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리스크가 하이 리턴이 아니야

얼마 전에 카카오뱅크에 가입하니 스티커가 선물로 도착했다. 그런데 조금 놀란 건, 스티커 뒷면에 글이 쓰여 있다는 것! 직원들끼리 이것은 스티커 제작의 대혁명이라고 칭송하였다. 앞면만 인쇄하는 것이 스티커의 본질인 줄 알았는데, 양면을 인쇄할 수 있다는 작은 생각의 전환이 매우 참신했다(어쩌면 이미 많이 쓰는 방식일 수도). 웃자고 한 얘기이지만, 카카오뱅크 제작진이 모든 사물을 얼마나 자유롭게 재해석하려 했는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투자에서는 흔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표현을 쓴다. 변동성이 높은 시장일수록 장기 수익률이 다소 더 높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변동성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어서 억지로 짜낸 이론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스티커에 한 면 밖에 없다는 생각 구조랑 비슷하다. 모든 시장이 본질적으로 한가지 특징만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다중인격체이다.

가장 중요한 차트

위의 차트가 필자가 생각하기엔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차트 중에 하나다. 이것을 깨닫는데 개인적으로 이토록 오래 걸린 이유는 아마도 단기 매매가 전공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나마 이 의미를 깨닫게 된 데에는 해외투자, 커버드 콜, 레이시오 매매 등 장기 시장 흐름에 연동된 투자 경험이 쌓여서라고 생각한다. 다행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차트고, 너무 획일화된 구획 정리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꽤 큰 의미들이 담겨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구간은 변동성이 낮고 덕분에 안정성도 수익성도 높은 시장이다. 차트의 맨 왼쪽 구간이다.

여기서 말하는 ‘변동성’은 시장이 움직이는 폭이고, ‘안정성’이라는 것은 시장이 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며, ‘수익성’이란 모든 걸 합쳐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다.

이 구간은 변동성이 낮고 안정성이 높으며 수익성도 좋은 ‘대평화’의 구간으로, 이런 특징은 길게 지속하며 점진적인 상승과 함께 ‘이어’진다. 이런 구간이 포착되면 한 달 후에도 이런 구간이 계속되는 선순환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치다. 친구네 치킨집이 매출이 꾸준히 나고 수익도 꾸준히 날 때야말로 다음 달 수익을 예측하기가 쉽다. 주식시장에선 수익이 좋아 보이는 곳에 자금도 몰려서, 주가도 서서히 상승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주가가 서서히 상승하고 있는 곳이 다음 달도 여전히 수익이 높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가지로 안정적이고 행복한 구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개별 주가보다 장기 지수에서 훨씬 강력하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면모는 여러 데이터로 확인된다. ‘변동성 응집’이라는 현상은, 낮은 변동성 구간끼리 몰려있고, 변동성이 높은 구간도 몰려있는 모습이다. 최소한 변동성만큼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변동성이 낮은 구간에서의 기대수익률이 다른 구간보다 월등히 높다. 이래서 레짐, 레짐, 하나보다. 변별적으로 투자하면 돈을 더 쉽게 많이 벌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안정적인 경제 상황, 경제분석에 기반한 투자자들의 행태, 시장이 상승한다는 소문에 의한 점진적인 자금 유입, 그로 인한 대다수 기업의 업황 개선 등이 서로 맞물려 있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 경제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확연히 높다는 것이다.

수많은 논문이 ‘추세 추종’을 하면 큰일 난다고 한다. 시장에서 돈을 버는 대다수 헤지펀드 들이 추세추종형 투자자이지만, 개인들이 따라 하면 대개는 손실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안정적인 추세에 무릎에서부터 투자하지 않고, 그림에 나오는 두 번째 구간에 투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이를 ‘대폭등 시대’라고 칭해보자. 이때는 변동성이 늘어나며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구간이다. 가치에 의해 움직이던 시장이 투기와 수급에 의해 탄력을 받기 시작하여 내재가치에서 폭발적으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시장의 정확한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소위 ‘전문가’들의 새로운 이론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모든 경제적 연결고리들이 흔들리며 결과적으로 역사적인 기대수익률도 급감하는 구간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시장이 많이 움직여 마치 당장 투자를 하지 않으면 큰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을 주기 시작한다. 돈 벌기 쉽다고 이웃들이 아우성치는 구간이다. 사실은 투자하기 매우 까다로운 구간이라 변동성을 관측하여 까칠하게 접근해야 한다. 승산이 적은 만큼 꼬리가 길면 반드시 밟히게 되어 있다고나 할까.

이후 변동성이 폭발하며 하락하는 시장이 있다. 이럴 때는 기대수익률이 엄청나게 낮다. 아무리 매매를 잘하는 사람이어도 주식을 통해 수익을 내는 건 어려운 구간이다. 하락 추세가 뚜렷해지며, 그것이 지속할 가능성이 대단히 커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럴 때 또 열심히 투자를 한다. 바로 네 번째 구간, 변동성은 높지만, 가격이 워낙 낮아져 기대수익률이 아주 높은 구간 – 워런 버핏이 사랑하는 구간- 에 왔다고 성급하게 결론짓고 매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치투자를 어설프게 흉내 내는 사람들은 이런 구간에 큰 손실을 입는다. 분명히 두 번째 구간을 다 인내하고 기다리며 투자를 미루다가 지금 훨씬 낮은 가격에 매수하고 있는데도 고통은 끔찍하기만 하다.

이런 구간이 다 지나가고,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졌을 때 가치투자의 기회가 온다. 폭락했을 때의 기대수익이 점진적 상승기의 기대수익을 포함한 그 어느 때의 기대수익보다 더 높다. 가파른 반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반드시 제 가격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부동산으로 치면 경매에 나온 물건을 헐값에 사는 것과 같다. 그러나 변동성이 극에 달하고 ‘전문가’들은 지구의 멸망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투자하기 망설여지는 구간이기도 하다. 변동성이 높아서 수익성도 높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gh-risk high-return)의 유일한 사례이며 용감한 자가, 현금 가진 자가 큰 복을 얻는 시기이다.

학자들은 이러한 구분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티커는 한 면만 인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이었을까. 그래서 논문들을 보면 상승추세에 투자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상승추세가 최소한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가격이 저렴해질 때 사면 좋다고 막연히 주장하기도 한다. 변동성과 가치를 함께 얘기하면 소속 문파에서 퇴출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일까. 이런 얘기를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일반 투자자들만 고생하기 십상이다.

결국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구간은 두 개 밖에 없다. 변동성이 낮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있는 로우리스크 미드리턴 (low-risk mid-return) 시장이나, 변동성이 폭발하는 중에 가격이 믿을 수 없이 싸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시장. 나머지 시장들을 참고 견디면 기대수익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올라가게 만드는, 부자들의 비법이다.

일반인이 부자로 변해가는 결정적인 임계의 점이 있다.

일반인이 부자로 변해가는 결정적인 임계의 점이 있다.

물론 부자가 된다는 건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전투로 치면, 기초 체력도 좋아야 하고, 무기도 좋아야 한다. 하지만 전사가 만들어지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과 계기가 있다는 것이다.

기초 체력은 저축에 해당할 것이다. 저축을 하지 않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거의 없다. 그마저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을 부자로 만드는 것은 실로 신의 영역일 것이다.

무기란 투자 방법론이다. 투자를 잘하는 방법도 너무나 다양하다. 물론 실패하는 방법이 압도적으로 더 다양하지만. 손에 맞는 무기를 찾는 과정은 지난하니 사실상 각자가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영역이다. 내가 결론 내린 일반인들을 위한 최적의 투자 방법론은 이미 불리오를 통해 많이 소개했지만, 물론 이마저도 사람에 따라 잘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 구체적인 비법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힌트는 시중에 흔하게 알려져 있다. 저축을 시작할 것, 넓게 볼 것, 돈을 소중히 생각할 것, 현금흐름을 만들 것, 비과세 상품 등을 잘 이용할 것, 빚내지 말 것, 소비를 줄일 것, 확신이 있을 때만 투자할 것, 공부를 할 것, 멘토를 만날 것, 노력을 할 것, 등등 모두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잘 알려진 이야기들 외에도 한 일반인이 어떤 특정한 계기를 통해 생각 구조가 변해가는 임계점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봤다. 수백 명의 재테크족 및 부자들을 만나며 일반인이 재무적으로 선순환하기 시작하는 그런 계기를 하나 발견한 것 같다.

그것은 성격이 다른 두 번째 저축/투자 계좌를 만들었을 때이다. 맞는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대다수의 사람이 첫사랑보다 두 번째 사랑을 할 때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첫사랑을 할 땐 내 안에 내가 너무 많고, 동시에 상대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기 때문이 아닐까.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대개 한 상품으로 투자를 하지만 너무 집착한다. 집착은 실패로 이어지기에도 용이하지만, 생각의 폭을 협소하게 만든다. 그런 사람들은 돈에 대한 본질을 잘 이해하기 힘들고, 창과 방패를 적절히 사용하는 운용의 묘에 대한 관심이나 선순환을 겪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계좌가 됐든, 성격이 조금 다른 두 번째 계좌를 지켜보기 시작하면, 우리의 뇌는 대단히 흥미로운 과정을 겪게 된다. 심적 회계 (mental accounting) 라는 어려운 용어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는 머릿속 인지적 절차가 완전히 다른, 머릿속 사업체가 하나 새로이 생성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사업에 목매던 사장이 회장이 되는 과정이 아닐까. 첫 번째 사업체였던 계좌에서 두 번째 사업체인 계좌를 분리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재무적 자기 객관화라는 것을 처음으로 겪게 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내 전 재산으로 훌륭한 주식을 골라서 반드시 부자가 되겠어!’ 라고 외치던 각오의 영역에 있던 사람이 거짓말처럼 바뀌어간다. 한 계좌는 월 10만 원이 매월 발생하는 튼실한 투자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저 계좌에선 좋은 기회에 비범히 투자해 한탕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발생하니 좋고, 이 두 가지를 다 고려하는 내 고유의 균형감각과 시너지로 부자가 될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차분한 알파파가 머릿속에서 솟구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런 심적 회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일반인들에겐 사실상 부동산이다. 전 재산을 넘어 빚까지 내어 투자한 부동산으로 인해 모든 투자가 한 사업체에 아주 오랫동안 엮이게 되면, 다른 고민을 할 여지조차가 생기지 않는다. 또한, 주식만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라도 두 번째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 통장을 두 개 만드는 것도 방법이고, 여러 상품을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장 간단하게는 예금도 만들고 ELS도 가입하고 펀드도 가입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한다고 다 부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모든 부자가 탄생하는 순간은 투자의 방법론을 두 가지로 넓힌 바로 그 순간이다. 두 번째 사랑을 배우는 순간 사랑에 대한 객관화가 처음으로 이뤄진다고나 할까. 비로소 내가 하나의 방법론에 묶여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고, 월급도 현금흐름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세상 모든 기회가 나에게 또한 열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돈이 적은데 뭘’, ‘월급쟁이가 뭘’, ‘빚부터 갚아야지 뭘’, 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세상에 흘러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독립적인 투자의 기회임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 귀가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가로막는 습관들이 있다. 마이너스 통장 및 대출, 주식 몰빵, 자동차 할부금 등이다. 이런 것에 묶여서 두 번째 계좌를 못 만들어본 사람은 습관과 편협한 사고의 노예 상태이기 쉽다. 가능하지 않은 경우도 많겠지만, 가능하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자신에게 두 번째 계좌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것을 식상한 얘기로 자산 배분이라고 한다. 어쩌면 자산군에 금융 공학적 배분을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내 머릿속에 두 가지 계좌를 배분하는 것이다. 모든 부자는 자산 배분에서 시작된다. 진짜, 주식 60% 채권 40% 따위의 얘기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다른 두 가지 계좌 말이다.

작은 전환을 만드는 요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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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딩 룸을 회고해본다 6 (기법)

가끔 한 사람이 익힌 기예가 그의 정신이 되기도 하고 때론 그의 혼이 되기도 한다. 흡사 내림 받은 신에 따라 무당의 삶이 바뀌듯 말이다. 예술가가 손끝을 통해 표현하려 애써온 감성이 세월을 타 그의 얼굴에도 각인되듯, 자신이 혼을 담은 타이밍이 온몸과 온 생활에 각인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격렬하게 싸우고 물러서고 치열하고 겸허하기를 반복하느냐에 따라 트레이더들도 특유의 성품이 빚어지는 것 같다. 스캘퍼들은 격노를 안고 살지만, 자기에겐 자비롭기도 하고, 포지션 트레이더들은 관망에 익숙하지만, 후회가 깊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 보려면 매매 기법이 무엇이 있는지부터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선물옵션 트레이딩을 한다면 크게 스캘핑, 양매도, 포지션 매매, 세 가지가 있다. 서로 간의 영역이 상당폭 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스캘핑은 초단타 매매부터 단타 매매까지를 일컫는다. 평균 포지션 보유 기간이 짧게는 0.01 초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길게는 30초 혹은 그 이상도 될 것이다. 진입의 이유는 시장의 방향을 읽어서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시장의 방향과 상관없이 해당 투자 상품이 갖는 특성상 발생하는 가격 움직임을 활용하였을 수도 있다. 예컨대 어떤 선물 혹은 옵션 종목이 이상하게 한 달에 한 번 경기를 일으켜 위아래로 다섯 번 흔들린다고 해보자. 그걸 포착해서 매매한다면 그것도 스캘핑이며, 실제로 이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패턴도 존재한다. 단기적 시장 현상을 이용한다면 그것이 기계를 활용하는 매매건 아니건 간에 스캘핑이라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분은 스캘핑 포지션을 진입해 2~3시간에 걸쳐 청산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만 그런 포지션이 진입할 기회는 2~3초밖에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도 찰나의 승부이니 스캘핑이 아닐까 한다.

양매도는 시간의 길고 짧음으로 구분한 매매는 아니다. 옵션 상품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격이 저렴해지는 성질을 이용해서 포지션을 운용하는 방법이다. 장중 매매인 경우가 많다. 보험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때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보험’을 발행하는 행위와 원론적으로 같으니까. 달리 얘기하면, 특별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낌새를 느끼는 능력이나, 발생한 이후에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단순한 보험 발행 따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돈을 버는 보험사를 경영하기는 힘든 법이다. 나는 오늘 얘기하는 세 가지 매매를 결국엔 다 섞어서 사용하게 되었지만, 커리어의 큰 줄기는 양매도에 있었다. 양매도가 무슨 매매인지 가끔 답을 잃었을 때는 200년 전에 런던 어느 커피집에서 보험을 발행했을 갈색 정장의 남자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는 모든 정황상 이 보험을 발행해도 되는 것일까, 혹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어떤 실패의 징조가 눈앞에 스친 것은 아닐까, 내 옆자리에서 남들이 정신없이 보험을 발행해준다고 나까지 휩쓸리는 것은 아닌가, 같은 고민을 할 때 말이다. 보험 발행의 묘는, 한순간의 큰 사고를 피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주의 깊은 사람이 용맹한 사람을 이기는 게임이다.

국내 증권사에 유달리 양매도 팀이 많아 트레이딩 룸의 주 수익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제도적인 이유 덕분이다. 증권사는 옵션 매도 포지션에 대해 장이 끝난 후에 증거금을 정산한다. 개인은 옵션을 거래할 때 실시간으로 증거금을 정산해야 하니까 큰 차이가 있다. 달리 말하면 장중에 100억 원의 증거금이 필요한 포지션을 구축했다가 장이 끝나기 전에 청산하면 실제 증거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부러울 만하다. 물론 증거금이 무제한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제도적 이점으로 인해 증권사 트레이더들은 개인으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아무나 데려다 놓는다고 돈을 벌 것이란 얘기는 아니다. 진짜 타짜들을 모아 놓는다면, 승률이 50%냐 50.5%냐에 따라 아주 큰 결과의 차이가 발생하기에 이 정도만 해도 큰 차이라는 것이다. 또한, 증권사 주문 시스템이 자기자본 전용과 개인 고객 전용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결국 자기자본 트레이더들의 주문이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체결된다. 수수료가 저렴한 것은 물론이다. 양매도 매매만으로 개인 매매에서 성공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제도적 이점들은 스캘퍼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지만, 양매도가 스캘핑보다 다소 더 전수가 쉬웠던 이유는 이 점 때문이다.

때론 양매도나 양매도의 구조적 이점에 대해 허황된 해석들을 인터넷에서 읽기도 하였다. 대부분 어디서 잘못 줏어들은 얘기를 택도 없이 부풀려서 써놨다. 심지어 그런 정보들을 접한 스캘퍼 마저 양매도를 혐오하는 경우도 봤다. 증권사가 매도 포지션을 가져가는 것은 너무 쉬워서 차라리 비윤리적이라는 시선인 것이다. 어떤 분은 양매도가 뭔지조차 잘 몰라서 옵션을 ‘매도’하는 행위는 다 허접떼기들의 전략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주식을 매수 해서 돈 버는 사람은 하수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게, 무식하고 오만한 얘기다. 고수는 매수만 해도 돈을 벌고, 하수는 매도만 해도 돈을 잃는다. 매수건 매도건 유리할 건 하나도 없다. 어차피 모든 승부는 내기 당구처럼, 당구장 주인에게 수수료 떼고 나면 전체로선 손해다. 고수들은 수수료를 만회할 눈꼽만한 확률을 확보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눈꼽만한 확률은 저 넓은 우주 수천억 개의 은하계 속에 먼지 한 톨처럼 미묘한 곳에 구체적으로 숨겨져 있다. ‘근처에 있는 것은 다 탐색 당했기 때문’이라는 문병로 교수님의 말씀을 빌려본다.

포지션 매매는 며칠에 걸쳐 포지션을 가져가는 매매로 통칭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시장의 방향성을 보는 매매와 그렇지 않은 매매로 구분할 수도 있다. 시장 예측을 귀신처럼 해내는 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99%는 시장 예측을 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다가 파멸하고 만다. 방향성 예측 매매를 ‘스펙 매매’ (speculative trading, 투기성 매매)라고 부르는데, 야구로 치면 투수만큼이나 귀한 재능의 소유자들이며 또 한편으로는 투수만큼이나 압박감에 많이 시달리는 매매다. 대체로 이런 분들은 트레이딩 룸에서 잘 안 뽑는다. 이 악마의 매매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기 때문이다. 대신 스펙 매매를 깨친 분들은 개인으로서 투자하더라도 재벌이 될 정도로 성장한다. 선경래라는 트레이더가 있었는데 미래에셋을 나와 개인 투자를 시작하셨다가 2008년 하락장에서 1조 원을 벌었다는 전설이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장 방향성에 대한 감각이 계발된다면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다. 대다수의 1세대 헤지펀드 트레이더들은 이 감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제발 독자들은 시도조차 하지 말기를 권한다. 인류가 겪는 재무적 고통의 절반 이상은 시장 예측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환상 때문이다. 그래도 당신만은 특별하다고 믿지 말아달라. 스펙 트레이딩 마저도 대부분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의 영역이다.

양매도나 스캘핑과 마찬가지로, 시장과 상관없이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특정 이점을 노리는 포지션 매매 유형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매매로 생각하는 것은 일전에 언급한 레이시오 매매다. 헤지에 헤지를 거듭해 아주 구체적인 시장 현상만을 취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시장 상황에서 옵션들이 행사가별로 순차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강력히 반복하는 현상이지만 이것을 취해 이득을 보기는 매우 어려웠다. 레이시오라는 독특한 방법론만이 이 현상에 낚싯바늘을 내릴 수 있었는데 참으로 기이하고 훌륭한 전략이다. 이런 것을 차익거래라 부르기는 어렵고, 일종의 헤지 매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헤지 트레이더들은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상품들을 서로 헤지시키느냐’에 대한 답을 정확히 갖고 있지 않으면 쓸데없는 헤지만 하다가 날밤 샌다. 주식도 잘 못 하는 사람이 주식을 롱숏으로 서로 헤지시킨다고 수익이 안정적이 될 리가 없다. 오히려 꾸준히 패착이 쌓여서 손실을 볼 가능성이 더 높다. ‘헤지’라는 단어 자체가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는 셈이다. 포지션 매매에는 이외에도 ‘순수 차익거래’를 표방하는 유형들도 있다. 내가 레이시오를 정통으로 배웠다고 레이시오에 매우 치우친 평을 쓰는 점은 이해하시라. 이보다 더 세련된 류의 매매도 책을 통해 파편적으로 여러 번 접했는데, 비대칭적 수익 기회가 발생할 수 있는 원리와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응용 가능하다. 여하간에 포지션 매매는 단타의 반댓말이 아닌가 한다. 단순히 매매시간이 길어지기만 해도 때론 포지션 트레이딩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시간 단위가 길어질수록 실력과 운의 역할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하루에 100번 스캘핑을 하는 사람은 100일 동안 1만 번 매매를 해볼 수 있고, 그 정도면 스스로의 실력이 비교적 정확히 검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컨대 주식을 들고 1년간 홀딩하는 사람들은 그 결과가 실력에 의해서였는지 장세에 의한 우연이었는지 판단하는데 수십 년이 걸린다. 한 매매를 최소한 수십번은 반복해야 하나의 사이클이 완성된다. 그럼에도 장기투자를 하는 이가 한해 수익률이나 월간 수익률을 자랑하는 것은, 스캘퍼가 1회의 매매를 이겼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매매의 사이클을 여러 번 거쳐봐야만 장세에 의한 효과가 평가 가능하다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니 대여섯 번의 매매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우쭐해 있는 사람을 보면 하수의 조기경보라 생각하고 피하라. 딱 그때가 가장 우쭐하기 좋은 때라 스스로 감추기 어려울 정도의 오만방자에 휩싸인다. 사이클이 지나간 후, 그런 이들이 생존해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헤지펀드 트레이더라 하더라도 주식이나 장기월물을 이용한 매매를 하는 사람들은 2~3년간 별다른 실력 없이도 큰 실적을 올릴 수 있다. 사이클을 많이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는 어디까지가 운이었는지 판단이 매우 어렵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특히 국외 금융업에서 초대형 사고들이 자주 일어나는 매우 본질적이고 고질적인 이유이다. 개인적으론 투자 사이클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기만 해도 좋은 본부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국내 선물옵션 트레이딩 룸에서 이뤄지는 트레이딩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를 해봤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이나 시스템 트레이딩도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모든 트레이딩은 일종의 시스템에 의해 거래된다고 생각한다. 그 시스템이 트레이더 개인의 머릿속에 있을 수도 있고, 여러 트레이더의 회의를 거쳐 결정될 수도 있고, 여러 개발자와 함께 컴퓨터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시스템이 무엇이든 간에 크게 보았을 때는 전략의 성향을 구분 점으로 삼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이들의 성품은 어떻게 다르다는 걸까?

스캘퍼들은 시장에서 초단타의 싸움을 계속한다. 하지만 한 번의 매매가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로 중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목숨이 걸린 듯이 스스로 긴장감을 형성할 뿐이다. 스캘퍼들이야 말로 장중에 욕설이 가장 난무하는 분들이다. 체결 자체에서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찰나의 망설임이나 불량체결로 수익을 놓치거나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순간의 고통이 매매 중 가장 큰 고통이다. 그러니 감정을 자주 표현한다. 한 분은 장중에 욕설이 너무 심했는데, 어떤 때는 자기 얼굴을 때리며 자학까지 해서 주위 사람들이 힘들었다고 한다. 재미난 것은, 하도 시끄럽게 분통을 터뜨리길래 당일 손익을 보면 +300만 원을 버는 중인데 순간의 실수로 -10만 원을 잃었거나 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손실이 커져서 자학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이기는 게임 중에 자신의 집중력 저하를 꾸짖는 것이다. 실제 손실 중인 트레이더들은 남들이 눈치챌까 봐 묘하게 조용해진다.

스캘퍼들은 시스템이나 체결 등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장비를 중시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미신이나 리츄얼을 진지하게 시행하기도 한다. 미역국을 먹고 출근하면 체결이 미끄러진다고 생일날에도 미역국을 안 먹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분들은 사실 매일의 트레이딩이 매우 단순한 영업의 반복이다. 그러다 보니 거시적인 시장에도 관심 없고 업계의 규율에는 더욱 관심 없어서 아무 때나 출퇴근하기도 하고 회사 문화에 섞이지 않곤 한다. 대체로 팀원들 간에도 공동책임은 거의 없고, 각개 손익을 가지고 각개 계약을 하는 편이었다. 내가 번 만큼만 칼 같이 가져간다는 뜻이다. 실제 같은 스캘핑 팀에 앉아 있어도 기법이나 타이밍이 모두 완전히 다를 수 있다. 팀원의 수익이 함께 움직이는 근본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여러 시스템을 모아둔, 하나의 집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니 각 개인에겐 외로운 매매일 수밖에.

양매도 선수는 조금 다르다. 양매도가 벌리는 날은 팀원들이 대체로 다 같이 버는 편이고, 양매도가 힘든 날은 팀원들이 다 같이 힘들다. 물론 힘들다고 해서 수익이 다 같이 난다는 보장은 없다. 전 팀원이 손실 한도가 걸려도, 혼자 살아남아 큰돈을 버는 선수들도 가끔 있고, 반대의 경우도 나온다. 양매도 시장 내의 모든 이들이 정어리 떼처럼, 때로는 동지이고, 때로는 포식자 앞에서 생존 경쟁을 펼치는 경쟁자다. 매수를 하는 개인들이 거래 상대방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섞여 있는 진짜 큰 손이 우리를 다 잡아먹을 수도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위기의 순간 양매도 선수들끼리의 손절매 매매가 서로의 손실을 폭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모든 매도자가 매수자로 변하는 그 순간 우리는 각자도생의 아비규환에 빠지곤 한다. 역발상보다는 무리 안에서 눈치껏 생존하는 사바나의 물소 같은 눈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양매도는 한 매매 사이클을 겪고 나면 찰나에 몇 달의 손익이 증발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집중적인 두려움을 떠안고 얼마나 냉정하게 매매할 수 있느냐 하는 강철의 심장을 요한다. 양매도는 오늘 장중에 북한이 도발을 하면 몇 달 치 손익이 날아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각오로 출근해야 한다. 이런 환경들이 트레이더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안감에 잠을 잊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포지션 트레이더다. 야간에 생기는 이벤트들이 내일의 손익이나 심지어 커리어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으니 밤늦게까지 시장을 보는 경우가 많다. 옛말에 ‘포지션은 잠이 오는 수준까지 줄이라’고 했다. 잠이 안 온다는 것은 과도한 위험성을 취해서 몸이 버티지 못한다는 얘기다. 몸이 버티지 못하면 정신이 버티지 못한다. 용맹해 보여서 우쭐하겠지만 허망하게 전 재산을 날릴 체질이다. 그래서 포지션 트레이더는 생각이 많다. 또한 팀원, 팀장, 심지어 회사에 많이 의존해야 한다. 해외 트레이딩 룸들은 포지션 트레이더가 다수이며, 선물옵션 외에도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포지션들을 운용한다. 포지션 트레이더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자원과 한도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회사와의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쓰기도 하며, 대고객 매매로 전환이 가능한 확장성이 있다. 운용 사이클이 길다 보니 검증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는 편이다. 포지션이 절대적인 위험에 처하는 사이클은 약 3년이다. 그러니 3년 이하의 기간을 운용한 사람은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또한, 포지션에 덕지덕지 꼼수를 부려둘 여지도 많은 편이라 관리 감독이 쉽지 않다.

매매나 투자에서 극심한 위기는 주기적으로 온다. 주식은 10년, 옵션 포지션은 3년, 양매도는 1년, 스캘핑은 시시때때로 온다. 그 위기를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대다수 매매기법의 핵심이다. 물 들어오는 구간에서 노 젓는 것은 젊기만 하면 가능하니까, 강세장에선 무모하고 혈기 넘치는 청춘이 최강자다. 그러나 태풍이 오고 나면 누가 생존해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아마 로보어드바이저에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도 이런 면 때문에 아닌가 한다. 시장의 사이클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일시적인 장세를 흉내 내는 것이라면 고객들은 처참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이미 다른 이름으로 수없이 반복되었던 일이다.

트레이딩 룸을 회고해본다 4 (선수 선발)

내가 트레이더를 목표로 하게 된 이유는 모든 트레이더 지망생과 똑같았다. 견딜 수 없이 높은 ego 때문이다. 미친 듯이 현란하게 돈을 긁어모아야 내 과대한 자의식이 충족될 것 같았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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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돈 자체에 의미를 두진 않았는데, 더 엄밀히 말하면 돈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다만 지혜를 만렙으로 채우고 싶었다고 하면 대충 맞을 것 같다

계기는 이랬다. 주식 차트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봤더니 삼성증권이 30% 정도의 박스권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박스권이라는 단어를 당시엔 몰랐지만,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대단히 신비하고 정교한 패턴을 찾아냈다는 느낌이 들어 다른 주식은 보지도 않은 채 어머니께 100만 원을 빌려 투자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30만 원을 벌고 그만뒀다. 주식 따위 대단히 쉽고 하찮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는지 한동안 쳐다보지 않고 잊고 지냈다. 그래도 나름의 겸손이 있었나 보다. 그 정도의 경험으로 내가 깨달은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고, 다만 나의 주식 경험이 남들과 다르게 수익으로 끝났다는 데서 잘난 긍지를 유지하는 정도의 요령을 부린 셈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 주위에 넌지시 주제를 꺼내니 신기한 반응을 접하게 되었다. 전혀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투자에 대해서만은 열변을 토하는 것이었다. ‘주식은 무조건 잊고 묵혀놔야 돼’, ‘주식은 싼 걸 사야 해’, ‘주식은 재무제표를 달달 외우면 돼’, ‘주식은 예술이야.’, ‘차트 속에서 그림을 보는 눈이 있어야 돼’, ‘주식은 가는 주식이 더 간다’ 등등 알고 보면 서로 엄청나게 상충되는 얘기를 엄청나게 그럴싸하게 역설하는 것이었다. 흥미를 느꼈다. 이들 중 다수는 나보다 딱히 많이 알지 못할 터임에도, 이들 모두가 진리를 찾은 양 얘기한다는 것, 그 자체로 그 진리를 직접 정리해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저 수많은 담론 중에 오직 하나만이 정답이라면, 그 오해의 산더미 속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어 과대한 자의식을 충족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쩐다.

남들이 자격증이나 열심히 따놓으라고 조언해줄 때 나는 해외 매크로 블로그를 읽으며 옵션 트레이딩을 시작했다. 그것 역시 대단한 돈을 벌 목적은 아니었다. 실전을 경험하지 않으면 남들과 같이 탁상공론 속에 헤맬 뿐, 깊이가 생기지 않으리란 생각에 과감히 수강료를 내는 것이라 (라고 쓰고 돈 다 날려보는 것이라 읽는다) 생각했다. 투자 격언에 “수강은 내가 선택하지만 수강료는 시장이 책정한다” 비슷한 말이 있는데, 나는 어쨌든 적정한 수강료를 내고 제법 많은 걸 배우고 기록해놨다, 애초에 수강이 목적이었으니까. 시장 경험이 있으니 옵션의 구조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2008년 키움증권 입사 시에 단 한 명을 뽑는 서류 및 면접 과정에서 합격했다. 경쟁자는 약 백 명이었다고 한다. 남들과 달랐던 점은 자격증도 없으면서 옵션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점 아닌가 생각한다. 남들처럼 자격증을 따는데 시간을 썼더라면 면접의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라며 나는 세상을 다 가진 양 우쭐해졌다. 역발상과 특유의 고집으로 얻은 성취감이니 오죽했겠는가. 좋게 얘기한다면 하나에 빠지면 미쳐버리는 근성과 뮤지션으로서의 집요함 같은 것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그때 나를 뽑아준 분이 해준 말씀은 이렇다. “옵션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한 것 같아서 좋아 보였지만, 지금까지 공부한 것은 다 잊어야 해요. 이제부터 레이시오를 통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다시 공부해야 할 거에요. 레이시오 매매는 옵션매매의 완성판입니다.” 그때는 이 말의 의미가 얼마나 깊은지, 내 삶을 얼마나 바꿀지 알지 못했다. 인제 와서 돌아보면 6년 넘는 옵션 트레이딩의 생활 동안 하나의 묘기를 배웠다면 ‘레이시오’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의 삶은 빠르게 건너뛰기 해보자. 이후 수년간 신입사원들이 어떻게 업계에 들어오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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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더는 어떻게 뽑을까? 많이들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공개채용으로 뽑을 수도 있고, 타부서 경력직을 뽑아 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인턴한테 짧게 기회를 주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업계 전체에서 연간 뽑는 인원이 총 수십 명 수준이니 사실 굉장히 특별한 인연이 있어야 입사할 수 있다. 대형사들은 그래도 사내모집을 한 번씩 하는 편이지만, 중소형사들은 누군가의 보증을 받다시피 해야 들어갈 수 있다. 워낙 입사기회가 적다 보니 인턴 모집 때 경력이 지긋한 사람들도 정말 많이 지원하는 편이다. 일반 대학생들은 중소형사 인턴에 흥미를 못 느껴서 많이 지원하지는 않는다. 사실 트레이딩에 간절한 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커리어로서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도 않다. 피똥 싸다가 건강만 해치고 허영심만 잔뜩 부풀어 한동안 정상생활을 못 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방식은 인턴들을 주기적으로 많이 뽑아, 배울 기회와 운용 기회를 주고 몇 개월에 걸쳐 관찰한 후 그 중 탁월한 친구들을 주니어로 전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법이 좋은 이유는 많은 사람에게 되도록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각 후보자를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전체의 비정규직 문제를 백배로 확대해놓은 듯한 방식이라 사실 당사자들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들을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뽑자면 기회를 받는 사람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이다. 뿐이랴, 이들이 팀에 합류해서 소위 악성 재고처럼 팀 손익을 까먹다 보면 새로운 인력을 뽑을 기회는 더 줄어든다. 그러니 여러 사람을 뽑아 싹이 안 보이면 빨리 자르는 것이 실은 트레이딩을 꿈꾸는 전체 인구엔 가장 공평하다. 대형사 중에서는 대우증권이 이런 실험을 앞장서서 하기도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젊은이들한테 너무 가혹하다는 뒷얘기가 무성하여 널리 확산되진 못했다. 뒷얘기가 무서워 애당초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한테 사다리를 오를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면인데 참 세상이 이렇다. 옵션 시장 규제하고 ELW 시장 규제하고 ELS 시장 규제하듯이, 기회가 무엇이든 간에 피해자가 나오면 아예 기회 자체를 막아버리기 급급한 게 현실이다. (왜, 사고 난다고 칼이랑 망치랑 톱이랑 다 규제시키지)

그러나 이러한 인턴제가 잔인한 것은 ‘충분한 시간’을 주지 못하기 때문인 부분도 있다. 트레이더가 제대로 육성되는데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3개월 혹은 6개월 인턴 기간에 ‘싹수’를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말이 6개월이지, 첫 달에 손실이 나면 위축되어 그 다음 달에 정신 차리기가 쉽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압박감에 시달려 뭔가 제대로 배울 시간이 부족하다. 회사 차원에서는 ‘육성’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재의 발굴’에 뜻이 있는 것이니 물론 할 말은 없다.

한때 메리츠 증권이 인턴제 운영으로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아니면 자상하고 현명한 시니어들의 노력 결과였는지, 2008년경에 메리츠에서 천부적인 재능의 트레이더가 여럿 나왔다. 특히 세 명의 신진 선물 스캘퍼가 서로 자극을 주며 성장하여 일찍이 본 적 없는 레벨로 성장하였다. 메리츠는 이들로 인해 최소한 연간 100억 원씩 순이익이 증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이들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고 일주일에 벤츠 한 대씩 살 수 있는 돈을 벌어가며 아무 때나 출근하고 아무 때나 퇴근했다. 공황장애라며 15분 만에 퇴근하는 분도 계셨다고 한다. 15분 동안 몇천만 원 벌어놓고 퇴근하니 다들 경이의 눈으로 쳐다봤다나. 다음 기회에 이들 트레이더들의 얘기를 더 할 날이 오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런 신진 천재의 탄생이 다른 증권사들의 신입 발굴을 부추기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준치를 과대하게 높이기도 하였다.)

그러면 이런 신입사원들은 어떤 재능을 보고 뽑아야 할까? 위에 언급한 트레이더 중 한 명은 테트리스를 3시간 동안 할 정도로 동체 시력이 발달했다는 전설도 있는데, 스캘핑에 분명히 도움이 되는 재주일 것이다. 나머지 두분은 대학 포커 대회를 번갈아 가며 휩쓴 분들이었다. 또 가히 왕 중 왕이라 부를 수 있는 한 트레이더는 암산 능력이 천부적이었다. 여러 이유로 국내 가장 유명한 트레이더 중에 한 명인 P.C.Y 아저씨다. 이 형님은 사칙연산을 컴퓨터만큼 빨리하는 터라 실제 장중에 호가의 움직임을 보고 정확히 누가 몇 계약을 언제 매수했다 언제 매도하는지 다 계산한다고 하셨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엄청나게 숫자를 더해서 암산을 부탁드려봤는데 정말 해내더이다. 그러나 이런 묘기들이 트레이딩 자질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트레이더의 자질은 절제력, 집중력, 정신력, 습득력, 겸허함, 독립적 사고력, 통계적 사고, 전략적 사고 등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이런 자질들을 쉽게 갖추기 힘들어서, 특정한 영역에서 전문적 트레이닝을 받은 사람들이 트레이더로서 유리하다. 예로 바둑인이라거나, 전문 군인, 스포츠 선수, 뮤지션 등 오랜 인고의 세월 동안 훈련을 거듭한 사람이 대체로 생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더라도 이런 자질을 타고나는 사람들은 따로 있을 것도 같다. 처칠은 ‘사람과 차의 공통점은, 뜨거운 물에 담가봐야 그 진짜 향을 알 수 있다는 점’이라고 다소 잔학한 얘기를 남긴 적이 있는데, 사실 트레이더도 이래저래 다각도에서 살펴보지 않으면 그가 가진 정신력의 진짜 가치를 알기는 힘든 것 같다.

한번은 당시에 매우 잘나가던 우리 회사 트레이딩 본부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데 자격요건에 ‘돈 냄새 잘 맡는 사람’이라고 적어둔 적이 있었다. 인사팀에서 공개 채용 문서인데 의도는 알겠지만 이런 식의 표현은 너무 격 떨어지지 않냐고 항의가 왔는데 담당 트레이더들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걸 어쩌냐’라고 한참 웃지 못할 실랑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다소 천박하지만 저렇게밖에 표현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돈에 대한 감각이 있거나, 집요함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돈을 안 쓰고 혼자 배부르자고 욕심만 부리는 사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수익을 일으키는 데에 남들보다 관심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어야만 험난한 트레이더 생활을 견뎌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해외 트레이딩 룸에서는 10억 손실을 낸 주니어가 화장실에 달려가서 토하는 모습을 보며 ‘저 친구는 멘탈이 약해서 안되겠다’며 짤랐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반면 옆에서 100억 손실을 내면서도 태연한 주니어는 ‘이놈 배짱이 제법 두둑하구나~’ 라며 사이즈를 올려줬다 카더라. 재밌는 얘기고 한때 부러워한 문화기도 하지만, 실제로 반대의 경우도 설득력이 있다. 어느 산악인이 ‘산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겐 산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주셨었는데,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트레이딩을 가르쳤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다. 카지노에 가보라. 다들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들이라 손실이 쌓여만 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로 게이머들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트레이딩에 적합할 거로 생각해 더지니어스에 출연한 홍진호한테 연락도 해봤었다. 쪽지를 보내고 얼마 후 식당 옆자리에 있길래 살살 얘기를 풀어봤는데 매니저분이 꺼지라는 눈빛이어서 제대로 못 꼬셨다. 엄밀히 말하면 홍진호를 꼬시고 싶던 것은 아니고 그의 후배들을 소개받아 입사시켜보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구상이었는데.

여하간에 신입을 뽑는 주먹구구식 방법들에 관해 얘기해봤다. 신입사원들이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잘 읽었다면 꼭 감흥을 남겨주세요! 반응이 없으면 우선순위에서 무의식적으로 밀리게 되잖아요. 공유 팍팍 해주시고 오늘도 즐거운 하루!!)

 

투자에서 손실 보는 엄청나게 체계적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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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없는 돈으로 투자한다.

없는 돈을 빌려서 투자하거나, 잃어서는 안 되는 돈으로 투자하는 게 손실을 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왜냐하면, 손실을 끌어내는 모든 체계적인 오판을 전부 다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정신상태를 쉽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이해하지 못하고 투자한다.

이해하지 못하고 투자하면 이론적으로 50%의 손실 확률을 확보하고 시작한다. 문제는 인내심이 적어지고 제때 청산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왜 오르는지도 모르지만 왜 빠지는지도 모르므로 정신줄을 놓게 된다. 나머지 대다수의 체계적인 오판을 손쉽게 할 수 있다.

  1. 감각을 믿는다

우리가 타고 나는 모든 실생활의 감각들이 투자의 세계에선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최악의 결정을 반복하는 대중들의 무덤 위에 부자들이 번창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본능은 공포를 피하게 되어 있지만 무서운 일이 발생하면 정면 돌파하도록 용기를 발휘하게 되어 있다. 돈 날리는 구조다. 본능은 즐거움을 추구하게 되어 있지만 즐거움을 빼앗기고 싶지 않게 되어 있다. 조금만 벌어도 기회를 날려버리는 구조다.

  1. 욕심부린다.

욕심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면 사물의 본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고가 멈춰버린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면 본능이 지배하고, 손실로 이어진다.

  1. 욕심이 날 수밖에 없게 투자한다.

처음엔 욕심이 안 난다고 생각했지만, 투자해놓고 보면 욕심이 날 수밖에 없게 투자한다.

  1. 자신감을 느낀다.

실생활에선 자신감이 있어야 성공한다. 때론 불리한 조건에서도 자신감이 결과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카지노와 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신감이 환경을 바꿔주지 않기 때문이다. 불쌍한 돈을 사지로 몰아넣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장수의 과도한 자신감이다.

  1. 용기를 낸다.

사람은 용기로 수백만 년간 위험을 헤치고 진화하였다. 하지만 용기를 낸다고 태풍에서 돛단배로 살아남을 수 없다. 카지노에 가봐라. 겁쟁이는 없다. 모두 용자들이다. 장수가 용기 내면 병사가 전멸한다. 손쉬운 승리를 찾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손실이 쌓여간다.

  1. 공포와 위험을 즐긴다.

용기를 발휘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위험을 버텨내면 무용담이 생긴다. 하지만 정신줄이 나가기 때문에 계좌에는 해롭다. 손실을 부르는 마음가짐이다.

  1. 청산 계획을 안 세운다.

투자한 종목이 10% 오를 때, 20% 오를 때, -10% 빠질 때, -20% 빠질 때, 아무런 일도 없을 때 등 여러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 전략이 없이 투자하면 대다수가 확실하게 손해 본다. ‘모든 경우에 아무것도 안 하겠다’, ‘모든 경우에 한 달이 지나면 청산하겠다’도 일종의 전략이다. 대응책이 없으면 내 안의 모든 본능이 최악의 결정을 유발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어가도록 우리는 프로그래밍 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

  1. 청산 계획을 업데이트를 안 한다.

시장이 조금만 바뀌어도 기존의 청산 계획과 다른 청산 계획이 필요하다. 그럴 때 청산 계획을 기존과 같이 유지해야 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생각하길 포기하면 순식간에 본능이 지배하여 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1. 남 얘기를 듣고 투자한다.

남 얘기를 통해 정보를 얻을 때는 첫째로 이해하지 못하고 투자하며, 둘째로 계획이 없고, 셋째로 잘못된 정보를 들을 가능성을 높인다. 잘못된 자신감과 용기가 늘어나는 것은 덤이다.

  1. 모르는 곳에 투자한다.

잘 모르고 투자하면 이론적으로는 손실 가능성이 50%밖에 안된다. 하지만 계획을 짤 수가 없다 보니 생각을 포기하게 되고 본능에 지배당해 손실 내기 매우 쉽다.

  1. 기간 없이 투자한다.

대부분 너무 짧게 투자하거나 너무 길게 투자한다. 기한을 안 정해놓고 투자하면 실패한 투자는 아주 오래 가지고 가서 모든 자금이 묶이게 마련이고, 성공한 투자는 너무 짧게 투자해서 별로 못 벌게 마련이다. 기간이 길어지면 대개는 청산 계획을 포기하고, 포기하지 않더라도 행동하기 힘들어진다. 손실에 잡아 먹히기 딱 좋다.

  1. 손실 본 종목을 오래 가져간다.

손실 본 종목은 손실이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하락하는 종목이 반등하는 경우는 내가 털었을 때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털고 나서 오랜만에 봤을 때, 반등한 종목만이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는 반등하지 않는 종목이 훨씬 많다. 반등할까 봐 오래오래 가져가면 사세가 기운 회사에 오래오래 투자하는 것과 같다.

  1. 분산투자를 하지 않는다.

확실한 아이템이 있으면 분산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서울대에 붙을 것 같으면 서울대만 지원하고, 삼성전자에 붙을 것 같으면 삼성전자에만 지원하면 된다. 하지만 만약 확실한 아이템을 뽑을 능력이 있다면 확실한 아이템은 여러 개가 될 테고, 그렇다면 여러 군데에 투자하는 게 맞다. 확실한 아이템이 없다면 가장 확실해 보이는 아이템에 분산해서 투자해야 한다. 분산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과대한 자신감과 용기와 욕심 때문인데, 스스로 버티질 못한다. 한번 삐그덕 하면 본능에 지배될 뿐이다.

  1. 운을 기대한다.

자신감과 비슷하다. 카지노에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통계 따윈 의미 없어, 오늘만은 다를 것이다, 나만은 다를 것이다’ 를 끝없이 읊조리고 있다. 과연 그럴까? 전략이 없다는 증명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나에게 중요한 운명의 순간 더 높은 누군가가 내 삶에 개입하고 있다는 환상에 시달린다. 운명의 순간은 대개 빚을 내서 스스로 만들어내니까, 누구도 개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1. 마음이 급하다.

지금 돈이 없다고, 꿈이 크다고, 우왕좌왕 무리하게 투자한다. 모든 오판의 여지를 활짝 열어주는 것이다.

  1. 공부하지 않는다.

공부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를 안 하면 망한다. 게임의 룰도 모른 채 게임을 시작하면 승부를 벌이지도 못하고 퇴장당한다.

  1. 투자만 쉽게 생각한다.

프로 농구 선수가 되는데, 프로 바둑기사가 되는데, 프로 학자가 되는 데는 몇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돈 버는 투자는 정말 쉽다고 생각한다. 쉽다고 생각하면 공부도 안 하지만 나머지 모든 오판을 함께 하므로 손실을 쉽게 누적할 수 있다.

  1. 내 돈을 시장이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이라는 바다에 내 돈을 뿌렸다고 해서, 내가 바다에 뛰어들기만 하면 돈이 헤엄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백만 원 잃었다고 천만 원 들고 와서 복수하려 하고, 천만 원 잃었다고 일억 들고 와서 복수하려 하면, 냉정함을 잃고 1번부터 총체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1. 배움을 벗 삼아 경험을 즐긴다.

시장 경험이 많아질수록 배우는 게 많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또 다르니 어찌 배우는 즐거움이 없겠는가. 그러나 돈 버는 방법은 제대로 안 배우고, 돈 벌었다 잃기를 반복하며 배우는 즐거움에만 빠져 있기 일수다. 그 둘이 무엇이 다른지는 고수에게 배워야 한다.

  1. 본업을 등한시한다.

본업이 없으면 들어올 돈도 없다. 하지만 투자를 하다 보면 자신감이 쩔게 마련이다. 1억 원 넣어서 하루에 천만 원 벌기도 하고 천만 원 잃기도 하면 내 본업 따윈 하찮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모든 오판을 반복하는 사이 본업도 짤린다. 물론 그럴 줄은 몰랐다고 말하겠지. 후회하겠지. 하지만 뻔한 코스다.

  1. 기회를 기다릴 줄 모른다.

기회를 기다릴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내가 오늘만큼은 특별하다 생각할 텐데. 매일 매일 하루라도 더 질러야 나에게 들어올 운을 다 쓰지 않겠는가. 돈 버는 방법을 알아도 손실만 보는 유형이다.

  1. 투자한 대상과 사랑에 빠진다.

투자한 대상이 비즈니스 파트너가 아니라 배우자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해관계가 바뀌면 헤어져야 함에도 괜시리 붙들고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소유하기 시작한 순간 팔이 안으로 굽는다. 심지어 단기 기억장애에 걸린 사람들마저도 자신이 한번 선물 받은 물건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증폭한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사랑스럽겠는가, 내 운명을 책임져줄 저 종목이란.

  1. 이젠 늦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수록 더 확실한 손실을 볼 수 있다.