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의 비판적 경제학 (short version)

  암호화폐 이슈는 기술적이기보다는 매우 경제학적인 이슈다. 경제학에서 주로 다루는 인센티브 문제와 화폐 경제학, 그리고 그것이 경제적 자원의 유통과 배분에 미칠 영향력 등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 포괄적으로 섞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암호화폐 기술이 세상에 미칠 영향력을 냉정하게 한번 검토해보고, 그 잠재력과 다른 기술들의 잠재력을 비교해 과연 투자하기에 적절한 가격 수준인지 보자.

그전에 암호화폐를 12살 짜리 아이에게 설명하듯 쉽게 한번 풀어보자.

암호화폐는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파일이다. 이 파일은 거래가 오고간 기록들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이는 일종의 ‘장부’인데, 혹시 기록들을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았을까 하여 아주 많은 컴퓨터에서 이 파일을 동시에 보관하고 함께 고쳐나간다. 하나의 거래 장부를 수백명이 복사하여 가지고 있다가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서로 서로 확인하면서 모두 똑같이 장부를 기록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되면 누군가 장부를 조작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대신에, 이렇게 동시 다발적으로 계산하는데는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수백명 수천명이 나눠서 계산한다고 해도 어쨌든 몇백 몇천대의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 계산에 동참해준 사람들에게 암호화폐 일부를 보상으로 준다. 이를 광산에서 금을 캐는 것과 비슷하다 하여 ‘채굴’이라 부른다. 채굴을 하면 새로운 암호화폐가 조금씩 만들어지는데, 채굴된 신규 화폐를 포함하여도 전체 암호화폐의 갯수는 매우 제한적이다.

발행량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장점이라는 얘기도 있다. 채굴에 대한 비용이 발생하니 채굴이 없는 암호화폐를 만든 경우도 있고, 추가 발행량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암호화폐의 종류가 천가지가 넘으니 온갖 경우들이 다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암호화폐는 이런 분산된 장부 형태를 추구하여 만들어진 기술이고, 해킹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며, 자본집약적인 거대 주체가 투자해야할 인프라를 다수의 민중이 대체할 수 있다는데 가장 큰 함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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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시장 가격 폭등이 올 때 꼭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들이 있다. 우리의 모든 사고구조가 때로는 이러한 ‘가격상승’이라는 팩트 안에 갇혀서 이뤄질 때가 있다. 이런 점들이 우리의 관점에 대단한 혼동을 주고 감정적 주장을 난무하게 만들기에 거리를 두고 객채화 시킬 필요가 조금 있다.

‘가치가 없기 때문에 가격은 못 오른다’거나 ‘가치가 높기 때문에 가격이 무조건 오를 것이다’ 거나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가치도 높았던 것이 증명됐다’거나 ‘가격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나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등의 생각은 모두 가치와 가격에 대한 엄청난 감정적 집착에서 오는 혼용으로, 특히 그 두가지의 상관관계를 짚어내야만 하는 투자자 입장에선 큰 의미가 없다. 가격은 올랐으니 가격에 대한 진실은 ‘올랐다’는 것이 맞고, 효용이 있었는지 혹은 미래에 효용이 있을지에 대한 지성적 논쟁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치와 가격이 따로 노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어 우쭐해 있는 이유는 가격이 올라서일 뿐이고, 가치를 제대로 이해해서 부자가 된 것인지는 다소 별개의 문제다.

가격 폭등 시의 집단 최면

작년 초 경부터 우리 회사에 ICO 를 한번 해보자는 사람들이 몇 찾아왔다. 우리 팀원 중에도 ICO 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코인의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가 되어볼까 하는 검토의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톤이 IT 버블 때의 IPO 광풍 시절과 너무 비슷했다. “지금 가격이 폭등하고 있어서 눈먼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으니 아무거나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ICO 해버리면 지금 떼돈 벌 수 있다, 돈 챙기고 나서 생각해라, 지금 사람들 미쳐서 아무도 논리를 보지 않는다 일단 질러라. 이런 기회 다시는 없다”가 일관적인 요점이었고 일부 실제 워딩이다. 한마디로 인생일대의 기회에 한판 작전을 벌여보자는 것이다. 다른 ICO 회사들의 내용을 읽어봐도 대다수 터무니 없는 수준의 환타지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개 성공적이었다.

성공적이라고 해서 건전하거나 합당한 것은 전혀 아니다. 건전하지 않다면 지속 가능하기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성공적일 수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둘은 다른 세계의 것들이다. 어쨌건 생태계가 구성되었다는 것은 건전하고 합리적이어서라기 보다 ‘돈이 몰린다’는 이유가 더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최소한 상당히 독립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돈이 지속적으로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하루 아침에 가격이 상승하는 ‘관성’이 주도한 것이다.

요는 결국 가격 상승에 의한 사회적 현상과, 기술의 경제성을 구별해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확실히 하자면, 가격이 빠졌다고 그 기반 기술이 허구이지도 않고, 가격이 올랐다고 그 기반 기술이 위대한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별 관계 없다고까지 할 수 있다. 잘나가는 것은 잘나가는 것의 아우라가 있어서 단언컨대 모든 금융사기는 아우라에 홀린 자들이 충분한 사전 분석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법이다.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해서 증빙을 하지 않으면, 샐러리맨 신화이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의 도덕적 흠결을 검토해볼 필요조차 없다는 주장이 되어 버린다. 벤츠를 타며 큰 저택에 사는 소위 ‘성공한’ 사람에게는 신뢰가 가지만, 따지고 보면 남보다 더 신뢰해야할 이유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얘기만 계속 하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이견이 있으면 다음 얘기들은 다 서로의 위치 차이만 확인하는 부질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잠재적 가치

일반인에게 중요한 것은 암호화폐 기술이 사회에 궁극적인 변화를 일으킬 잠재력 여부와 그 폭이다. 물론 암호화폐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어쩌면 현재의 불편들을 두배 세배 편리하게 변화시킬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묻고 있는 것은 아주 협소한 질문인데, 과연 벤처 투자자들이 흔히 말하는 ‘열배 이상의 변화를 일으킬 기술’인지만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 이하의 잠재력을 가진 기술에 전국민이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발명가들 사이에 추앙 받는 위대한 기술이 이 외에도 얼마나 많단 말인가.

  블록체인을 활용한 암호화폐 기술의 가장 큰 존재이유는 ‘하나의 거대 주체가 다수 군중과 거래할 때 군중을 속이기 쉬운 환경이라면, 그 주체가 투자하고 관리해야할 거대 인프라와 비용을 다수 군중에게 간단하게 분산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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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업에는 세가지 소재가 필요하다. 거대 주체, 군중이 이미 경험하고 있는 큰 불이익, 해체시킬 자본집약적 중앙집권형 인프라. 암호화폐는 거대 주체가 군중을 속이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곳에서 그를 대체할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예컨대 저작권은 충분히 이에 해당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음원 유통 회사라는 거대 주체가 장부를 조작하면 공급자들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른다.

반면 길거리에 사고가 있는지 없는지를 실시간으로 판단해서 자율주행 차량이 인류 공동의 장부에 저장하여 주위와 나누는 일은, 거대 주체가 군중을 속일 동기가 전혀 없는 영역이다. 블록체인화 시키지 않고도 아무 대기업끼리 경쟁적으로 투자해서 실시하면 참여자 모두가 행복해질 일이다. 실제로 세상의 수많은 일들이 거대주체의 자기탐욕적인 기업가 정신과 시장경쟁 및 반독점법이나 소비자들의 감시 등에 의해 아름답게 잘 돌아가고 있다. 모든 비지니스를 강제 해체하여 익명의 민간에게 외주 용역처럼 흩뿌릴 필요가 없다. 나도 아나키스트에 가깝지만 자본주의의 순기능을 불필요하게 전부 삭제할 필요는 없다. 순기능의 중심에는 거대 주체로 자랄 수 있는 기업환경이 있다.

화폐를 대체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다면 화폐는 어떠한가? 중앙 정부라는 거대 주체가 장부를 저장하고 관리함에 있어서 슬쩍 화폐를 명분 없이 발행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군중을 속일 수 있는가? 물론 실제로 속이는 것에 준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다. 문제는, 그 영향과 폐해가 일반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과 불러일으키는 거부감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안 학파라 불리는 소수의 왕따 경제학도들이 있는데, 정부 주도하의 통화량 증대에 큰 불만과 우려를 갖고 이를 주구장창 경고하고 있다. 이는 미국 자유주의자로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Ron Paul 을 포함하여 수많은 오스트리안 경제학파들이 멸시를 무릅쓰고 주창해온 주제이다. 오스트리안 학파는 한마디로 정부가 경기변동을 조정하기 위해 화폐를 가지고 노는 것을 전면 비판하는 학파다. 모든 조작은 더 큰 버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역설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이기도 하다. 처음 암호화폐를 보았을 때 오스트리안 학파의 이념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점에서 반가웠고 흥분됐다.

오스트리안 학파를 소개한 것은 그 이론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군중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조차 없어왔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슬픈 현실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암호화폐 덕에 그 핵심 주장에 관심도가 조금이라도 올라갔기를 진심 고대해보지만). 세상은 정부가 유동성 확충이랍시고 돈을 찍어내 맘껏 쓰시라고 할 때 정색하고 대환호했다. 거대 주체 중에 중앙정부들은 어쨌든 생각만큼 미움 받고 있지 않은 주체들이다. 선거와 언론 등을 통해 극렬하게 견제 받고 있다는 점도 그에 한몫한다.

그런 의미에서 화폐의 탈중앙화는 세계민중의 강렬한 니즈라고 말하긴 매우 어려웁다. 암호화폐에서 그 탈중앙화의 기치가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다고 얘기하진 말아주길 바란다. 그저 신나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차용된 소재라고 보는게 더 맞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화폐는 찍어내는 것 외에도 통화승수를 조정하는 것과 금리를 조정하거나 국채를 매입하는 등의 조절장치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발행량을 통제하는 것은 마치 엔진 속에서 고장이 잦은 체인 하나만 적출해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고장을 줄인다는 보장을 해주기엔 다른 부품들의 변수가 너무 많다. 암호화폐 기술을 어필할 때 이런 경제학적 요인들을 마음대로 덧대서 어설픈 아마추어 경제학자 흉내를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무시한채 어줍잖은 개념 하나를 들이밀며 성배를 찾았노라 하는 모습은 경제학자들의 전매특허이다. 굳이 배울 필요 없다.

암호화폐가 진짜 화폐냐 아니냐는 담론도 있다. 암호화폐는 화폐가 맞다. 싸이월드 도토리도 화폐일 수 있고, 여러 금융상품도 모두 화폐가 될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화폐를 만들어도 일반인에겐 기축통화만 잘 자리잡고 있다면 문화상품권이나 가상 포인트처럼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또 이런 개념이 전혀 새롭지도 않다. 화폐라고 다 대단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짐바브웨 화폐가 안정성이 전혀 없어도 화폐는 화폐인 법이다.

그 용도가 자유로운 전자 화폐들의 발전은 매우 환영한다. 블록 체인이나 탈중앙화와 관계가 없더라도, 형태가 자유로운 구조화증권 등의 번성과 규제 완화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많으면 많을 수록 좋고 다양하면 다양할 수록 좋고 때론 매우 복잡한 형태들도 좋다. 맞춤화된 신탁의 역할을 하거나 에스크로의 역할을 하는 전자화폐들이 번성하면 좋겠다. 물론 잦은 사고가 나겠지만, 혁신에 대한 비용으로서 편익분석을 해보면 좋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요건만으로는 암호화폐가 기존 화폐보다 일반인에게 ‘열배 이상’ 좋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더 불편할 수도 있다.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나 효용이 혁신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효용이 혁신적이라는 기준이 무엇인가.

미래 기술중에 CRISPR 라는 기술이 있다. 유전공학에서 최근 나온 기술인데 DNA 를 편집하는 시간과 비용을 백배 떨어뜨려 가히 유전공학에서의 집적회로 혁명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사람의 불노장생과 함께 온갖 질병의 치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쉽게 상상이 가는 대단한 기술이다. 어쩌면 인류의 삶에 가져올 충격은 암호화폐의 일억배일 수 있다. 암호화폐의 기술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이런 기술 발전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암호화폐가 경제학의 CRISPR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된다면 구체적으로 몇배 수준의 파급력을 가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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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기술적으로는 부족하고 파괴력은 별로 없어보일 수 있습니다만 나중에 파괴력이 대단해질 수 있으므로 그때 되면 참 많은게 증명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데 똑 부러지게 말하긴 뭐하지만 일단 사회에서 좀 잘 키워줬으면 좋겠다’는 논지는 애매모호하여 거대담론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수많은 잠재기술에 사회의 자본이 들어가야 하고 실제로도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술은 굉장한 잠재력을 과학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을 통과하고 나서야 천억원 단위의 거대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미 수백조 원 규모의 사회적 자원이 투입되어 있는 암호화폐라는 기술에 ‘아직 증명할 날이 남은 기반 기술이니 어떻게 적용이 가능할지 인내하고 함께 지켜봐달라’는 아마추어적 발언은 무성의하다. 투자된 자금 대비 현재 평가할 수 있는 잠재력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희망적인 그림을 그리려 해도 암호화폐 기술이 세상이 수십조 이상의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전세계 모든 중앙집권적 나쁜 거대 주체들을 다 강제로 분산해버려도 수십조의 부가가치가 만들어질지는 정녕 의문이다. 결국 투입된 자금의 규모가 너무나 비대하여 추정가치와의 격차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나는 황우석 교수 사태 때로 돌아가도 줄기세포 기술의 가능성을 믿어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가 기술의 잠재력에 비례하지 않게 많은 자원 (예컨대 10년 국방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투자 받는다면 일단 그 비율이 과도하다고 판단 했을 것이다. 다른 사회적 어젠다들을 모두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가치와 우선순위가 있었다는 시장의 평가가, 과연 옳은지를 판단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투자자들의 가장 즐거운 업무의 시작점이고 투자자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결국 투자라는 행동은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적정한 ratio 즉 비율을 추정해내는 일이니까.

암호화폐의 실물적 가치에 대해서는 어쩌면 엄청난 수수료를 암호화폐로 취하는 거래소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상의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방식을 한번 인터뷰 형식으로 재현했다 쳐보자. 아마 이런 식의 대화일 것이다: 혹시 개발자 및 직원들 보상이나 월급을 암호화폐로 지급하시나요? –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요. 암호화폐는 가치가 너무 널뛰어서 정상적인 생활비로 사용하기엔 부적절합니다. 받아주는 사람도 없구요. 우리도 돈을 원하는 거지 암호화폐만 가지고 어떻게 정상적인 경제 주체가 되겠습니까. – 아니, 암호화폐의 기능들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투자 가치라도 있지 않을까요? – 에효 기업으로서 현금흐름도 있고 규제도 있고 어떻게 암호화폐로 정상적인 기업 경영을 하겠습니까. 누가 그런 기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습니까. 투자 가치야 뭐 투자 참여자인 고객들이 자기들끼리 정하는 거고요, 저희는 어쨌든 이 시장이 망해도 먹고 살아야지요. 저희는 말하자면 카지노 아니겠어요. 직원들한테 카지노칩을 줄 수는 없잖아요. – 그렇다면 암호화폐로 부자가 되는 직원들도 있던데 그건 무엇인가요? – 그거야 뭐 특별한 ICO 초기에 물량을 확보할 수 있거나 펌핑할 때, 혹은 다른 거래소들이랑 차익거래할 때 손쉬운 자금이 나오니까 활용하는 거지 어디 그게 현금과 같나요. 현금이 최고죠.

라고 답하지 않을까? 아무리 코인 투기에 눈이 멀어도, 입장을 바꿔보면 현실이 또 다르게 보인다. 거래소 직원마저도 암호화폐로 월급을 받긴 싫을 것이다. ‘가격이 폭등할 때’를 제외하고는.

채굴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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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화폐 찬성파들은 화폐의 가격이 이 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임 이론에 의거해서 채굴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투명한 구조가 만들어졌다’던가 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jtbc 방송 중에도 나왔는데, ‘경제적 동기가 있어야 이 정도 계산 자원을 투입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채굴이라는 개념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 글 초반에 설명했지만, 채굴은 결국 장부 정리를 다수가 동시에 함께 계산해주는 행위를 말하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조금씩 추가 발행하여 주는 것이다.

결국 채굴은 계산을 외주화하는 것이고, 그 외주비용을 ‘경제적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채굴이란 그 암호화폐의 가치 중 일부를 신규 발행 (혹은 채굴)하여 전체 가치에서 일정 떼어내 (혹은 희석) 다음 장부 계산 외주팀에게 일종의 3자 배정 무상증자를 통해 비용을 정산 제공해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상증자할 지분 자체의 가격이 존재해야 하고 그래서 불가분 시가총액도 존재해야 하고 투기도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스타트업이 상법상 발행량이 제한된 스톡옵션을 발행하여 연봉 대신 주되, 기업 가치를 빠른 속도로 높여가는 것과 비슷한 장치이다. 둘다 경제적 보상을 주기 위한 가상화폐인 셈이니까.

이 채굴은 결국 중앙집권적이고 규모의 경제를 획득한 독점력 있는 거대 악당을 해체시킬 필요가 있을 때 쓸모 있다. 아마 전체적인 계산 비용은 독점력이 있는 회사가 중앙집권적으로 진행 하는 것이 회계적으로는 당연히 저렴할 것이지만, 그들의 이해관계의 상충이 사회적 비용을 유발시킨다는 점이 문제다.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해 훨씬 비싼 분산 계산이 필요한 것이고, 그 비용을 채굴 보상을 통해 보전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해관계 상충을 바로잡는 더 무서운 도깨비 방망이를 마련하는게 더 저렴할 수도 있다. 예컨대 저작권료를 중도에 빼돌린 유통업체 대표 및 임원은 징역 100년 형에 처하며, 그 회계 감사를 한 회계법인이 회계 조작을 발견하고도 용인하면 징역 100년 형에 처하며, 매년 세무조사에 준하는 감사를 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마 법문만 잘 만들어도 거대 주체가 매우 선량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역으로 그만큼 사악한 악당이라면 해체되거나 대체되기 힘들 정도의 아주 미묘한 수치만 사회에서 약탈할 수도 있다. 여튼, 극단적인 예겠지만,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해법들이 있을 수 있고 각 해법들은 고유의 비용을 가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암호화폐가 여타 해법들의 비용 대비 열배 이상 압도적으로 저렴한지 혹은 효율적인지가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기술이 신기하다고 해서 가장 좋은 해법일 수는 없다.

이 외에 수많은 기술적 이슈와, 상대 진영에서 나온 미시적이지만 모순적인 말꼬리에 대한 논란, 가격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지만,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 근거의 기술이 사회적인 영향력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 내 전문 분야의 관점에서 정리를 해보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얘기는 모두 돌이켜보면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찬성 진영이나 반대 진영이 맞았을 것이란 얘기가 아니라, 특정 기술의 초창기에 이뤄지는 담론은 시간이 지나보면 결정적인 미래의 전개를 모두 놓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아마 암호화폐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분기점들 때문에 이 기술이 크게 흥할 수도 있고,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섣부른 예언은 금물이고, 더 나아가 별 의미도 없다. 다만 모든 기술이 그러한 미래를 맞이하기에, 경제를 읽는 투자자는 그 기술들의 운명에 대해 어떤 중간 결론을 내려볼만하다. 내 결론은 이 기술의 효용성이 너무 모호하여 와닿지 않고, 와닿지 않는 것들은 아주 극소수의 예외를 빼면 대부분 핵심 가치가 설득력이 없어서이고, 또 그런 정황에 비해 가격은 과도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격이 높으니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가격을 높였을 것이란 주장도 언제든 환영하지만, 투기의 세계에선 생각보다 그게 그렇지가 않다. 정신 차린 놈이 이긴다.

길게 쓴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까지 읽어주신 소수의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코인이라도 하나 발행해드리고 싶다. 땡큐. 메이비 넥스트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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