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오 500명 돌파라니

어제부로 불리오 유료 이용자가 500명을 돌파했습니다.
500명이라 생각해보면 서비스 치고 많은 숫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유료화된지 딱 100일 됐으니 그야말로 시작이지요. 그러나, 100만명의 고객보다 100명의 매니아 팬층을 얻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서비스를 매우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점에서 설레임을 느낍니다.

서비스를 만든 회사 대표의 이야기니 당연히 과장과 자기합리화가 섞여 있을 것입니다만, 저는 이 숫자가 꽤 의미 있는 숫자라고 자평해보고 싶습니다.

온라인을 통한 투자의 자문화, 불과 1년 전만 해도 알만한 사람은 전부 불가능할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은 눈과 눈을 바라보며 다양한 교감이 생겨야 신뢰가 쌓이기 때문에, 온라인으로는 신뢰의 구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주 반론이었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눈을 마주보지 않아도 제가 깊게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조지 소로스나 짐 로저스의 이야기를 들으면 주위의 그 누가 얘기하는 것보다 교감을 하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본 적이 없음에도 신뢰가 갔죠. 온라인 시대에 반드시 악수를 하며 체온을 나눠야만 교감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로봇이라고 주장하며 로봇 아이콘을 그려놓고 로봇이 만물박사인양 행세하는 로보어드바이저를 만들어볼까 어찌 생각 안해봤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은 사람의 눈을 보고 판단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가치관을 비교하며, 교집합을 생각해보고 판단합니다. 그런 것이야 말로 우리가 수천번 수만번의 훈련을 통해 평생 배워온 가장 안전한 방법이니깐요. 그러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고 두고 생각해봐도 너무나 맞는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이 사람이 실제로 만나는 것을 반드시 전제해야 하느냐는 부분이 의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희 서비스의 형태가 대단히 혁신적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로서는 어쩌면 잡지에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들어있는 내용이 대단히 명료한 행동지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차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주식 리딩 방송과는 무엇이 다르냐 물어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또한 비슷합니다. 다만 정확한 수익률을 철저히 밝히고 더 다양한 채널로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차이랄까요. 어쨌든 주식 리딩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저희처럼 공개적이긴 힘듭니다. 그렇다면 맞춤화는 안된 것 아니냐 할 수 있습니다. 네, 아직 맞춤화는 조금 멀었습니다. 인간 생애의 다양한 변수를 어떻게 맞춰줄지 아직 뾰족한 룰을 못 만들고 있고, 그것보다는 규격화된 컨텐츠로도 당장은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 만원.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어젯밤 꿈에 엘런 머스크가 나와서, 좋은 상품은 초기에는 부자들에게 비싸게 팔아야 그 다음 연구개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해준 것 같습니다. 내가 뭐라고 이런 실험을 최저가에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실제 저희 500명의 고객 중 대다수는 가격이 훨씬 비싸도 이것을 사용하실 분들입니다. 월 만원 이상으로 간절하게 솔루션을 찾고 계시던 분들입니다. 가격 정책의 실패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기엔 비싸게 받다가 나중에 저렴하게 대중화할 걸 하는 생각도 아예 안 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우수한 서비스는 가격을 높이기가 아주 쉽습니다. 가격을 낮추기는 어려운 일이죠. 가격의 혁명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연 단위의 회비를 한번에 내실 때는 아주 부담 없는 가격만도 아니리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서비스를 사용하시는 500명의 고객이 전원 다 지불하신 비용보다 이미 훨씬 더 많은 수익을 내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잘했다기보단, 상황이 좋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 좋은 대안을 하나라도 제안할 수 있었다는게 저희의 자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분들이 저희 서비스를 알리고 다니시기는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금융 서비스의 특성상, 남에게 자랑하고 추천할 정도로 신뢰가 쌓이기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그러나 어쨌든 시간은 저희 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뢰가 쌓여감에 따라, 조금씩 주위분들에게 더 추천해줄 수 있는 기회들이 오고 있겠죠?

언젠가는 회원이 5만명, 50만명이 되어 있을 날도 올 겁니다. 그렇지만 벌써 500명의 이름 모를 낯 모를 분들께서 불리오를 한달에 한번 기다리며 설레임을 느끼고 꿈을 꾸실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전 항상 고객이 매우 적은 일을 해왔습니다. 그 분들이 많은 돈을 지불했는지는 모르지만, 저로 인해 설레이거나 꿈을 꾸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고객들을 확보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런 가설을, 현실로 접하게 되니 감개 무량합니다.

감사합니다~!!

트레이딩 룸을 마지막으로 회고해본다

“착오매매 사고도 자주 나타난다. 소위 ‘한맥 사태’가 가장 유명했지만, KTB 증권도 알고리즘의 어처구니없는 오류로 100억대 손실이 난 적이 있었다. 비슷한 건수는 작고 큰 차이일 뿐 많이 있었다. 다만, KTB 증권에서 문제의 사고가 터진 2013년 6월 25일 날 나는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어제처럼 생각이 난다. 해괴한 사건이었다.

나는 당시 새로 적응한 매매 스타일로 특히 그 날 역대 최대 손익을 벌고 있었다. 아침부터 느리게 움직이던 하락 추세에 편승해서 풋옵션을 아주 많이 매수하고 있었고 시장은 약속된 패턴으로 하락하여 옵션들이 들썩이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트레이딩룸에서 매매를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오후에 엄청난 주문사고가 선물 시장에서 나타나더니 본부가 술렁거렸다. 주문사고의 규모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선배들이 서로 부르고 뛰어다니고 난리도 아니었다. 매매에 방해될까 봐 나한텐 정확히 설명해주진 않았는데, 우리 팀에 갓 전입해온 분이 연루된 악성 사고였다. 심지어 그분은 당일 출근도 안 한 상태. 금요일 날은 나한테 ‘천 과장의 매매를 보고 있으니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매매 기법을 완전히 바꿔보고자 한다.’라는 불길한 소리를 남기고 휴가를 낸 상태였다. 어떻게 휴가를 낸 분이 이런 사고에 엮여 있는가, 머릿속에 온갖 께름칙한 생각들이 스쳐 갔다. 그 직전 2년여를 우리 팀장님과 우리 팀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인생을 전부 쏟아부은 터였다. 당일 매매를 정리하고 축하받을 새도 없이, 상황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한 영역에서 발생했는지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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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딩 룸을 회고해본다 1편의 마지막 내용. 개발자가 아닌 사람은 몇만줄의 프로그래밍에서 단 하나의 부호를 잘못 썼을 때 얼마나 큰 규모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돈이 움직이는 곳에서는, 한 줄의 잘못된 코드가 어떤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 있는지 일반적인 감각으론 받아들이기 힘들다. 인공지능의 예측 불가능성보다, 사악한 사람의 의지보다, 버그가 더 무섭다. 그런 의미에서 그 버그를 확인할 길이 없는 회사의 시스템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자.

상대 호가라는 것이 있다. 호가는 ‘가격을 부르다’는 뜻이다. 시장에서 미나리를 파는 아주머니가 ‘한단에 2천원이요!’를 외치면 그것은 매도호가이다. 내가 가서 ‘아주머니 1800원에는 안 되나요?’라고 외치면 나는 매수호가를 부른 것이다. 둘 중 하나의 가격에 거래가 성사가 안 된다면, 서로 상대 호가를 물끄러미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2000/1800에 호가가 형성되어 있다고 세련되게 표현해보자.

2,000원에 팔려고 내놓은 물량이 50단이 있으면 ‘호가잔량’이 50인 셈이다. 내가 50단을 사야 하는 상황이면 한 번에 다 살 수 있는 호가 잔량이 있는 셈이고, 내가 100단을 사야 한다면 여기서 50단을 싹 쓸어버리고 다른 데 가서 다시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어쩌면 소문이 나서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 물량이 없다면, 내가 2,000원에 50단을 사고 싶다는 이야기가 시장에 나돌며 매수호가의 잔량이 50이 쌓이는 셈이다. 어쩌면 50단이 팔리자마자 아주머니는 어디선가 100단을 더 꺼내와서 나한테 50단을 더 팔아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되면 다시 매도호가 잔량이 50개가 쌓여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림 – 가운데 수평선 위아래의 267.75 / 267.70 이 각자 매도호가, 매수호가이며, 호가에서 각기 왼쪽 오른쪽 첫번째 숫자인 101과 77이 매도잔량 및 매수잔량. 건수는 해당 잔량이 몇개의 개별적 주문으로 이뤄져 있는지를 보는 것으로, 잔량이 100인데 건수가 100이면 예컨대 1계약 짜리 주문이 100번이 나와있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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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호가가 형성되는 구조를 호가 창을 통해 한 번이라도 봤을 것이다. 책처럼 겹겹이 쌓여서 가격(호가)과 물량이 나타나는 그 창 말이다. 단어가 어려워서 그렇지 별 얘기 아니다. 어려운 단어들이 난무하는 김에 더 어렵게 표현해보면 이런 것을 시장의 미시구조라 한다. 장터에서 가격이 들쑥날쑥하는 메카니즘과 비슷하다. 아이, 요새 미나리 쓸어가는 사람이 있어서 가격을 올렸어요~ 라는 표현 안에 이런 미시구조가 듬뿍 담겨 있는 것이다.

보통 트레이더들은 선물 (futures) 거래와 호가를 보며 시장의 분위기를 살핀다. KOSPI200 을 상징하는 이 선물이라는 상품은, (280pt인 지금 기준으로) 국내 대형주 200종목의 지수인 KOSPI200 주식 1.4억 원어치를 비중대로 들고 있는 것과 거의 똑같다. 다만 훨씬 적은 돈으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와, 매도부터 할 수 있다는 장점 등이 있다. 그러니 선물 100계약(주식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이면 140억 원어치 KOSPI200 주식을 들고 있는 것과 손익이 거의 같이 움직인다.

당시에도 많은 알고리즘이 시장에서 돌아가는 중이었다. 0.001초를 millisecond, 즉 천분의 일초라고 하는데, 선물시장의 체결과 호가의 움직임은 이런 천분의 일초보다 빠른 속도로 끝없이 움직인다. 수많은 주체가 이 선물시장에서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고 호가를 넣거나 빼고 체결을 하고 청산을 하며 눈치를 보고 있으니,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시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주식 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살펴보는 방법으론 매우 효율적인 상품인 셈이다. 이때는 한 호가에 적게는 50계약, 많게는 400계약 정도가 ‘호가잔량’으로 쌓이던 시절이다. 그러니 약 4~500억 원까지는 시장을 놀래키지 않게 한 클릭만으로도 체결이 가능했다. 이러니 KOSPI200 선물 시장이 세계 지수선물 시장 중에 최상위의 거래량을 자랑했던 것이다.

이날 사고는 이 호가 잔량에서 우선 발생했다. 선물의 매수호가 잔량, 즉 미나리 1,800원에 50봉지 사겠다는 실시간 정보가 갑자기 기괴한 숫자를 찍기 시작했다. 50봉지가 100봉지 500봉지 1000봉지 5000봉지 이렇게 올라가는 것이었다. 선물 기준으로 다시 말해보자. 2013년 6월 25일 오후 2시 반, 주식 동시호가는 20분 남아있었고 선물 동시호가는 30분쯤 남아있어 거의 시장이 끝나가고 있는 시점. 시장은 아침에 비틀대더니 하루종일 추세적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었고, 먼젓번 글에 밝힌 것처럼 나에게는 이런 움직임은 모처럼 나온 ‘약속된 패턴’이었기에 개인적으로는 역대 최대의 베팅으로 역대 최대의 수익을 보고 있었다. 하락의 끝자락이 다 진행되기 전에, 268.20이라는 매수호가에 약 200계약 남짓하던 잔량이 순식간에 올라가서 1만, 2만, 3만, 4만…. 10만 넘게 찍히는 것이었다. 단순계산해도 10만 계약은 14조 원어치의 주문이다. 명백한 주문실수였다. 게다가 한 증권사에서 9999계약 이상을 보유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 주체임이 확실했으므로 시스템 오류가 동반된 엄청난 주문실수였다. 게다가 주문은 초당 몇천 계약씩 꾸준히 누적되어 쌓이고 있었다.

주문사고를 낸 사람이 주문을 취소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주문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주문 취소 시스템마저 붕괴된 무척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만약 매도호가에서 사고가 났다면, 추세하락에 빌붙은 추세추종형 주문이나 손절 사고가 났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나 매수 즉 시장상승을 노린 주문이 발생한 점은 그냥 단순 오류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트레이더가 아닌 누군가의, 혹은 기계적 실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누군가의 실수는 누군가에겐 일생일대의 기회일 수 있다. 트레이더의 본능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머리 꼭대기까지 솟구칠 만큼 흥분됐다. 당일 본부에서 매매를 하는 사람은 거의 나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잘한 주문사고를 순발력 있게 잡아먹은 경험도 있어 이런 기회를 포착할 자신이 누구보다 넘쳤었다. 더욱이 손익이 두툼한 날이었다. 일생일대의 날이 온 것일 수도 있었다. 사고 후 여기까지 3~40초의 시간이 흘렀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졌고, 모니터의 한 픽셀 한 픽셀이 내 뇌에 직접 꽂힌 듯 시장의 모든 뉘앙스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때쯤 다른팀의 대리가 얼굴이 하얘져서 뛰어들어오더니 얼마 전 부서이동을 한, 휴가 간 과장님을 찾더니, 휴가라고 답하자 얼굴이 더 창백해져 다시 뛰어갔다. 이 급한 시점에 남의 트레이딩룸에 저렇게 찾아오는 것을 보니 이런 경험이 부족한 친구라 어지간히도 당황한 모양이구나 싶었다. 손익도 안 좋을 텐데 불필요한 매매를 하다가 운 나쁘게 잘못 걸린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어 안타까웠다.

이런 주문사고의 진행 형태는 유경험자에겐 꽤 뻔한 패턴이다. 가격이 엉망진창으로 한쪽으로 튄다. 포식자들의 압박을 버티지 못해 폭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대개는 주문사고를 일으킨 사람에게 최악의 형태로 끝나고 만다. 매수 주문을 취소하는 사이에 잔인한 트레이더들이 미친듯이 반대 체결시켜, 훨씬 불리한 가격에 눈물을 머금고 손절할 수밖에 없도록 시장을 밀어붙이는 상황이 가장 확률이 높다. 이곳은 정글이고, 약자의 사체가 생태계를 보존시키니까. 매수 주문을 낸 사람의 의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때일수록 결과는 뻔하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규모 자체가 너무 커서 의지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트레이더들은 전 호가의 주문 잔량을 빼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일단 무조건 이탈하는 셈이다.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주문사고를 낸 사람에겐 지옥 같은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문사고가 더 높은 가격에 매수 체결되기 시작했다. 선물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호가에는 12만 계약, 약 15조 원의 주문이 쌓여있고, 시장가 매수로 7000계약, 즉 1조 원 정도의 주문이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시장을 뒤집어엎었다. 난장판이었다. 하방 포지션이던 나는 리스크 관리를 해가면서 버텼다. 포지션을 많이 줄여둔 게 어쩌면 엄청난 다행이었다. 어차피 사고를 낸 사람은 매수한 물량을 시장에서 풀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도무지 이익을 보고 풀 수는 없는 포지션이다. 어마어마한 손실로 마무리될, 예고된 비극이 보였다.

그런데 본부 분위기가 이상했다. 선배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윗분들은 아랫사람에게 상황파악을 하고 있느냐, 이 사고는 너희 탓리라느니, 면피를 위한 잔인한 포석을 일찌감치 깔고 있었다. 뭔진 모르지만,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집중력을 흐뜨려트릴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걱정이 들었다. 나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봐도 우리 본부에서 이런 사고를 일으킬 어떤 종류의 시스템도 매매도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는 거의 95%의 트레이더가 손으로 매매하고 있었고, 한분 한분이 백전노장들이었으며, 사고 대응 능력은 완벽에 가까웠을 것이다. 12만 계약이라니, 이런 아마추어 같은 실수는 애당초 우리 시스템에서 주문이 나가지도 않을 터였다. 유일하게 손으로 매매하지 않는 사람은 내 가까이 앉아있던 절친 한 명과, 오늘 출근도 하지 않고 매매도 하지 않은 스캘핑 시스템 트레이더 한 분이었다. 절친인 그 개발자가 평소에 사고를 막기 위해 들이는 정성과 사고방지를 위해 포기하는 엄청난 손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 호가 없이 폭등 질주하던 시장은 제정신을 차리고 순식간에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하락세를 일부 다시 진행했다. 매수를 한 사람의 주문으로 폭등하고, 그 사람이 청산하며 다시 원위치한 것이다. 나도 거의 휩쓸려 나갈 뻔했다. 7 포인트, 약 3%에 가깝게 폭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과장일 수도 있다. 5 포인트 정도밖에 안 올랐을 수도. 리스크 관리를 더 잘했다면 수십억도 벌 수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본부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고 도저히 매매할 환경이 아니어서 당일 벌었던 수준의 절반도 안 되는 1억쯤에서 수익을 챙기고 포지션을 다 정리해버린 다음 주위 분위기를 살펴봤다.

맙소사.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휴가 가신 분이 연루된 사고였다. 믿기지 않았다. 아까 뛰어온 대리의 팀원 한 명이 이 분과 함께 무슨 사고를 일으켜 1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보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트레이더들이 사고를 피하기 위해 바치는 비정상적으로 어마어마한 조심성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심성이 99인 사람이란 1만큼이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기회는 전부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복잡해질 여지가 있는 시스템은 죄다 거부한다. 블랙박스 시스템은 주문에 몇 겹의 안전망을 마련하지 않으면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런 시스템들마저도 개별 트레이더에게 구상권을 분명히 청구하게 마련이다. 정글 속에서의 생존법을 익혀온 트레이더 출신에게서 발생할 사고는 절대로 아니었다. 더욱이 저팀 팀장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조심성이 가장 많은 분이었다.

장이 끝나고 사고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 사고의 본질은 이랬다. A 씨와 B 씨가 있는데, 한때 같은 팀으로 있다가, B씨가 불과 몇 주 전 우리 팀으로 들어왔다. 둘은 팀이 갈린 이후에 함께 주문 시스템을 하나 사적으로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각자의 팀장들에게 보고 없이 시스템을 개발했고, B씨가 A씨에게 베타버전을 건네고 휴가를 갔다. A씨는 이것을 실험 운용해보다가 시스템이 뻑나서 사고가 난 것이다. 밖에서 담배 피우고 있느라 실제 사고가 발생한 시점 한참 후에 사고를 알아챘다고 한다. 손실은 A씨의 계좌에서 발생했으니 두말할 것 없이 A씨가 책임질 일이었다. 팀장한테 보고를 안 했으니 팀장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관리자의 책임을 져볼 기회마저 놓친 것이지만, 그렇다고 책임이 없진 않을 것이다. B씨가 시스템을 잘 짰건 못 짰건 간에, 최소한의 절차 두 가지를 어긴 것이 나는 심각한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팀장한테 보고할 의무를 어긴 점, 둘째는 회사의 서버상에서의 리스크관리 시스템의 프로토콜을 마음대로 넘나 들은 자신감. 나는 특히 이 ‘자신감’에 의한 사고가 정말 무서운 점이고, 수없이 반복될 수 있는 유형의 사고라고 생각한다.

이 B씨는 서버 개발 및 관리자로 잘 나가시던 분이셨는데, 스캘핑 시스템을 여럿이 함께 개발하여 트레이더로 전직하게 되셨다. 소위 반자동 시스템이라는 것이었는데, 진입은 기계가 하고 청산은 손으로 하는 그런 스캘핑이었다고 한다. 초기엔 돈이 되다가, 시스템을 고안한 트레이더가 떠나는 등 시간이 흐르고 장이 바뀌자 시장에서 안 먹히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 팀에서 양매도 시스템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한 번 더 자리를 마련한 셈이었는데, 다른 팀과 개인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계셨던 것 같다. 문제는 회사 내에서 거래소랑 다이렉트로 연결되어 있는 증권 FEP 라는 서버가 있는데 이를 딜러들에게 공개해놓으면서 대신 주문 한도 등을 철저히 정해서 보고하라고 했던 것을 다소 악용한 점이다. 주문 한도를 제대로 설정을 안 해놓은 상황에서 잘했다고 대충 보고를 한 것이라 전해 들었다. 서버 개발자로서의 자신감 때문에 남들한테 해당하는 규정이 본인에겐 필요 없다고 독자적인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소스가 트레이더들한테 있다 보니 회사에서 그냥 믿는 수밖에 없었고, 정확한 감시를 하기 힘들었다. 트레이더의 자기 감시 능력과 윤리의식, 철저한 리스크 관리 능력이 그때까진 그만큼 뛰어났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그런 틈을 타 트레이더의 정신세계를 갖지 않은 사람의 가벼운 실수에 시스템이 붕괴한 면이기도 하다.

이 사고에 연루된 분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고 한때 한솥밥을 먹었으니 이 글을 읽게 되면 속이 상하시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이 사건을 마냥 쉬쉬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은 아닐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잘나가시던 윗분들도 인생에 큰 굴곡을 겪었다. 위에 밝힌 A씨는 내가 만나본 트레이더 중에 가장 온화하고 양반인 분 중에 한 분이셨다. 나중에 회사에서 처벌은 물론, 재기가 불가능한 수준의 구상권까지 청구 당하시고도 이 사고로 피해를 입으신 윗분들에게 손편지를 써서 사과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 사건을 굳이 다루는 이유는, 앞서 말한 듯이 반복될 수 있는 유형의 사고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출신이 만든 로보어드바이저가 거의 없는 이 시대에, 금융권 출신인 내가 이런 얘기를 하긴 조금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마 트레이딩 룸의 경험이 있는 모든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리스크 관리와 사고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막연히 잘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자신감’을 가지고 개발한 자동 주문 시스템들이 과연 사고가 없을 수 있을까? ‘이쯤은 괜찮겠지’라고 스스로 판단하여 규정을 넘나들 권한이 있으면 어떻게 관리가 가능할 것인가. 그들이 트레이더들이나 관련 부서에서 가지고 있는 극한의 조심성과 자기 감시 능력을 별도의 훈련 없이 되새기고 있을 것이라고 전제할 수 있을까? 금융위에서 위와 같은 사고를 일으킨 개발자들의 코드를 다 뜯어보면 이런 사고들이 미연에 방지될 수 있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분명히 어처구니없는 사고들이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고 규제 당국이 나타나서 이런 사고들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막아질 사고도 아니다. 이런 글들을 통해 아주 많은 사고의 위험성이 부각되어야 하고 고객 및 개발자들이 인지를 해야 한다. 금융은 정말이지 제약조건이 많은 산업이다. 규제의 제약 말고도, 일상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사고의 위험을 줄여나가기 급급한 재미 없는 산업이다. 트레이더의 머릿속에는 시장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갖가지 사고들의 지형이 입체모델처럼 펼쳐져 있다. 어디서 어떤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기에, 그 사고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트레이더는 항상 리스크 관리팀의 눈을 피하고 싶다. 시장에 대한 이해가 더 높지 않은 리스크 관리팀 입장에선 항상 트레이더의 자유도를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투명한 전략, 불투명한 시스템을 자꾸 만들고 싶은 충동이 있다. 뚜렷한 윤리 문화가 아니면 이를 막기는 힘들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아마 더할 것이다. 로보어드바이저에게 필요한 것은 명명백백히 투명한 투자 철학과 논리이다. 더 복잡하고 불투명한 것을 만들면 사고의 여지가 그만큼 더 늘어나게 된다. 덜 복잡하되, 자동화를 통해 효율을 늘릴 수 있는 전략들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 체결된 종목들이 어떤 이유로 체결되었는지 ‘블랙박스 인공지능 기술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안알랴줌’이라는 얘기는 같은 로보어드바이저인 우리 입장에서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얘기이다. 사고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일까. ‘우리는 좋은 대학 나왔기 때문에 그럴 리 없음’이라고 반론을 제시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런 로보어드바이저들은 헤지펀드의 뒤켠에서 트레이더를 잡아먹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행여나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그 오류를 제대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책임질 영역에서 말이다. 대중의 투자에 필요한 것은 첫째도 안정성이고 둘째도 안정성이다. 워런 버핏 마저도 ‘돈을 잃지 말 것’을 첫 번째 원칙으로 잡았다. 버핏도 사용하지 않을 시스템을 대중에게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여하간에 많은 금융권 출신들이 우리가 만드는 로보어드바이저의 투명성과 안정성, 신뢰성을 높게 평가해주는 것은 이런 편집증에 가까운 조심성을 갖추고 있음을 알아주어서일 것이다. 트레이더라고 신비롭고 폐쇄적으로 포장할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누구나 프로가 되기 위해 바치는 오랜 세월의 고된 경험과 자기절제를 통해 더욱 투명하고 간단명료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꼼수를 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대번에 알아볼 수 있다. 불투명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몇 마디 그럴싸한 얘기를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재미 없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한 느낌이지만, 이렇게 ‘트레이딩 룸을 회고해본다’ 시리즈를 8편에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반인이 부자로 변해가는 결정적인 임계의 점이 있다.

일반인이 부자로 변해가는 결정적인 임계의 점이 있다.

물론 부자가 된다는 건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전투로 치면, 기초 체력도 좋아야 하고, 무기도 좋아야 한다. 하지만 전사가 만들어지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과 계기가 있다는 것이다.

기초 체력은 저축에 해당할 것이다. 저축을 하지 않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거의 없다. 그마저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을 부자로 만드는 것은 실로 신의 영역일 것이다.

무기란 투자 방법론이다. 투자를 잘하는 방법도 너무나 다양하다. 물론 실패하는 방법이 압도적으로 더 다양하지만. 손에 맞는 무기를 찾는 과정은 지난하니 사실상 각자가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영역이다. 내가 결론 내린 일반인들을 위한 최적의 투자 방법론은 이미 불리오를 통해 많이 소개했지만, 물론 이마저도 사람에 따라 잘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 구체적인 비법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힌트는 시중에 흔하게 알려져 있다. 저축을 시작할 것, 넓게 볼 것, 돈을 소중히 생각할 것, 현금흐름을 만들 것, 비과세 상품 등을 잘 이용할 것, 빚내지 말 것, 소비를 줄일 것, 확신이 있을 때만 투자할 것, 공부를 할 것, 멘토를 만날 것, 노력을 할 것, 등등 모두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잘 알려진 이야기들 외에도 한 일반인이 어떤 특정한 계기를 통해 생각 구조가 변해가는 임계점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봤다. 수백 명의 재테크족 및 부자들을 만나며 일반인이 재무적으로 선순환하기 시작하는 그런 계기를 하나 발견한 것 같다.

그것은 성격이 다른 두 번째 저축/투자 계좌를 만들었을 때이다. 맞는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대다수의 사람이 첫사랑보다 두 번째 사랑을 할 때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첫사랑을 할 땐 내 안에 내가 너무 많고, 동시에 상대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기 때문이 아닐까.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대개 한 상품으로 투자를 하지만 너무 집착한다. 집착은 실패로 이어지기에도 용이하지만, 생각의 폭을 협소하게 만든다. 그런 사람들은 돈에 대한 본질을 잘 이해하기 힘들고, 창과 방패를 적절히 사용하는 운용의 묘에 대한 관심이나 선순환을 겪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계좌가 됐든, 성격이 조금 다른 두 번째 계좌를 지켜보기 시작하면, 우리의 뇌는 대단히 흥미로운 과정을 겪게 된다. 심적 회계 (mental accounting) 라는 어려운 용어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는 머릿속 인지적 절차가 완전히 다른, 머릿속 사업체가 하나 새로이 생성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사업에 목매던 사장이 회장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첫 번째 사업체였던 계좌에서 두 번째 사업체인 계좌를 분리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재무적 자기 객관화라는 것을 처음으로 겪게 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내 전 재산으로 훌륭한 주식을 골라서 반드시 부자가 되겠어!’ 라고 외치던 각오의 영역에 있던 사람이 거짓말처럼 바뀌어간다. 한 계좌는 월 10만 원이 매월 발생하는 튼실한 투자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저 계좌에선 좋은 기회에 비범히 투자해 한탕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발생하니 좋고, 이 두 가지를 다 고려하는 내 고유의 균형감각과 시너지로 부자가 될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차분한 알파파가 머릿속에서 솟구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런 심적 회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일반인들에겐 사실상 부동산이다. 전 재산을 넘어 빚까지 내어 투자한 부동산으로 인해 모든 투자가 한 사업체에 아주 오랫동안 엮이게 되면, 다른 고민을 할 여지조차가 생기지 않는다. 또한, 주식만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라도 두 번째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 통장을 두 개 만드는 것도 방법이고, 여러 상품을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장 간단하게는 예금도 만들고 ELS도 가입하고 펀드도 가입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한다고 다 부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모든 부자가 탄생하는 순간은 투자의 방법론을 두 가지로 넓힌 바로 그 순간이다. 두 번째 사랑을 배우는 순간 사랑에 대한 객관화가 처음으로 이뤄진다고나 할까. 비로소 내가 하나의 방법론에 묶여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고, 월급도 현금흐름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세상 모든 기회가 나에게 또한 열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돈이 적은데 뭘’, ‘월급쟁이가 뭘’, ‘빚부터 갚아야지 뭘’, 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세상에 흘러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독립적인 투자의 기회임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 귀가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가로막는 습관들이 있다. 마이너스 통장 및 대출, 주식 몰빵, 자동차 할부금 등이다. 이런 것에 묶여서 두 번째 계좌를 못 만들어본 사람은 습관과 편협한 사고의 노예 상태이기 쉽다. 가능하지 않은 경우도 많겠지만, 가능하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자신에게 두 번째 계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것을 식상한 얘기로 자산 배분이라고 한다. 어쩌면 자산군에 금융 공학적 배분을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에 두 가지 계좌를 배분하는 것이다. 모든 부자는 자산 배분에서 시작된다. 진짜, 주식 60% 채권 40% 따위의 얘기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다른 두 가지 계좌 말이다.

작은 전환을 만드는 요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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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딩 룸을 회고해본다 8 (번트)

잽은 복싱에서 쓰는 용어다. 타격의 묵직함은 없지만 빠른 펀치로 거리를 재거나 타격을 누적시킬 수 있다. 그에 반대되는 개념은 풀스윙 펀치가 아니겠는가.

둘 간의 차이는 리스크의 차이다. 잽은 리스크가 거의 없다. 대신 얻는 것도 많지 않다. 풀스윙 펀치는 자칫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빈틈이 생기지만, 역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잽을 날려야 할 때와 풀스윙을 해야 할 때가 당연히 시시각각 다르겠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얻어맞고 있어 기세에 눌릴 때 무모한 풀스윙으로 역전을 노리지 말 것. 이것이 트레이딩이나 투자에선 ‘자금관리’라 불리는, 어쩌면 성공에 필요한 가장 핵심적 요소이다.

자금관리는 기본적으로 지고 있을 때 공격성을 줄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이기고 있을 때 공격성을 줄이라는 이야기일 수 있다. 삼국지 등에 나오는 고대 전투에서 한쪽이 승기를 잡아 추격을 시작할 때 ‘너무 깊이 추격하지 마십사’라는 참모들의 조언을 많이 읽어보았을 것이다. 이길 만큼 이겼으면 행여나 지리적 이점이 없는, 혹은 지리적 정보가 없는, 혹은 후방 부대의 매복이나 아군의 피로나 진열의 붕괴로 인해 생각지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구간까지 과욕을 부려 추격하다간 불필요한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한편으로 자금관리는 기회가 보일 때 풀스윙을 날리라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풀스윙은 정말 미묘한 부분이어서 각자 알아서 판단하시길 바란다. 장수의 본능으로 천재일우의 기회라 판단이 든다면 적군을 밤새 가차 없이 짓밟아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나 투기의 세계에서 풀스윙을 지를 용기나 결단성이 없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풀스윙을 너무 자주 너무 무분별하게 질러서 문제다. 그래서 오늘 할 얘기는 기본적으로 풀스윙을 줄이는 절제력에 대한 이야기다.

‘자금관리가 필요하다’는 표현은 짧은 현업 시절에 최소한 천 번 이상 대화를 나눈 주제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또 그 제자가 자신의 제자에게 끝없이 각인시키는 이야기다. ‘자금관리가 필요한 건 뭐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코치가 선수들에게 매일 매일 강조하는 요지가 있다면, 그것이 그만큼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일 것이다. 농구 코치가 ‘디펜스’를 외치고, ‘리바운드’를 외치는 것은 그런 작은 행동이 어쩌면 승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니셜D 라는 레이싱 만화에도 이런 비슷한 말이 나온다: 승부가 결정 나는 곳은 직진코스도 코너도 아닌 그사이 구간이라고 말이다. 승부처로 보이는 곳이 사실은 승부처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 사이를 흐르는 유유한 어떤 지점, 추상화시키기 힘든 어떤 영역에서 미세한 차이의 누적이 승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다 아는 얘기라 생각해도 한번 진지하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자금관리의 묘에 대해서 나 역시 아직도 묘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심법이라 하나 보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바람이 한번은 바뀐다’는 개념으로 생각해도 좋다. 될 때는 뭘 해도 되는 구간이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가 자금관리의 전부다. 소위 패배하는 법, 패배를 극복하는 법인 셈이다. 또한, 심법이 아닌 순수히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측면도 있다.

수학적인 면부터 예를 들어보자. NBA에서 한 팀이 10점 차이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3점 슛을 남발한다고 해보자. 3점 슛을 던질 때마다 확률은 비슷하다고 할지언정, 만약 3점 슛을 실패한다면 겪게 되는 손실의 차이는 존재한다. 한번 실패할 때마다 승리할 가능성은 비대칭으로 줄어들 것이다. 상대방이 역공하여 안전하게 2점 슛을 성공만 시켜도 이미 12점 차이가 되어 버린다. 갈수록 더 위험한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요행이 없다면 패배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반면 10점 이상 이기고 있는 팀 입장에선 얘기가 조금 다르다. 승기를 확고히 하기 위해 3점 슛을 던졌는데 실패하면 여전히 10점 차이다. 상대방이 공격에 성공한다고 해도 7~8점의 승기를 유지할 수 있다. 승리의 확률엔 큰 차이가 없었으므로, 큰 손실이 없는 것이다. 소위 오차 한계, margin of error가 크다. 반면 3점을 성공시키면 13점 차이로 승부를 크게 갈라놓을 수 있다. 향후 더욱 공격적인 플레이를 많이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7점 차이와 10점 차이는 큰 차이가 없지만, 10점 차이와 13점 차이는 결정적인 차이가 되는 경우를 비대칭적 수익 구조라 한다. 패색이 짙은 팀에겐 이러한 비대칭적 이점이 없다 못해 역으로 발생한다.

양 팀이 접근해야 하는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지고 있는 팀은 점수가 적더라도 가장 자신 있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패스를 통해 공간을 확보하고, 아주 쉬운 레이업을 하나씩 성공시켜 나가는 것이다. 단숨에 승기를 잡을 순 없겠지만, 한 발 더 벌어지는 상황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상대방의 실수를 기다리면서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또한, 3점 슛이 들어갈 정도의 컨디션이었다면 2점 슛은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컨디션이나 자신감이 있다면 더 확실한 전술을 다져가야 한다.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싸움일수록 이 점은 명료하다.

여기서 심리가 들어간다. 이미 지고 있는 팀은 심리적으로 쫓기게 된다. 넣을 슛도 못 넣을 가능성이 높다. 충분히 컨디션이 좋았다면 애당초에 이미 이기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기에 승부에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도 알고, 상대방도 알고, 또한 관중도 알기 때문에, 기세에 눌리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기운에 휩싸여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강한 패기로 이것을 이겨낼 수 있을 법도 하다. 그렇지만 이겨낼 수 있다면, 2점부터 차근차근 점수를 쌓으며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렵지 않은 슛을 성공시키며 자신감을 올려야만 기세를 역전시킬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어려운 슛을 던지다가 행여라도 실패하면 자신감은 훨씬 위축되게 마련이다.

이런 것이 모든 프로의 game plan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주눅이 들면 번트를 쳐야 하고, 복싱이 안 될 땐 잽을 날려야 하고, 골프가 꼬일 땐 짧은 채로 거리를 포기하고 쳐야 하며, 당구가 꼬이면 가야시를 생각지 않아야 하고, 전투에서 패색이 짙을 땐 돌진하면 안 된다. 이미 작전에서 밀리고 있을 때 만용을 부리다가는 재기불능의 상처를 입을 뿐이다.

모든 스포츠 모든 승부에서 뻔한 이야기다. 다만 투자를 하는 사람들만이 희한하게 만용을 생활화한다. 아니지, 어쩌면 모든 분야의 초짜들은 만용을 부리지만, 투자의 세계에선 유난히 정신 못 차린 초짜가 프로 무대에 당당히 입장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일 수도 있다. 자신감이 위축되려 할 땐 가장 자신 있는 액수로, 가장 자신 있는 기법으로, 배트를 짧게 쥐고 한푼 두푼 다시 모아가기 시작해야 한다. 돈이 모이는 것도 기운이라 물꼬를 트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이 패배할 수 있다. 조지 소로스도 일이 꼬일 땐 움츠린다. 세계 최고의 트레이더들은 실패의 악순환을 반드시 끊어내고, 적은 금액부터 다시 차분히 꽃 키우듯 가꿔간다. 심지어 프로 갬블러들도 승기를 잡을 때까진 적은 금액으로 놀게 마련이다.

논외의 얘기지만,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흉운은 첫 타석에서 홈런 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죽어도 홈런의 꿈을 못 버린다. 몇 년이 지나도 손끝의 그 짜릿함이 잊히질 않는 것일 터. 다른 모든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번트를 노리는 사람은 남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홈런을 노리다가 날린 돈이 너무 많아져 돌아갈 곳이 없다고 얘기한다. 자신은 홈런을 치기 위해 태어난 그런 유전자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안타깝다. 일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도박 중독자들이 늘어놓는 레퍼토리와 너무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자금관리는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석에서 때에 따라선 번트를 치는 자세이다. 출루하지 못할 시에 잃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이해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지고 있을 때, 혹은 이기고 있으나 반드시 이겨서 끝내고 싶을 때, 자금관리를 시작하면 절대 대패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론 대승은 하지만 대패는 하지 않는 장군이 최강의 장군이다.

트레이딩 룸을 회고해본다 7 – 원클릭

한 클릭이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클릭은 연속적인 아날로그의 세계에서 분절을 일으키는 무한히 미세화된 구분점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을 눌러대는 마우스의 한 버튼, 그 한 클릭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트레이딩 룸에선 그 한 클릭이 핵미사일 발사 버튼만큼이나 운명을 가르는, 절대 돌아올 수 없는 의사결정의 폭포이다. 그런 중대한 의사결정을 전달하는 게 이따위 마우스 한 조각이라는 게 때론 현실성이 떨어질 만큼.

딸깍, 딸깍, 딸깍. 어떤 날은 트레이딩 룸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마우스 클릭이 전부인 날들이 있다. 그 안에 식은땀을 흘리며 인생의 육정칠욕이 움직이고 있을 트레이더들에게, 어느 선배 트레이더가 이런 얘기를 했다. ‘한 클릭이면 이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다.’ 손절 할까 말까, 수익을 챙길까 말까, 무한한 복기와 자성의 고민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데에는 한 찰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결정은 한 클릭만큼, 손가락이 0.1cm 움직이는 노력만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철학적이어서 울림이 있었다. 천 년 후의 어느 종교의 기도문으로 써도 될 문구 아닌가. 어쩌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라는 얘기였을 수도. 어쨌든 그 표현은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때론 한 클릭으로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포지션마저도, 결국은 결정을 내린 순간 전부 청산할 수 있는 찰나의 포지션이 아닌가 하는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

어릴 적 Market Wizard 라는 트레이더 인터뷰 시리즈를 접해서 지금까지 수십번을 읽어보았다. 이제야 소개하는 이유는 내 글보다 훨씬 재밌기 때문에 내 글을 안 읽을까 봐서다. 그 책에 나오는 수십 명의 트레이더들에게 트레이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물어보면 절대다수는 ‘손절’을 이야기한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손절일 뿐이다. 손절은 기법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실천하는 게 어렵다. 그 한 클릭을 누르기까지 어떤 심리적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조지 소로스에게 손절이 없었다면 그는 이미 수천번 망했다. 제아무리 위대한 로직도 손절 없이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예금 투자와 가치투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는데, 끝을 정해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시작의 선택의 폭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손절 없는 투자는 100% 성공하는 로직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단, 손절이 있는 투자는 51%의 승률만으로도 수익을 쌓을 수 있다. 그런 것은 흔하다. 그것을 손절과 버무려서 성공의 방정식을 만드는 것만 해도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운명이다.

트레이더의 95% 이상이 잘린다고 했다.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높다. 트레이더의 자질이 없는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쉬운 기준은 ‘손절을 할 수 있는 위인인가’이다. 손절은 실전 인생에서 별로 쓸모없는 개념이어서 대부분 사람이 익숙지 않다. 투자를 해보아야만, 몇 번의 인생을 사는 듯한 사이클을 반복해봐야만, 손절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인생에서는 손절이 없어도 용기와 기백만으로 수십 년에 걸쳐 기적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투자에선 그렇지 않다. 손절에 대한 심리적 배리어가 있는 사람은 교육에 의해 손절이 가능해지기도 하고, 영원히 불가능하기도 하다. 나는 전자를 믿는 편이다. 누구나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면 손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당장 손절을 못한다. 머릿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랑이 전혀 아니다. 퇴출 사유일 뿐이다. 아름다운 퇴출 사유도 아니다. 그냥 일차 퇴출 사유다. 서비스 업종에 들어온 사람이 세수를 안 해 눈꼽이 덕지덕지 끼어있는 것만큼이나,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런 아름다움도 없는 결격 사유일 뿐이다. 왜 손실을 받아들여야 최소한의 사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너무나 명확한 방증이다. 병사들을 다 죽일 생각으로 전쟁터에 출근하는 장수만큼이나 무모하다.

그러니 ‘물려서 장기투자 중이에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마라. 인류의 90% 이상이 겪는 흔한 투자 장애이고, 필망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심리적 편향일 뿐이다. 서울대 교수도, 재벌 2세도, 초등학생도, 모두 똑같이 떠안고 사는 아마추어리즘이다. 불빛에 놀라 트럭을 멍하니 쳐다보는 노루의 심리와 다를 바 없다.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행동을 멈춘 것이다. 반복하면 반드시 길거리 시체로 끝날 습관이다. 지금 느끼고 있는 문득 아름다워 보이는 보유 종목의 엄청난 펀더멘탈은 그저 손절을 하지 않기로 한 변명을 찾다가 나타난 착시일 뿐이다. 그 착시가 우연히 오아시스의 방향을 알려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착시를 꾸준히 쫓아다니면 사막에서 미라가 되어 삶을 마감할 것이다.

그러나 손절을 못하는 순간의 심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헤어진 것이 믿겨지지 않아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금전적 이별을 겪고 나면, 앞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내 삶이 얼마나 바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면, 그저 자신에게 멍한 시간을 조금 허용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식으로 손절을 제때 못해 멘탈 붕괴에 빠진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1편에서도 몇 장면을 소개했지만, 오래 산 트레이더라면 누구라도 어느 순간에 역대 최고의 손실을 보고 현실감을 상실할 때가 있다. 어디 트레이더 뿐이랴. 인생의 곳곳에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현기증을 느끼는 순간들이 올 것이다. 이별일 수도, 사고일 수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행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무정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별은 떠안고 살 수 있어도, 시체는 떠안고 살 수 없잖은가. 망가진 주식계좌는 이제부터 썩어간다. 내 계좌는 어쩌면 살아날 수도 있지만 아마도 그 순간부터 내 마음도 생활도 썩어갈 것이고, 남은 돈마저도 썩어갈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훨씬 높다. 매 순간이 새로운 결정을 내릴 새로운 기회다. 선택지가 많다 해서 당황할 필요 없고, 더더욱이 선택지가 없다고 스스로를 속일 이유도 없다. 항상 선택지는 있다. 한 클릭을 누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계좌의 수익은, 내 집중력에 공명한다. 집중력이 바짝 올라있으면 수익이 늘어날 수 있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는 온갖 뻔한 함정들에 노출된다. 그러나 웬걸, 손실이 늘어날 때 집중력이 늘어나는 묘한 착시를 모두가 느껴봤을 것이다. 긴장감 속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며 평생 느낀 적 없는 스릴을 느껴봤을 것이다. 그런 과도한 몰입감을 집중력과 구분해야 한다. 특정한 감정 상태는 손실을 유혹하는 밑밥이나 다름없다. 본인의 집중력과 쓸데없는 몰입감의 종이 한 장 차이를 분간하기 시작하면 언제 매매를 해야 할지 또 언제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기 시작한다. 트레이딩은 정말이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심법이며, 도라고 생각한다.

승부사라는 이야기는 패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패배를 미워해야 하지만, 패배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패배를 많이 경험해야만 패배에 익숙해진다. 패배해보지 않은 트레이더는 언제든 멘탈이 녹아내릴 수 있는 트레이더다. 그러나 패배에 무뎌진 트레이더는 또한 맛이 간 트레이더다. 다시 한번 종이 한 장 차이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시장에서의 싸움을 전쟁터와 비교해보았다. 스캘퍼에게 방향성으로 몰리는 날은 흡사 퇴군하는 부대가 기병대에게 꼬리를 잡혀 한없이 쫓기는 형국이다. 동아시아 역사상 3대 대전으로 꼽히는 비수대전이 있다. 5호 16국 시대 중국을 통일하다시피 한 전진의 3대 황제 부견이 100만 대군을 끌고 동진의 장수 사현의 8만과 맞붙었는데 한번 기세가 밀리자 아군에게 짓밟히며 퇴진하여 백만대군이 하루아침에 대패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때론 장의 방향성이 스캘퍼들에 의해 결정되는 날, 끝도 없이 한 방향으로 몰리는 시장이 딱 이런 느낌이었다. 이제 그만 쫓았으면 좋겠건만, 적군의 붕괴되는 후미를 칠 기회를 봐줄 이유가 없기에 정말 추세가 지옥처럼 추격해 온다. 반면 옵션 변동성을 매매하는 입장에서는 큰 전투가 끝난 후 패잔병의 금품을 털어가는 약탈자들이 생각난다. 전투의 치열함은 정규군에게 맡기고, 모든 수익은 인내심을 통해 취하는 형국이다. 어느 쪽이든, 트레이더의 삶은 생각보다 전면전이 아니다. 트레이더는 큰 전투의 흐름에 맞춰 수익을 극대화하는 약탈자이자 동시에 야비한 약자들이다. 내일도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클릭이면 이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다고 가르쳐준 선배는 또 다른 것을 한가지 알려줬다. 모두가 못 견디고 못 견디다 결국 너무 늦게 클릭을 누르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멘탈이 붕괴된 자들의 때늦은 어설픈 손절이 한순간에 몰려 약자가 약자를 짓밟는 아비규환의 타이밍에, 자기 같은 스캘퍼가 지옥을 선사하며 떼돈을 벌어가니까 항상 자신을 생각하고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그분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상냥한 말투 친절한 설명으로 기법을 전수해준 그분과, 시장에서는 포식자와 먹이로 만날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손절을 열심히 해왔지만, 그때부터 나는 퇴로를 확보하지 않는 진격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늘의 거대한 승리는 역사 속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전투 중에 하루일 뿐이다. 오늘을 싸우고 생존해서 내일도 계좌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한 클릭의 교훈은 트레이더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나로서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여운을 줄 것만 같다.

(시리즈가 길어지다보니 기존 글들을 읽으신 분들만 읽으시는 것 같습니다. 재미로 쓰고 있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고 있으니 혹시 재밌게 읽으셨다면 댓글과 공유로 표현을 부탁드립니다!)

불리오의 놀라운 진행상황

불리오 사용자 여러분, 두물머리의 대표이사 천영록입니다.

불리오 서비스를 개시한 지 이제 한 달 반이 되었습니다. 불리오 매운맛 기준으로 현재 수익이 2.4% 정도 발생하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시작으로 보입니다.

수익만큼이나 의미 있는 두 가지 함의가 있습니다.

첫째는 미국장의 강력한 추세에 적절히 잘 편승한 사례에서 유저들이 느끼셨을 편안함입니다. 많은 분이 투자를 하실 때, 특정 주가가 너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불안해하십니다. 충분히 많이 담지 못했다는 후회 때문에, 어서 빠졌으면 좋겠다는 심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 추세가 지속하는 한 계속 고통받는 분들도 계십니다. 추세가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언제 어떻게 매도해야 할지 신경이 쓰이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추세가 발생하는 자산군에 항상 체계적으로 자산이 편입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추세가 끝나는 시점에 자동으로 편입이 종료된다는 점 덕분에 불리오의 경우 마음이 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익숙해진다면, 한 두 번의 베팅에 수익률을 의존해야 하는 막막함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둘째는 수익률 고점을 돌파하는 구간이 잦은 불리오의 대중 서비스로서의 장점입니다. 짧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 와중에도 사용자들은 각자 다른 순간에 불리오를 시작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저희 수익률이 고점을 돌파 중이라면, 언제 가입하신 유저라도 수익을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펀드는 수익률이 높지만 고객들은 늘 수익을 누리지 못하던 과거의 금융 서비스를 생각하면, 이제 각 펀드의 수익률을 떠나 고객들은 늘 수익을 누릴 가능성이 극대화 되었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불리오는 최대 고점 갱신 기간이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것이 큰 자랑거리입니다. 때로는 아주 오랜 기간 고점 갱신을 경험하실 것이며, 어려운 구간이 닥쳐도 2년 안에는 고점을 다시 돌파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록 그 수익률의 폭이 단기적으로 특정 펀드보다는 못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어떤 개별 펀드보다 훌륭한 성과를 자랑할 것입니다.

제가 이 메일을 보내는 이 시점, 불리오를 실천해주신 모든 분의 계좌가 수익 중이라는 사실은 금융인으로서 엄청난 특혜입니다. 95%의 증권계좌가 마이너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불리오의 고객 계좌 100%가 수익 중이라는 자부심을 아주 아주 오랫동안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그것은 기존의 어떤 금융인도 해내지 못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직 시간이 짧아 불리오의 모든 로직에 공감하시기 힘들 것이고, 체결의 불편함 역시 크시다는 점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오랫동안 지켜봐 주시며 점차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 긴 시간 함께 투자해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천영록 드림

트레이딩 룸을 회고해본다 6 (기법)

가끔 한 사람이 익힌 기예가 그의 정신이 되기도 하고 때론 그의 혼이 되기도 한다. 흡사 내림 받은 신에 따라 무당의 삶이 바뀌듯 말이다. 예술가가 손끝을 통해 표현하려 애써온 감성이 세월을 타 그의 얼굴에도 각인되듯, 자신이 혼을 담은 타이밍이 온몸과 온 생활에 각인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격렬하게 싸우고 물러서고 치열하고 겸허하기를 반복하느냐에 따라 트레이더들도 특유의 성품이 빚어지는 것 같다. 스캘퍼들은 격노를 안고 살지만, 자기에겐 자비롭기도 하고, 포지션 트레이더들은 관망에 익숙하지만, 후회가 깊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 보려면 매매 기법이 무엇이 있는지부터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선물옵션 트레이딩을 한다면 크게 스캘핑, 양매도, 포지션 매매, 세 가지가 있다. 서로 간의 영역이 상당폭 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스캘핑은 초단타 매매부터 단타 매매까지를 일컫는다. 평균 포지션 보유 기간이 짧게는 0.01 초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길게는 30초 혹은 그 이상도 될 것이다. 진입의 이유는 시장의 방향을 읽어서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시장의 방향과 상관없이 해당 투자 상품이 갖는 특성상 발생하는 가격 움직임을 활용하였을 수도 있다. 예컨대 어떤 선물 혹은 옵션 종목이 이상하게 한 달에 한 번 경기를 일으켜 위아래로 다섯 번 흔들린다고 해보자. 그걸 포착해서 매매한다면 그것도 스캘핑이며, 실제로 이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패턴도 존재한다. 단기적 시장 현상을 이용한다면 그것이 기계를 활용하는 매매건 아니건 간에 스캘핑이라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분은 스캘핑 포지션을 진입해 2~3시간에 걸쳐 청산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만 그런 포지션이 진입할 기회는 2~3초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도 찰나의 승부이니 스캘핑이 아닐까 한다.

양매도는 시간의 길고 짧음으로 구분한 매매는 아니다. 옵션 상품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격이 저렴해지는 성질을 이용해서 포지션을 운용하는 방법이다. 장중 매매인 경우가 많다. 보험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때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보험’을 발행하는 행위와 원론적으로 같으니까. 달리 얘기하면, 특별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낌새를 느끼는 능력이나, 발생한 이후에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단순한 보험 발행 따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돈을 버는 보험사를 경영하기는 힘든 법이다. 나는 오늘 얘기하는 세 가지 매매를 결국엔 다 섞어서 사용하게 되었지만, 커리어의 큰 줄기는 양매도에 있었다. 양매도가 무슨 매매인지 가끔 답을 잃었을 때는 200년 전에 런던 어느 커피집에서 보험을 발행했을 갈색 정장의 남자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는 모든 정황상 이 보험을 발행해도 되는 것일까, 혹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어떤 실패의 징조가 눈앞에 스친 것은 아닐까, 내 옆자리에서 남들이 정신없이 보험을 발행해준다고 나까지 휩쓸리는 것은 아닌가, 같은 고민을 할 때 말이다. 보험 발행의 묘는, 한순간의 큰 사고를 피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주의 깊은 사람이 용맹한 사람을 이기는 게임이다.

국내 증권사에 유달리 양매도 팀이 많아 트레이딩 룸의 주 수익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제도적인 이유 덕분이다. 증권사는 옵션 매도 포지션에 대해 장이 끝난 후에 증거금을 정산한다. 개인은 옵션을 거래할 때 실시간으로 증거금을 정산해야 하니까 큰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하면 장중에 100억 원의 증거금이 필요한 포지션을 구축했다가 장이 끝나기 전에 청산하면 실제 증거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부러울 만하다. 물론 증거금이 무제한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제도적 이점으로 인해 증권사 트레이더들은 개인으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아무나 데려다 놓는다고 돈을 벌 것이란 얘기는 아니다. 진짜 타짜들을 모아 놓는다면, 승률이 50%냐 50.5%냐에 따라 아주 큰 결과의 차이가 발생하기에 이 정도만 해도 큰 차이라는 것이다. 또한, 증권사 주문 시스템이 자기자본 전용과 개인 고객 전용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결국 자기자본 트레이더들의 주문이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체결된다. 수수료가 저렴한 것은 물론이다. 양매도 매매만으로 개인 매매에서 성공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제도적 이점들은 스캘퍼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지만, 양매도가 스캘핑보다 다소 더 전수가 쉬웠던 이유는 이 점 때문이다.

때론 양매도나 양매도의 구조적 이점에 대해 허황된 해석들을 인터넷에서 읽기도 하였다. 대부분 어디서 잘못 줏어들은 얘기를 택도 없이 부풀려서 써놨다. 심지어 그런 정보들을 접한 스캘퍼 마저 양매도를 혐오하는 경우도 봤다. 증권사가 매도 포지션을 가져가는 것은 너무 쉬워서 차라리 비윤리적이라는 시선인 것이다. 어떤 분은 양매도가 뭔지조차 잘 몰라서 옵션을 ‘매도’하는 행위는 다 허접떼기들의 전략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주식을 매수 해서 돈 버는 사람은 하수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게, 무식하고 오만한 얘기다. 고수는 매수만 해도 돈을 벌고, 하수는 매도만 해도 돈을 잃는다. 매수건 매도건 유리할 건 하나도 없다. 어차피 모든 승부는 내기 당구처럼, 당구장 주인에게 수수료 떼고 나면 전체로선 손해다. 고수들은 수수료를 만회할 눈꼽만한 확률을 확보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눈꼽만한 확률은 저 넓은 우주 수천억 개의 은하계 속에 먼지 한 톨처럼 미묘한 곳에 구체적으로 숨겨져 있다. ‘근처에 있는 것은 다 탐색 당했기 때문’이라는 문병로 교수님의 말씀을 빌려본다.

포지션 매매는 며칠에 걸쳐 포지션을 가져가는 매매로 통칭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시장의 방향성을 보는 매매와 그렇지 않은 매매로 구분할 수도 있다. 시장 예측을 귀신처럼 해내는 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99%는 시장 예측을 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다가 파멸하고 만다. 방향성 예측 매매를 ‘스펙 매매’ (speculative trading, 투기성 매매)라고 부르는데, 야구로 치면 투수만큼이나 귀한 재능의 소유자들이며 또 한편으로는 투수만큼이나 압박감에 많이 시달리는 매매다. 대체로 이런 분들은 트레이딩 룸에서 잘 안 뽑는다. 이 악마의 매매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기 때문이다. 대신 스펙 매매를 깨친 분들은 개인으로서 투자하더라도 재벌이 될 정도로 성장한다. 선경래라는 트레이더가 있었는데 미래에셋을 나와 개인 투자를 시작하셨다가 2008년 하락장에서 1조 원을 벌었다는 전설이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장 방향성에 대한 감각이 계발된다면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다. 대다수의 1세대 헤지펀드 트레이더들은 이 감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제발 독자들은 시도조차 하지 말기를 권한다. 인류가 겪는 재무적 고통의 절반 이상은 시장 예측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환상 때문이다. 그래도 당신만은 특별하다고 믿지 말아달라. 스펙 트레이딩 마저도 대부분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의 영역이다.

양매도나 스캘핑과 마찬가지로, 시장과 상관없이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특정 이점을 노리는 포지션 매매 유형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매매로 생각하는 것은 일전에 언급한 레이시오 매매다. 헤지에 헤지를 거듭해 아주 구체적인 시장 현상만을 취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시장 상황에서 옵션들이 행사가별로 순차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강력히 반복하는 현상이지만 이것을 취해 이득을 보기는 매우 어려웠다. 레이시오라는 독특한 방법론만이 이 현상에 낚싯바늘을 내릴 수 있었는데 참으로 기이하고 훌륭한 전략이다. 이런 것을 차익거래라 부르기는 어렵고, 일종의 헤지 매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헤지 트레이더들은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상품들을 서로 헤지시키느냐’에 대한 답을 정확히 갖고 있지 않으면 쓸데없는 헤지만 하다가 날밤 샌다. 주식도 잘 못 하는 사람이 주식을 롱숏으로 서로 헤지시킨다고 수익이 안정적이 될 리가 없다. 오히려 꾸준히 패착이 쌓여서 손실을 볼 가능성이 더 높다. ‘헤지’라는 단어 자체가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는 셈이다. 포지션 매매에는 이외에도 ‘순수 차익거래’를 표방하는 유형들도 있다. 내가 레이시오를 정통으로 배웠다고 레이시오에 매우 치우친 평을 쓰는 점은 이해하시라. 이보다 더 세련된 류의 매매도 책을 통해 파편적으로 여러 번 접했는데, 비대칭적 수익 기회가 발생할 수 있는 원리와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응용 가능하다. 여하간에 포지션 매매는 단타의 반댓말이 아닌가 한다. 단순히 매매시간이 길어지기만 해도 때론 포지션 트레이딩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시간 단위가 길어질수록 실력과 운의 역할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하루에 100번 스캘핑을 하는 사람은 100일 동안 1만 번 매매를 해볼 수 있고, 그 정도면 스스로의 실력이 비교적 정확히 검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컨대 주식을 들고 1년간 홀딩하는 사람들은 그 결과가 실력에 의해서였는지 장세에 의한 우연이었는지 판단하는데 수십 년이 걸린다. 한 매매를 최소한 수십번은 반복해야 하나의 사이클이 완성된다. 그럼에도 장기투자를 하는 이가 한해 수익률이나 월간 수익률을 자랑하는 것은, 스캘퍼가 1회의 매매를 이겼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매매의 사이클을 여러 번 거쳐봐야만 장세에 의한 효과가 평가 가능하다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니 대여섯 번의 매매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우쭐해 있는 사람을 보면 하수의 조기경보라 생각하고 피하라. 딱 그때가 가장 우쭐하기 좋은 때라 스스로 감추기 어려울 정도의 오만방자에 휩싸인다. 사이클이 지나간 후, 그런 이들이 생존해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헤지펀드 트레이더라 하더라도 주식이나 장기월물을 이용한 매매를 하는 사람들은 2~3년간 별다른 실력 없이도 큰 실적을 올릴 수 있다. 사이클을 많이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는 어디까지가 운이었는지 판단이 매우 어렵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특히 국외 금융업에서 초대형 사고들이 자주 일어나는 매우 본질적이고 고질적인 이유이다. 개인적으론 투자 사이클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기만 해도 좋은 본부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국내 선물옵션 트레이딩 룸에서 이뤄지는 트레이딩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를 해봤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이나 시스템 트레이딩도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모든 트레이딩은 일종의 시스템에 의해 거래된다고 생각한다. 그 시스템이 트레이더 개인의 머릿속에 있을 수도 있고, 여러 트레이더의 회의를 거쳐 결정될 수도 있고, 여러 개발자와 함께 컴퓨터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시스템이 무엇이든 간에 크게 보았을 때는 전략의 성향을 구분 점으로 삼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이들의 성품은 어떻게 다르다는 걸까?

스캘퍼들은 시장에서 초단타의 싸움을 계속한다. 하지만 한 번의 매매가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로 중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목숨이 걸린 듯이 스스로 긴장감을 형성할 뿐이다. 스캘퍼들이야 말로 장중에 욕설이 가장 난무하는 분들이다. 체결 자체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찰나의 망설임이나 불량체결로 수익을 놓치거나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순간의 고통이 매매 중 가장 큰 고통이다. 그러니 감정을 자주 표현한다. 한 분은 장중에 욕설이 너무 심했는데, 어떤 때는 자기 얼굴을 때리며 자학까지 해서 주위 사람들이 힘들었다고 한다. 재미난 것은, 하도 시끄럽게 분통을 터뜨리길래 당일 손익을 보면 +300만 원을 버는 중인데 순간의 실수로 -10만 원을 잃었거나 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손실이 커져서 자학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이기는 게임 중에 자신의 집중력 저하를 꾸짖는 것이다. 실제 손실 중인 트레이더들은 남들이 눈치챌까 봐 묘하게 조용해진다.

스캘퍼들은 시스템이나 체결 등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장비를 중시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미신이나 리츄얼을 진지하게 시행하기도 한다. 미역국을 먹고 출근하면 체결이 미끄러진다고 생일날에도 미역국을 안 먹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분들은 사실 매일의 트레이딩이 매우 단순한 영업의 반복이다. 그러다 보니 거시적인 시장에도 관심 없고 업계의 규율에는 더욱 관심 없어서 아무 때나 출퇴근하기도 하고 회사 문화에 섞이지 않곤 한다. 대체로 팀원들 간에도 공동책임은 거의 없고, 각개 손익을 가지고 각개 계약을 하는 편이었다. 내가 번 만큼만 칼 같이 가져간다는 뜻이다. 실제 같은 스캘핑 팀에 앉아 있어도 기법이나 타이밍이 모두 완전히 다를 수 있다. 팀원의 수익이 함께 움직이는 근본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여러 시스템을 모아둔, 하나의 집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니 각 개인에겐 외로운 매매일 수밖에.

양매도 선수는 조금 다르다. 양매도가 벌리는 날은 팀원들이 대체로 다 같이 버는 편이고, 양매도가 힘든 날은 팀원들이 다 같이 힘들다. 물론 힘들다고 해서 수익이 다 같이 난다는 보장은 없다. 전 팀원이 손실 한도가 걸려도, 혼자 살아남아 큰돈을 버는 선수들도 가끔 있고, 반대의 경우도 나온다. 양매도 시장 내의 모든 이들이 정어리 떼처럼, 때로는 동지이고, 때로는 포식자 앞에서 생존 경쟁을 펼치는 경쟁자다. 매수를 하는 개인들이 거래 상대방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섞여 있는 진짜 큰 손이 우리를 다 잡아먹을 수도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위기의 순간 양매도 선수들끼리의 손절매 매매가 서로의 손실을 폭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모든 매도자가 매수자로 변하는 그 순간 우리는 각자도생의 아비규환에 빠지곤 한다. 역발상보다는 무리 안에서 눈치껏 생존하는 사바나의 물소 같은 눈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양매도는 한 매매 사이클을 겪고 나면 찰나에 몇 달의 손익이 증발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집중적인 두려움을 떠안고 얼마나 냉정하게 매매할 수 있느냐 하는 강철의 심장을 요한다. 양매도는 오늘 장중에 북한이 도발을 하면 몇 달 치 손익이 날아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각오로 출근해야 한다. 이런 환경들이 트레이더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안감에 잠을 잊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포지션 트레이더다. 야간에 생기는 이벤트들이 내일의 손익이나 심지어 커리어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으니 밤늦게까지 시장을 보는 경우가 많다. 옛말에 ‘포지션은 잠이 오는 수준까지 줄이라’고 했다. 잠이 안 온다는 것은 과도한 위험성을 취해서 몸이 버티지 못한다는 얘기다. 몸이 버티지 못하면 정신이 버티지 못한다. 용맹해 보여서 우쭐하겠지만 허망하게 전 재산을 날릴 체질이다. 그래서 포지션 트레이더는 생각이 많다. 또한 팀원, 팀장, 심지어 회사에 많이 의존해야 한다. 해외 트레이딩 룸들은 포지션 트레이더가 다수이며, 선물옵션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포지션들을 운용한다. 포지션 트레이더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자원과 한도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회사와의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쓰기도 하며, 대고객 매매로 전환이 가능한 확장성이 있다. 운용 사이클이 길다 보니 검증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는 편이다. 포지션이 절대적인 위험에 처하는 사이클은 약 3년이다. 그러니 3년 이하의 기간을 운용한 사람은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또한, 포지션에 덕지덕지 꼼수를 부려둘 여지도 많은 편이라 관리 감독이 쉽지 않다.

매매나 투자에서 극심한 위기는 주기적으로 온다. 주식은 10년, 옵션 포지션은 3년, 양매도는 1년, 스캘핑은 시시때때로 온다. 그 위기를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대다수 매매기법의 핵심이다. 물 들어오는 구간에서 노 젓는 것은 젊기만 하면 가능하니까, 강세장에선 무모하고 혈기 넘치는 청춘이 최강자다. 그러나 태풍이 오고 나면 누가 생존해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아마 로보어드바이저에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도 이런 면 때문에 아닌가 한다. 시장의 사이클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일시적인 장세를 흉내 내는 것이라면 고객들은 처참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이미 다른 이름으로 수없이 반복되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