봤다. 토론 자체는 주장과 선언만 난무하여 정재승 박사나 지켜보는 나나 모두 따분해 했던 것 같다. 유시민의 압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 유시민이 자신의 주장을 가장 열심히 주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시간 상의 제약이 있었지만, 각자 의견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토론의 노력은 거의 없어서 재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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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투기에 분개했고, 정재승은 일방적 주장 자체를 즐기지 아니하여 토론을 포기했고, 김진화 대표는 웃는 낯으로 의견을 경청하면 건설적인 논의의 시간이 오리라 기대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음. 경제학이 수학적인 원리라는 웃지 못할 주장만을 남긴 채 끝났음. 또 누가 앉아 계셨더라…

이번 글은 조금 길다. 지난번에 가상화폐 폭등은 하이퍼 디플레이션이 아닌가 하는 주제로 썼었는데 그보다 한단계 더 들어가보려 한다.

우선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시장 가격 폭등이 올 때 꼭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들이 있다. 우리의 모든 사고구조가 때로는 이러한 ‘가격상승’이라는 팩트 안에 갇혀서 이뤄질 때가 있다. 이런 점들이 우리의 관점에 대단한 혼동을 주고 감정적 주장을 난무하게 만들기에 거리를 두고 객채화 시킬 필요가 조금 있다. 물론 전재산을 암호화폐에 투자하였거나, 태어나서 첫 투자가 암호화폐인 사람은 객체화가 어려울 것이니 굳이 읽을 필요 없다.

(엄청나게 긴 관련 설명)

  예컨대 어릴적에 선생님이나 아버지께서 음악가나 만화가는 딴따라 놈팽이니 공부를 하여 큰 일을 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해보자. 그러나 그 이후에 음악과 만화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여 영향력이 커짐은 물론, 종사자들이 큰 수익을 내고 세계적으로 그 문화적 가치를 조명 받았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아버지께서는 그 현상에 대한 감정적 부정을, 나는 아버지의 그릇된 예측에 대한 불만을 품게 될 수 있다. 그게 인간적 감정이다. 대선 전후로도 이런 현실 부정이 얼마나 흔하단 말인가. 하지만, 직업의 경제학에 대해선 아버지께서 틀리신 것이 명백해졌고, 그와 상관 없이 아버지의 기본 논조는 별개로 유효하거나 애초에 무효했을 수도 있다. 두가지 사안이 감정적으로 매우 엮여 있지만 본디 별도의 쟁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타국과 전쟁을 했는데 우리가 지고 있다면, 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팩트이지만 우리의 논조는 그것과 별개다. 이긴 자가 역사를 쓴다지만 투자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이긴다고 해서 맞다는 것은 아니고, 맞는다고 해서 이긴 것은 아닌데, 결국 자주 맞추는 사람이 자주 이길 가능성이 높아서 하는 소리다.

  ‘가치가 없기 때문에 가격은 못 오른다’거나 ‘가치가 높기 때문에 가격이 무조건 오를 것이다’ 거나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가치도 높았던 것이 증명됐다’거나 ‘가격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나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등의 생각은 모두 가치와 가격에 대한 엄청난 감정적 집착에서 오는 혼용으로, 특히 그 두가지의 상관관계를 짚어내야만 하는 투자자 입장에선 큰 의미가 없다. 가격은 올랐으니 가격에 대한 진실은 ‘올랐다’는 것이 맞고, 효용이 있었는지 혹은 미래에 효용이 있을지에 대한 지성적 논쟁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만화간데 연봉이 2억이야, 내 가치를 어떻게 더 설명해야 되나 이 가난한 교수 자식아’ 라는 식의 논쟁을 누구나 쉽게 한다. 어린 친구들은 거칠게 하지만 사회 원로들도 이와 다를 바 없는 논리를 펴댄다. 결과가 좋았으니 과정도 다 옳았다는 식이다. 그러나 감정적 소모일 뿐이다. ‘딴따라 따위가 100억을 번다니 세상이 망해가나봐’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요는, 믿음과 논조를 하나 하나 분리하여 살펴보고 논의 하지 않는다면 끝없이 비생산적인 논쟁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격 폭등 시의 집단 최면

  일반적인 자산시장과 흥분 하의 가격 폭등 시장은 모든 의미에서 다르다. 일반적인 시장은 매우 차분하여 합리성과 각자의 논리가 중시된다. 엉덩이가 무거운 애널리스트들이 미시적 분석을 주도하는 치밀한 게임이론의 세계라고 할까. 하지만 가격 급등이 나타날 때면 마음이 급해지는 참여자들의 심리와 행동이 가격에 맹렬하게 반영되어 기존의 논리적 변수들은 때로는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가격의 폭등 속도가 높을 수록 사람들은 스스로의 판단을 미루는 경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남의 얘기와 눈 앞의 증거를 더 쉽게 맹신한다.

  한편, 가격 폭등 상황에서는 사회 심리학이 모든 기존 논리를 압도한다는 의미에서 상당히 방향성이 명료하고 예측이 쉬워진다. 기존 자산시장의 무작위해보이는 균형과 규칙과는 전혀 독립적인 별개의 시장이 조성된다. 마치 대형마트의 일상과, 육류 코너 마감 번개 세일의 풍경이 완연히 다른 것과 같다. 군중의 심리가 일련의 자기실현성을 통해 극한에 이르르면 오로지 초 근시안적인 기대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데, 이는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뿌리 박힌 특성이어서 생각보다 일관성이 대단히 높다. 익숙한 정치 세계의 한 장면에서 유사점을 찾자면, 군중의 일정 임계점 (예컨대 5% 이상)이 반정부 데모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그 근본 이유가 무엇이던 간에 사회 정치적 불만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기존 정권이 전복될 가능성은 폭증한다. 그 정치적 현상의 근본 이유에 대한 분석은 복잡하여 파악이 힘들다. 정확한 해석은 저널리스트와 역사학자들에게 맡기더라도, 그 사회적 현상 자체의 관성과 반동의 선후관계는 투자 전문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관심사이기 마련이다.

  단기 투자자 중에서도 가장 이름을 알린 헷지펀드 매니저 조지 소로스는 이런 현상들을 ‘재귀성 이론’이라 부르며 본인 투자의 핵심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가격 움직임이 정상치를 벗어나 과대 반영되었다가 다시 실망감이 과대 반영되는 패턴을 이용해 여러차례 큰 돈을 벌었고, 이 이론을 토대로 무려 철학책까지 썼다. 나는 전문 트레이더라면 반드시 버블의 생성과 소멸의 시기에 비대칭적이고 거대한 수익을 실현하는 사고방식을 터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는 그 광란의 순간에 사람들의 행동이 상당히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평소랑은 다르지만, 다른 광란의 순간과는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파생상품 트레이더 출신이다. 주식 시장 버블이 10년에 한번 발생한다면 옵션 시장에는 반년에 한번 정도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신규 진입자의 등장과 퇴장이 워낙 빨라서일까. 1년에 한번쯤 발생하는 개별 종목 규모의 버블은, 옵션 시장에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의 주기로 반복된다. 시장의 시간의 흐름이 수십배 정도 빨리 진행되는, 일종의 투자계의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움직임 폭도 암호화폐와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다. 하루에 가격이 100배 폭증 내지는 폭락하는 시장을 최소한 서른번 이상 본 것 같다. 100배라 하면 10,000%의 수익률이, 하루 혹은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만에도 나타나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 찰나에도 시장이라는 소우주 생태계에선 일상적인 가격 균형과 질서들이 무너지고 기대치가 폭발하고 손절이 폭발하고 절규와 탄식이 터져 나오며 수천 수만명이 밤잠을 설치게 된다. 세계 최대 규모의 거래량을 자랑하던 대한민국 선물옵션 시장에서 7년 가깝게 시장을 보며 매매해오며, 소로스의 재귀성 이론에 공감하여 버블의 정점 구간을 많이 활용하였고, 인류의 버블의 역사를 찾아 읽는 것이 취미였으니, 가격 폭증과 폭락 즈음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 패턴에 대해서 상당히 소상히 연구를 해본 사람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결국 결론은 간단하다. 반복되는 군중의 심리학이 있다는 것이다.

  거품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벌써 암호화폐를 거품으로 정의한 것은 아니다. 거품이란 단어는 이후 반드시 터진다는 부정적인 함의가 있어 암호화폐 찬성파에겐 거부감이 생길 것이니 피해야겠다. 그러나 암호화폐가 가격 폭증을 이어오고 있고, 사람들은 추가적인 가격 폭증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팩트다. 한편 이로 인해 돈을 벌지 못한 사람들은 빨리 가격이 꺼지라고 배 아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흔히 반복되는 잘 알려진 시장 현상이고, 연구가 많이 되어왔다는 점도 부정해선 안된다. 아무리 ‘이번만큼은 다름’을 외치고 싶어도, 이번에도 위의 객관적 상황은 비슷하고 따라서 참여자들의 태도도 비슷하다. 앞서 아버지와 선생님을 빗댄 이야기처럼, 이 표면의 팩트와 근저의 쟁점은 서로 엮이지만 사실 별개로 구분할 수 있고, 반드시 구분해서 존중해야만 한다. 그 전에 그 두가지가 복잡하고 지저분하게 혼용되는 특성에 대해서 매우 냉철하게 자각할 필요가 있다.

  가치가 있는 것이 가격도 오르지만, 때론 가치가 없어도 가격이 오르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선 인정했으면 좋겠다. 가격과 가치가 따로 노는 일은 너무 흔해서 오히려 같이 움직이는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하지만 가격이 오르는 것 자체로도 그 진정한 잠재적 가치가 실현되는 듯한 강렬한 암시를 주고 향후 가격을 더 올리는 땔감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번에도 그런 사회적 힘이 일부라도 작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암호화폐의 위대함 덕에 가격이 올랐을 수 있지만 반대로 ‘가격이 올라서’ 갑자기 그 기반의 논조들이 모두 대폭 설득력 있게 들리거나, 혹은 그럴싸한 통계치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앞뒤 관계의 감정선이 얼마나 복잡하게 뒤섞여 우리 판단을 지배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예수님이 옳아서 사람들이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인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격렬하게 믿는 모습을 보며 나도 믿음이 생긴 것인지 무 자르듯 구분하기 어렵다. 믿음은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영향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교회나 종교 집단이 어쩌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또한 내가 의심을 가지던 것이 몇번의 증명을 통해 사실로 드러날 때 우리는 생각보다 과도한 신념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결국 세속의 세계에선 가격이 올랐다는 팩트만으로도 종교보다 더 강렬한 신념이 전파되게 마련이라는 이야기의 반복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말이다. 그리고 ‘버블’을 논하는 사람들은 역으로 그 근저의 논리에 대해 알아볼 생각도 안하고 감정적 반감만 가득차 트집을 잡으려는 심퉁에 빠지기 쉽다.

  그러니 모든 논조에서 ‘시장이 올라서 생긴 현상’과 ‘근저의 잠재력 평가’를 구분해서 논의했으면 좋겠다. 예컨대 ‘이미 천만명이 넘게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는 시장을 설명함에 있어 대단히 의미가 있는 통계이지만, 근저의 잠재력에 대한 평가를 함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혼란만 부추긴다. 가격이 안 올랐으면 아무리 좋아도 천만명이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위대한 기술일 수 있다.

  ‘수많은 코인들이 ICO 를 진행하였고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논지도 언뜻 충격적이며 매력 있는 이야기지만 이 역시 기반 기술의 위대함의 직접적인 증거라기 보다 가격이 오른 점 때문에 강력하게 촉진된 면이 많다.

  작년 초 경부터 우리 회사에 ICO 를 한번 해보자는 사람들이 몇 찾아왔다. 우리 팀원 중에도 ICO 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코인의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가 되어볼까 하는 검토의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톤이 IT 버블 때의 IPO 광풍 시절과 너무 비슷했다. “지금 가격이 폭등하고 있어서 눈먼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으니 아무거나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ICO 해버리면 지금 떼돈 벌 수 있다, 돈 챙기고 나서 생각해라, 지금 사람들 미쳐서 아무도 논리를 보지 않는다 일단 질러라. 이런 기회 다시는 없다”가 일관적인 요점이었고 일부 실제 워딩이다. 한마디로 인생일대의 기회에 한판 작전을 벌여보자는 것이다. 다른 ICO 회사들의 내용을 읽어봐도 대다수 터무니 없는 수준의 환타지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개 성공적이었다.

  성공적이라고 해서 건전하거나 합당한 것은 전혀 아니다. 건전하지 않다면 지속 가능하기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성공적일 수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둘은 다른 세계의 것들이다. 어쨌건 생태계가 구성되었다는 것은 건전하고 합리적이어서라기 보다 ‘돈이 몰린다’는 이유가 더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최소한 상당히 독립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돈이 지속적으로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하루 아침에 가격이 상승하는 ‘관성’이 주도한 것이다.

   요는 결국 결과적 성공과 그 근저의 논리를 구별해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간단한 얘기로 글이 너무 길어서 죄송)

확실히 하자면, 가격이 빠졌다고 그 기반 기술이 허구이지도 않고, 가격이 올랐다고 그 기반 기술이 위대한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별 관계 없다고까지 할 수 있다. 잘나가는 것은 잘나가는 것의 아우라가 있어서 단언컨대 모든 금융사기는 아우라에 홀린 자들이 충분한 사전 분석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법이다.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해서 증빙을 하지 않으면, 샐러리맨 신화이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의 도덕적 흠결을 검토해볼 필요조차 없다는 주장이 되어 버린다. 벤츠를 타며 큰 저택에 사는 소위 ‘성공한’ 사람에게는 신뢰가 가지만, 따지고 보면 남보다 더 신뢰해야할 이유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얘기만 계속 하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이견이 있으면 다음 얘기들은 다 서로의 위치 차이만 확인하는 부질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무엇을 볼 것인가 – 기술의 잠재적 가치

기술에 대해선 내가 자세히 평가할 수도 없지만 사실 자세히 평가할 이유도 없다. 일반인에게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사회에 궁극적인 변화를 일으킬 잠재력 여부와 그 폭이다. 물론 암호화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어쩌면 현재의 불편들을 두배 세배 편리하게 변화시킬지 모른다. 누구도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묻고 있는 것은 아주 협소한 질문인데, 과연 벤처 투자자들이 흔히 말하는 ‘열배 이상의 변화를 일으킬 기술’인지만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 이하의 잠재력을 가진 기술에 전국민이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발명가들 사이에 추앙 받는 위대한 기술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블록체인을 활용한 암호화폐 기술의 가장 큰 함의는 ‘하나의 거대 주체가 다수 군중과 거래할 때 군중을 속이기 쉬운 환경이라면, 그 주체가 투자하고 관리해야할 거대 인프라와 비용을 다수 군중에게 간단하게 분산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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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업에는 세가지 소재가 필요하다. 거대 주체, 군중이 이미 경험하고 있는 큰 불이익, 해체시킬 자본집약적 중앙집권형 인프라. 암호화폐는 거대 주체가 군중을 속이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곳에서 그를 대체할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예컨대 저작권은 충분히 이에 해당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음원 유통 회사라는 거대 주체가 장부를 조작하면 공급자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른다.

반면 길거리에 사고가 있는지 없는지를 실시간으로 판단해서 자율주행 차량이 인류 공동의 장부에 저장하여 주위와 나누는 일은, 거대 주체가 군중을 속일 동기가 전혀 없는 영역이다. 블록체인화 시키지 않고도 아무 대기업끼리 경쟁적으로 투자해서 실시하면 참여자 모두가 행복해질 일이다. 실제로 세상의 수많은 일들이 거대주체의 자기탐욕적인 기업가 정신과 시장경쟁 및 반독점법이나 소비자들의 감시 등에 의해 아름답게 잘 돌아가고 있다. 모든 비지니스를 강제 해체하여 익명의 민간에게 외주 용역처럼 흩뿌릴 필요가 없다. 나도 아나키스트에 가깝지만 자본주의의 순기능을 불필요하게 전부 삭제할 필요는 없다. 순기능의 중심에는 거대 주체로 자랄 수 있는 기업환경이 있다.

그렇다면 화폐는 어떠한가? 중앙 정부라는 거대 주체가 장부를 저장하고 관리함에 있어서 슬쩍 화폐를 명분 없이 발행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군중을 속일 수 있는가? 물론 실제로 속이는 것에 준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다. 문제는, 그 영향과 폐해가 일반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과 불러일으키는 거부감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안 학파라 불리는 소수의 왕따 경제학도들이 있는데, 정부 주도하의 통화량 증대에 큰 불만과 우려를 갖고 이를 주구장창 경고하고 있다. 이는 미국 자유주의자로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Ron Paul 을 포함하여 수많은 오스트리안 경제학파들이 멸시를 무릅쓰고 주창해온 주제이다. 오스트리안 학파는 한마디로 정부가 경기변동을 조정하기 위해 화폐를 가지고 노는 것을 전면 비판하는 학파다. 모든 조작은 더 큰 버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역설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이기도 하다. 처음 암호화폐를 보았을 때 오스트리안 학파의 이념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점에서 반가웠고 흥분됐다.

오스트리안 학파를 소개한 것은 그 이론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군중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조차 없어왔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슬픈 현실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암호화폐 덕에 그 핵심 주장에 관심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갔기를 진심 고대해보지만). 세상은 정부가 유동성 확충이랍시고 돈을 찍어내 맘껏 쓰시라고 할 때 정색하고 대환호했다. 거대 주체 중에 중앙정부들은 어쨌든 생각만큼 미움 받고 있지 않은 주체들이다. 선거와 언론 등을 통해 극렬하게 견제 받고 있다는 점도 그에 한몫한다. 그런 의미에서 화폐의 탈중앙화는 세계민중의 강렬한 니즈라고 말하긴 매우 어려웁다. 암호화폐에서 그 탈중앙화의 기치가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다고 얘기하진 말아주길 바란다. 그저 신나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차용된 소재라고 보는게 더 맞지 않겠는가. 그러니, 소위 ‘열배 이상 개선시킬’ 여지 자체가 별로 없다.

더군다나 화폐는 찍어내는 것 외에도 통화승수를 조정하는 것과 금리를 조정하거나 국채를 매입하는 등의 조절장치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발행량을 통제하는 것은 마치 엔진 속에서 고장이 잦은 체인 하나만 적출해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고장을 줄인다는 보장을 해주기엔 다른 부품들의 변수가 너무 많다. 암호화폐 기술을 어필할 때 이런 경제학적 요인들을 마음대로 덧대서 어설픈 아마추어 경제학자 흉내를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무시한채 어줍잖은 개념 하나를 들이밀며 성배를 찾았노라 하는 모습은 경제학자들의 전매특허이다. 굳이 배울 필요 없다.

실제 암호화폐가 진짜 화폐냐 아니냐는 담론이 있다. 어려울 것 없이, 암호화폐는 화폐가 맞다. 싸이월드 도토리도 화폐일 수 있고, 여러 금융상품도 모두 화폐가 될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화폐를 만들어도 일반인에겐 기축통화만 잘 자리잡고 있다면 문화상품권이나 가상 포인트처럼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또 이런 개념이 전혀 새롭지도 않다.

그 용도가 자유로운 전자 화폐들의 발전은 매우 환영한다. 블록 체인이나 탈중앙화와 관계가 없더라도, 형태가 자유로운 구조화증권 등의 번성과 규제 완화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많으면 많을 수록 좋고 다양하면 다양할 수록 좋고 때론 매우 복잡한 형태들도 좋다. 맞춤화된 신탁의 역할을 하거나 에스크로의 역할을 하는 전자화폐들이 번성하면 좋겠다.

(아주 짧은 첨언)

 

물론 신뢰할만한 규칙들이 자리 잡지 않으면 여러 오해로 인해 사고가 끊임 없을 것이고 피해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지식 네트워크가 그런 사고들을 통제해주는 역할도 하지 않겠는가. 그런 사고들이 발전에 따르는 비용인 셈이다. 그리고 그런 사고 덕에 참여자들의 수는 자연스럽게 제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규제로 사고를 다 때려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보화 시대이니까 구글링을 잘해 정보를 잘 비교할 수 환경이 잠재적 사고를 줄이는데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암호화폐들의 경제학적 가치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요건만으로는 암호화폐가 기존 화폐보다 일반인에게 ‘열배 이상’ 좋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더 불편할 수도 있다.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나 효용이 혁신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효용이 혁신적이라는 기준이 무엇인가.

미래 기술중에 CRISPR 라는 기술이 있다. 유전공학에서 최근 나온 기술인데 DNA 를 편집하는 시간과 비용을 백배 떨어뜨려 가히 유전공학에서의 집적회로 혁명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사람의 불노장생과 함께 온갖 질병의 치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쉽게 상상이 가는 대단한 기술이다. 어쩌면 인류의 삶에 가져올 충격은 암호화폐의 일억배일 수 있다. 암호화폐의 기술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이런 기술 발전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암호화폐가 경제학의 CRISPR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된다면 구체적으로 몇배 수준의 파급력을 가질 것인가.

‘아직 기술적으로는 부족하고 파괴력은 별로 없어보일 수 있습니다만 나중에 파괴력이 대단해질 수 있으므로 그때 되면 참 많은게 증명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데 똑 부러지게 말하긴 뭐하지만 일단 사회에서 좀 잘 키워줬으면 좋겠다’는 논지는 애매모호하여 거대담론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수많은 잠재기술에 사회의 자본이 들어가야 하고 실제로도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술은 굉장한 잠재력을 과학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을 통과하고 나서야 천억원 단위의 거대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미 수백조 원 규모의 사회적 자원이 투입되어 있는 암호화폐라는 기술에 ‘아직 증명할 날이 남은 기반 기술이니 어떻게 적용이 가능할지 인내하고 함께 지켜봐달라’는 아마추어적 발언은 무성의하다. 투입된 자금의 규모가 너무나 비대하여 추정가치와의 격차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나는 황우석 교수 사태 때로 돌아가도 줄기세포 기술의 가능성을 믿어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가 기술의 잠재력에 비례하지 않게 많은 자원 (예컨대 10년 국방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투자 받는다면 일단 그 비율이 과도하다고 판단 했을 것이다. 다른 사회적 어젠다들을 모두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가치와 우선순위가 있었다는 시장의 평가가, 과연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투자자들의 가장 즐거운 업무의 시작점이고 투자자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결국 투자라는 행동은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적정한 ratio 즉 비율을 추정해내는 일이니까.

암호화폐에는 결국 수백조 원 수준의 자금이 투입된 셈이다. 그 자금 대비 현재의 잠재력의 수준은 터무니 없이 낮은 것 같다. 아무리 희망적인 그림을 그리려 해도 암호화폐 기술이 세상에 수십조 이상의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전세계 모든 중앙집권적 나쁜 거대 주체들을 다 강제로 분산해버려도 수십조의 부가가치가 만들어질지는 정녕 의문이다. 이는 VC 들과 기업가들이 하루종일 하는 고민일테니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더 들어보고 싶다. 가격이 올랐으니 그 자체로 증명됐단 얘기가 아닌, 진지한 지적 검토를 하고 싶다.

암호화폐의 실물적 가치에 대해서는 어쩌면 엄청난 수수료를 취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가장 잘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가상의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방식을 한번 인터뷰 형식으로 재현했다 쳐보자. 아마 이런 식의 대화일 것이다: 혹시 개발자 및 직원들 보상이나 월급을 암호화폐로 지급하시나요? –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요. 암호화폐는 가치가 너무 널뛰어서 정상적인 생활비로 사용하기엔 부적절합니다. 받아주는 사람도 없구요. 우리도 돈을 원하는 거지 암호화폐만 가지고 어떻게 정상적인 경제 주체가 되겠습니까. – 아니, 암호화폐의 기능들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투자 가치라도 있지 않을까요? – 에효 기업으로서 현금흐름도 있고 규제도 있고 어떻게 암호화폐로 정상적인 기업 경영을 하겠습니까. 누가 그런 기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투자 가치야 뭐 투자 참여자인 고객들이 자기들끼리 정하는 거고요, 저희는 어쨌든 이 시장이 망해도 먹고 살아야지요. 저희는 말하자면 카지노 아니겠어요. 직원들한테 카지노칩을 줄 수는 없잖아요. – 그렇다면 암호화폐로 부자가 되는 직원들도 있던데 그건 무엇인가요? – 그거야 뭐 특별한 ICO 초기에 물량을 확보할 수 있거나 펌핑할 때, 혹은 다른 거래소들이랑 차익거래할 때 손쉬운 자금이 나오니까 활용하는 거지 어디 그게 현금과 같나요. 현금이 최고죠.

라고 답하지 않을까? 아무리 코인 투기에 눈이 멀어도, 입장을 바꿔보면 현실이 또 다르게 보인다. 거래소 직원마저도 암호화폐로 월급을 받긴 싫을 것이다. ‘가격이 폭등할 때’를 제외하고는.

채굴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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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화폐 찬성파들은 화폐의 가격이 이 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임 이론에 의거해서 채굴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투명한 구조가 만들어졌다’던가 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jtbc 방송 중에도 나왔는데, ‘경제적 동기가 있어야 이 정도 계산 자원을 투입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경제적 동기는 채굴의 외주화에 고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채굴이란 그 암호화폐의 가치 중 일부를 신규 발행 (혹은 채굴)하여 전체 가치에서 일정 떼어내 (혹은 희석) 다음 장부 계산 외주팀에게 일종의 3자 배정 무상증자를 통해 비용을 정산 제공해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상증자할 지분 자체의 가격이 존재해야 하고 그래서 불가분 시가총액도 존재해야 하고 투기도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스타트업이 상법상 발행량이 제한된 스톡옵션을 발행하여 연봉 대신 주되, 기업 가치를 빠른 속도로 높여가는 것과 비슷한 장치이다. 둘다 경제적 보상을 주기 위한 가상화폐인 셈이니까.

이 채굴은 결국 중앙집권적이고 규모의 경제를 획득한 독점력 있는 거대 악당을 해체시킬 필요가 있을 때 쓸모 있다. 아마 전체적인 계산 비용은 독점력이 있는 회사가 중앙집권적으로 진행 하는 것이 회계적으로는 당연히 저렴할 것이지만, 그들의 이해관계의 상충이 사회적 비용을 유발시킨다는 점이 문제다.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해 훨씬 비싼 분산 계산이 필요한 것이고, 그 비용을 채굴 보상을 통해 보전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해관계 상충을 바로잡는 더 무서운 도깨비 방망이를 마련하는게 더 저렴할 수도 있다. 예컨대 저작권료를 중도에 빼돌린 유통업체 대표 및 임원은 징역 100년 형에 처하며, 그 회계 감사를 한 회계법인이 회계 조작을 발견하고도 용인하면 징역 100년 형에 처하며, 매년 세무조사에 준하는 감사를 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마 법문만 잘 만들어도 거대 주체가 매우 선량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역으로 그만큼 사악한 악당이라면 해체되거나 대체되기 힘들 정도의 아주 미묘한 수치만 사회에서 약탈할 수도 있다. 여튼, 극단적인 예겠지만,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해법들이 있을 수 있고 각 해법들은 고유의 비용을 가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암호화폐가 여타 해법들의 비용 대비 열배 이상 압도적으로 저렴한지 혹은 효율적인지가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이 외에 수많은 기술적 이슈와, 상대 진영에서 나온 미시적이지만 모순적인 말꼬리에 대한 논란, 가격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지만,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 근거의 기술이 사회적인 영향력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 내 전문 분야의 관점에서 정리를 해보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얘기는 모두 돌이켜보면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찬성 진영이나 반대 진영이 맞았을 것이란 얘기가 아니라, 특정 기술의 초창기에 이뤄지는 담론이라면 시간이 지나보면 결정적인 미래의 전개를 모두 놓치기 마련이다. 아마 암호화폐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분기점들 때문에 이 기술이 크게 흥할 수도 있고,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섣부른 예언은 금물이고, 더 나아가 별 의미도 없다. 다만 모든 기술이 그러한 미래를 맞이하기에, 경제를 읽는 투자자는 그 기술들의 운명에 대해 어떤 중간 결론을 내려볼만하다. 내 결론은 다른 기술들 대비 너무 모호하고, 또 그에 비해 과도하게 가치가 부풀어 있다는 것이다. 가격이 높으니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가격을 높였을 것이란 주장도 언제든 환영하지만, 투기의 세계에선 생각보다 그게 그렇지가 않다. 정신 차린 놈이 이긴다.

글이 너무 길어진 것은 아마 내 내공이 부족해서이겠지만, 글이 길어지니 글을 쓰는 고통이 커져서 다시는 이 정도 분량을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길게 쓴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까지 읽어주신 소수의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코인이라도 하나 발행해드리고 싶다. 땡큐. 메이비 넥스트 타임.

ps. 어차피 가격 상승으로 발생한 사회 현상이라면 가격이 하락하면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가격이 백분의 일이 된다면 오히려 그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저렴해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IT 버블이 꺼져도 IT 혁명은 진짜였고, 구글과 아마존은 그때 만들어진 현상이다. IT 버블과 아무런 상관 없이 IT 버블 당시의 희망사항은 전부 현실화 된 셈이다. 그런 가격 왜곡이 발생할 때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경제학적 투자자의 해부학 (긴 버전)”의 4개의 생각

  1. 저는 가상화폐가 투기대상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 주변에 흔히 이야기 나오는 정도 듣고만 있었는데, 글을 읽고 가치와 가격에 대한 막연한 인식이 좀 정리된 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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