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사람들이 주인의식이 없는 건 주인인체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는 아닐까

요새 사람들이 회사일을 자기일처럼 생각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 윗사람들이 너무 회사일을 자기 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는 회사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싶었는데, 선배들이 ‘우리는 용병일 뿐이다, 이딴 회사 망하던가 말던가 내 알 바 아니고 기회될 때마다 딴 데로 옮기는 것이 전문직의 덕목’이라고 배웠다. 나도 결국 회사를 네 군데나 다니고 창업하였으니, 선배들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행동하면서도 결국 대부분의 경우의 수를 다 섭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경영자로서 우리 팀원들이 회사일을 남일처럼 생각한다면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실제로 남일인건 둘째치고… ‘주인의식’이라는 자발적 초인성을 갖춘 인력이 부족할 수록 기업으로서 조직으로서 팀으로서의 위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좋건 싫건 자발적 초인성은 ‘주인의식’에서 밖에 나오지 않고, 그 자발적 초인성을 갖춘 인재와 갖추지 않은 인재의 생산성은 어마어마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 어쩔 수 없다. 일주일에 백시간 고민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40시간 고민하는 사람보다 적게는 2배를, 많게는 수백배를 해낸다. 자면서도 회사가 처한 환경 속에서 해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수면 중에 무의식이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고 알고리즘을 짜서 더 정교하고 고차원적인 해법을 들고 나오는 이런 열정과 에너지의 누적을 이길 것은 인간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그런 인재의 중요성을 모를 경영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의식이 부족한 세태는 비단 요새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마도 수천년전부터 내 일이 아닌 것을 내 일처럼 느끼는 사람은 소수였을 것이고, 그들이 소중하고 귀한 인력이었다는 것은 차치하고 결국 그런 것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도 아닐 것이다. 어느 무책임한 회사원이라도 자기 손으로 운명을 오롯이 개척해야 하는 상황에선 흥이 돋고 집중력이 껑충 뛰기 마련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개인사업자나 창업자가 직장인보다 훨씬 진화적으로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행복하다. 우리가 수만년을 개인사업자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에게 즉각적인 보상이 보이지 않는 일, 남에게만 즉각적인 보상이 허용되는 일을 내 일처럼 하기는 여간해선 쉽지 않다. 나에게 물질 혹은 비물질적인 지분이 없다고 느낀다면 누구도 지분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요새 사람들이 유독 더 회사일을 남일처럼 생각한다고 하는 것일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그러기 더 쉬워진 환경인 것은 확실하다. 경제 구조의 변화로 인해 더이상 자본집약적인 대기업의 건물 조직 네트워크 브랜드의 컴비네이션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란걸 사람들이 눈치채서, 젊어서 대박나는 사람이 주위에 워낙 많아서, 회사원 외에도 경제활동의 기회가 많아서, 젊어서부터 너무 경쟁사회에 지쳐서, 기업환경 대비 노동 유연성이 부족하여 그것을 악용하기 위해, 근로소득으로 팔자 바꾸기 상대적으로 어려워져서, 성장환경이 유복해서 가난 탈출의 욕망이 덜해서, 엘리트 직장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서, 이직이 쉬워져서, 해외로의 이민이 쉬워지고 삶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다른 기업문화와 비교가 쉬워져서, 놀거리가 많아져서, 주인의식 있는 직장인들의 좌절을 수십년간 목격한 학습효과 때문에, 전문성에 대한 열망이 많아져서, 르네상스적이고 T자 혹은 ㅠ 자 형 인재의 필요성이 부각돼서 다른 학습을 하느라, 조직 문화가 너무 과거지향적이어서, 정작 ‘윗사람’등의 롤모델이 사회적으로 뒤처져 있어서 등등 이유는 많을 것이며 또한 늘 그렇듯 복합적일 것이다. 한마디로 타인의 지분에 대한 주인의식의 수요가 현격히 떨어졌다.

너무 거시적인 환경의 변화라 대응할 여지가 없어 보일 수 있다. 스타트업을 하는 수 밖에 없나? 하지만 미시적인 문제도 있다. 바로 예전에 비해 ‘윗사람’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윗사람들이 내 아버지보다 도시적이고 부유하고 전문적이던 시절에서 이제 대개 내 아버지만 못한 사회가 된 것은, 고도성장기가 끝났기 때문이지만, 그만큼 윗사람들도 열정과 주인의식이 부족한 시대가 되었다. 윗사람들이 자기 몸 건사하기가 상대적으로 매우 어려워진 면도 있다. 더군다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의리, 맹목적 믿음도 굉장히 큰 폭으로 흔들리고 있다. 한마디로 불안 불안한 윗사람들의 모습이 아랫사람의 열정 부족의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윗사람들은 ‘나 때는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었고 지금도 넘쳐난다구!’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 조금더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리더쉽’의 일반적인 문제다. 회사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회사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을 ‘자기의 이해관계’ 선상에서만 생각하는 리더에게 동참할 사람은 별로 없다. 모든 리더쉽은 공동의 목표를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리더 개인의 이해관계는 남들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부딪힐 가능성도 적지 않다. ‘내가 승진하기 위해서’ 이뤄지는 목표가 더 거대한 목표의식을 뛰어넘는 분위기라면, 이런 업무들은 팀원 개인을 착취하는 형태로 밖에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모든 리더쉽에 대해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예컨대 육아의 리더쉽이 있는 애기 부모가 배우자에게 ‘이렇게 함께 육아에 참여하면 아이들도 즐겁고 당신도 즐겁고 행복한 가정이 될 거야’라는 큰 틀의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나 힘들어 죽겠는데 불공평하니까 너도 고생해봐’라고 이야기한다면 리더쉽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리더쉽을 가지고 있는 배우자가 ‘열심히 일해서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보자’라는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내가 돈 번다고 얼마나 힘든지 알아?’ 라며 자신의 이야기로 팀의 성취를 국한시킨다면 주인의식에 대한 지분이 생기기 쉽지 않다. 엄마가 아이에게 ‘니가 공부 못해서 내가 얼마나 마음 고생인지 알아?’ 라는 말도 마찬가지고, 중대장이나 팀장이 ‘너희 때문에 내가 너무 고생이다 나도 승진 좀 하자’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 팀원의 이해관계가 배려 받지 못하고 오직 지배자의 편의를 위해 만사가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주인의식이 생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남의 게임에 대한 강요인 셈이다. 본격적으로 팀장과 팀원의 대결구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함께 성과를 전부 나눌 수 없다면, 함께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공감대라도 만들어져한다. 주인의식이 생길만한 목표의식의 주인으로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다소 엘리트주의적이라 할 수 있지만, 조직의 모든 문제는 윗사람 책임이고 관리자의 특정한 행동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요새 사람들이 주인의식이 없는 것은 중간관리자가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이고 그럴싸한 주인의식을 아랫사람에게 공유해주지 않는 리더쉽 부족의 문제다. 주인인 척만 했지 진짜 고민은 없었던 거시다. 궁금하다면 대표이사나 오너에게 물어보면 된다. ‘저희는 주인의식이 있는 것 같나요?’ 이런 고민을 안하는 중간관리자야 말로 자기가 주인 아니라고 회사내의 권위를 사적으로 악용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목적의식과 비전에 굶주려 있는지 모른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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